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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열어주는 뇌의 프런티어 - 강봉균

2008.04.06.

과학이 열어주는 뇌의 프런티어 - 강봉균

서론

과학은 우리 스스로를 이해하는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자신은 과연 신의 피조물로서 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인가?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그러나 쉽지 않은 질문을 가져볼 때가 있다. 마음(mind)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희로애락을 느끼는가? 우리는 어떻게 학습하고 기억하는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보는 순간 수십년 동안 잊혀졌던 추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은 왜 가능한가? 정신이상은 왜 발생하는가? 생각하는 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가? 사실 이런 의문들은 뇌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신경과학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종종 갖는 의문들이다. 이런 의문들이 현대신경과학의 발달에 의해 서서히 풀리고 있다. 실로 뇌연구의 매력은 우리를 절망하게 하게 하며 치유 불가능한 뇌신경계 질환을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기대감 외에도 우리 자신의 정체성과 본질을 규명하는 데 가장 직접적인 역할을 한다는 데 있다.

뇌란?

뇌는 생물체 기관 중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으며 일명 소우주(microuniverse)로 불리면서 생명현상을 조절하는 가장 중요한 기관이다. 뇌가 없다면 인간도 없고 사회도 있을 수 없다. 과학도 뇌가 만들어낸 작품이자 논리적 수단이다. 비록 뇌의 무게는 1.4kg에 불과하지만 인체가 사용하는 총 에너지의 70% 이상을 소모한다. 뇌는 신경계의 일부로서 신경계의 구조 및 기능의 단위는 신경세포(nerve cell) 또는 다른 말로 뉴런(neuron)이다. 인간은 대략 1천억개의 신경세포로 이뤄져 있다. 신경세포들은 전기적 신호에 의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사이에 존재하는 시냅스(synapse)라는 좁은 틈으로 분비되는 화학물질인 신경전달물질들(neurotransmitters)이 신경세포 사이의 신호 전달을 매개하고 있다. 시냅스로 연결된 신경세포들은 신경망(neural network)을 조직하며 신경망들이 모여 시스템(system)이라는 또 다른 기능 단위를 형성한다. 보고, 듣고, 배우고, 숨쉬고, 몸을 움직이는 등과 같은 신체의 기능 등이 시스템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최종적으로 시스템이 모여 신체의 행동과 사고를 결정하는 뇌의 고차원적 기능이 나타난다. 이상이 뇌에 대한 대체적인 이해이지만 21세기는 뇌의 신비를 풀기 위한 인류 도전의 시기가 될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의식과 사고, 상상력, 언어 등과 같은 인간정신능력의 고차원적인 신경메커니즘이 어떻게 발생되며 궁극적으로 뇌의 활동에 의하여 마음이 어떻게 생성되는가는 아직 풀리지 않는 난제이다. 이를 풀기 위한 뇌의 연구에는 생물학, 화학, 물리학, 해부학, 약리학, 생리학, 행동학, 심리학, 전자공학, 인지과학 등 다양한 학문이 동원되어 매달리고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뇌와 여러 면에서 유사한 뇌를 지니며 문화양식을 영위하는 인간이 만들어진 것은 약 4만년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동안 뇌는 점차 발달해 왔으며 앞으로도 발달의 진화과정을 거칠 것이다. 그러나 정작 뇌를 소유한 인간이 뇌의 모습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기원 후가 되어서야 마음의 장소가 심장이 아니라 두뇌에 있다고 입증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감각을 느끼고 신체를 조절하는 기능이 뇌실에 있는 뇌척수액이 아니라 신경세포와 신경섬유에 의해서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기원 후 18세기가 거의 지나서였다. 뉴런이 신경계의 가장 근본적인 기능단위가 된 것을 찾아낸 것은 불과 1백여년전의 일이다. 아직도 상당수의 사람들은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어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뇌에 대한 신경과학적 의문점들을 살펴보면서 현대과학은 이에 대해 어떤 해답을 주게 되었는지를 알아보자.

물질로 보는 뇌

뇌는 물질의 구성상 다양한 생화학 분자들로 복잡하게 이루어진 집합체이므로 신경계에 대한 분석이 분자수준에서 이뤄지는데 뇌 기능에 관련하는 각종 단백질 및 유전자들이 활발히 탐색되고 있다. 이러한 뇌 기능 분자들이 서로 작용하여 독특한 뉴런의 구조와 기능이 나타난다. 뇌기능 분자들이 과연 어떻게 구체적으로 상호작용하는지는 그리 어렵지 않은 신경과학자들의 연구 몫이 될 것이다.

회로망으로 조직화되는 시스템들이 상호 조직적으로 작용하여 통합된 행동양식으로 표현되는 과정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감정과 분위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며 향정신성 약물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다양한 기억내용들은 어떠한 시스템에 저장되는가? 이러한 의문점들도 두뇌의 고차원적인 정신작용도 두뇌를 구성하는 생화학적 물질들의 작용으로부터 발생한다는 근거에서 출발한다. 세포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신경신호전달 과정은 의외로 간단하다. 전기적 자극에 의해 시냅스 말단에서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고 신경전달물질은 시냅스 후 세포막의 수용체 단백질에 결합한다. 이 과정에 의해 신경신호가 전달된다. 신경신호의 소멸은 신경전달물질이 곧바로 회수되거나 파괴될 때 이뤄진다. 아직까지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는 분자메커니즘이 거의 규명되고 있다. 이에 따라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으로 야기되는 각종 신경정신질환 및 마약 중독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 방안이 강구될 것이다.

뇌 발생에서 바라보는 본성-양육 논쟁

 1천억개가 넘는 뉴런들과 1조에 이르는 교세포(glia)들이 질서정연한 배열을 갖추어 3차원의 독특한 조직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뉴런들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특정한 뉴런들과 짝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복잡하고도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는 수천 억개의 뉴런들은 때로는 단순한 일(호흡조절과 같은)과 때로는 대단한 일(생각 속의 신념)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발생 중의 배아에 있는 세포들이 어떻게 뉴런들이 되며 이들이 어떻게 정확하게 목표 영역들을 찾아가고 어떻게 시냅스를 형성할 뉴런들을 정확히 분별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다양한 여러 단계들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회로들은 이런 단계들을 거치는 시간일정표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 및 정신의 다양한 종류의 기능들은 기능별로 천천히, 그리고 고르지 않게 어린 시절에 펼쳐진다. 그러나 결국 이 모든 것들은 모두 합쳐져서 나타나게 되고 온전한 인간 또는 자아가 출현한다.

뇌 발생은 본성-양육 논쟁의 주요 전장이다. 정신적 그리고 행동적 특징들이 유전자들에 의해 더 결정되는가 아니면 환경에 의해 더 결정되는가라는 것은 가장 단순한 형태의 논쟁이 된다. 정신적, 행동적 특징들이 뇌기능에서 좌우되는 것이라면 그리고 시냅스적으로 연결된 회로들이 뇌기능의 바탕이 되는 것이라면, 본성-양육 논쟁은 기본적으로 회로들이 발생과정 중에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축소될 수 있다. 오늘날 그 어느 누구도 뇌가 태어날 때 빈 여백으로 되어있어서 경험에 의해 쓰여지기를 기다린다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뇌는 특별한 방식으로 행동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소양이 유전학적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는, 변할 수 없는 구조라고 심각히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대신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뇌 회로는 유전적 영향과 비유전적 영향 간의 혼합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마음과 행동에 대한 질문과 관련하여, 본성과 양육이 같은 일을 -시냅스 회로를 만드는- 하는 두 가지 방식이라는 것과 이 일을 완수하기 위해선 둘 다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즉, 생애 초기에 시냅스적 연결이 유전자들과 경험에 의해 가꾸어진다는 것이 명백히 밝혀졌기 때문이다.

뇌는 학습에 의해 계속 변화한다.

두뇌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두뇌의 구성요소인 뉴런들이 정교하고 질서정연하게 연결되어 회로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회로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 및 기타 환경요인에 의해 변할 수 있으며 이러한 현상을 신경 또는 시냅스 가소성이라고 한다. 각 개인의 개성 차이도 이에 따라 결정되어진다. 신경 가소성에 대한 이해는 인간 개성의 차이를 설명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시냅스 가소성에 대한 놀라운 데이터의 축적으로, 학습과 기억은 다른 인지 기능들에 비해 가장 먼저 생물학적인 이해가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학습과 기억은 인간의 인지 기능에 핵심적으로 관여되어 있으면서도 신경계를 지니는 모든 생물들이 생존을 위하여 갖추고 있는 현상으로서 군소, 초파리, 생쥐와 같은 보다 단순한 신경계 등을 이용한 분자생물학적, 전기생리학적 연구가 용이하다. 학습에 의해 외부정보가 신경계에서 처리되는 과정에서 특정 신경회로망의 시냅스들이 강화되거나 약화되는 시냅스 가소성 현상이 잘 밝혀지고 있다. 기억은 가소적 변화를 일으킨 시냅스 회로에 저장되는 것으로 보여지며, 앞으로 학습과 기억의 복잡한 체계를 설명하기 위한 신경계의 기능적 구조에 대한 시냅스 수준의 연구가 더욱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로, 이를 활용한다면 기억능력을 인위적으로 향상 또는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이 고안될 수 있다. 미국의 J. Tsien은 수년전, NMDA 수용체가 더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끔 유전공학적으로 개량된 생쥐를 만들었다. 이 생쥐들은 공간학습과 공포조건화에서 둘 다 빠른 학습능력을 보였다. 유전적 조작에 의해 언젠가는 나이든 노인에게서 나타나는 기억능력의 소실을 회복시키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뇌연구 방법론의 발달

신경세포학적 연구의 획기적인 발달과 아울러 두뇌의 고차원적인 인지 기능을 연구하는 데는 시스템 신경과학, 인지 심리학, 행동신경학 및 컴퓨터 과학 등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특히 뇌영상기술이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되고 있다. 뇌영상기술에는 양전자단층촬영(PET), 핵자기공명영상(MRI), 기능핵자기공명영상(fMRI), 자기두뇌촬영(MEG) 등이 있으며 뇌를 손상시키지 않고 인지 기능이 온전히 유지된 상태에서 뇌의 기능을 비침투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음운(phonology)이나 구문(syntax)과 같은 문법의 체계가 뇌에서는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언어에 관련하여 활동하는 뇌의 특정한 기능부위를 조사할 수 있다. 뇌 활성을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는 이러한 기술들은 좀 더 정교하게 분자 수준에서 보려는 노력들이 현재 한창 진행 중이며 앞으로는 분자수준에서 뇌의 활동을 모니터링하는 시대가 올 것이며 개인차에 따른 뇌활성화의 차이를 영상화하거나 정교한 뇌 지도를 만드는 일이 가능해진다.

인지과학 숙제

마음을 생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감정(emotion), 의지(volition), 동작(movement), 심상(imagery), 사고(thought), 언어(language), 의식(consciousness), 학습(learning), 기억(memory) 등과 같은 인지기능의 두뇌 메커니즘을 먼저 풀어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고차원적인 인지기능은 주로 피질(cortex)에서 수행되고 있다. 피질의 기능에 의해 뇌는 외부 세계의 모습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병렬 경로를 통해 들어온 입력 정보들을 선택적으로 집적하여 시각적 영상을 건축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다양한 정보들을 편집하여 연속적이며 통일된 지각으로 표상하게 된다. 이 과정을 우리는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것을 '결합문제(binding problem)'라고 한다. 결국 우리의 지각과정은 외부세계의 사실적 모습이 아닌 일종의 주관적 환영(幻影)을 만든다.

두뇌에서 사고, 추론이 일어나는 과정은 무엇인가? 사고 및 추론은 두뇌라는 블랙박스에 들어있는 마음의 정체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지만 역대로 행동주의(behaviorism)에서는 기피되었던 분야이다. 뇌영상기술과 병행하여 뇌의 특정한 부위가 손상된 환자를 대상으로 하여 사고 및 추론과정을 밝히고자 하는 노력이 현재 집중되고 있다. 심상(imagery) 즉, 마음에 맺히는 형상은 사고작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정신작용에 의한 시각적 정보로 형성되는 심상에는 시각의 지각과정, 기억된 시각 정보의 인출, 그리고 추론과정에 핵심적인 작업 기억(working memory) 등이 관여하고 있다. 따라서 심상의 이해는 시각 인지과정에 대한 이해와 여러 개의 신경회로들이 유기적이며 체계적으로 작동되는 과정을 파악하는 데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보여진다.

의식(consciousness)은 정의하기가 매우 어려우며 포괄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인지 기능으로서 이는 우리 두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에 의해 '의식'을 정의해야 하는 모순과도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 좌·우반구가 분리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스페리(R. Sperry) 등의 연구에 의하여 의식의 인지 기능에 대한 연구의 기초가 닦여졌던 것처럼, 서술될 수 있는 명백한 사실 또는 지식을 인지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는 환자를 이용하면 의식의 문제를 접근하는 데 좋은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보다 쉬운 연구주제이지만 의식에 대한 단초를 제공할 것으로 여겨지는 연구 주제가 집중과정(attention)과 의지과정(volition)에 대한 분석이다. 의식의 문제는 21세기에도 계속 어려운 과제로 남을 것 같지만 과학이 언젠가는 풀어야할 마지막 숙제가 될 것이다.

이성과 감정은 나눌 수 있는가?

감정과 이성을 분리하여 논의해 온 철학적 흐름에 따라 감정을 인지 기능과는 독립적인 현상으로 취급하기도 하지만, 감정은 인지 기능에 많은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마음의 정체는 인지 기능과 감정 기능의 복합에 의해 나타난다고 여겨진다. 뇌연구가 발전하면서 새로이 인식하게 된 사실은 전통적인 감정과 이성의 이원론적 구분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또한 마음이란 인지과학이 전통적으로 제안해온 것처럼 단지 생각하는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가능한 가장 넓은 관점에서 볼 때, 인지, 감정, 동기화 기능들에 전념하는 시냅스 네트워크를 포함하는 하나의 종합된 체계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로서, 그것은 정신생활의 서로 다른 다양한 측면들에 관여하는 네트워크들 간의 상호작용을 포함한다.

종종 우리가 집중하거나 기억하는 일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일들이다. 그런 상황에서, 인지적 처리과정은 감정적 각성상태를 동반한다. 그리고 감정적 각성은 단순한 반응으로 끝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것을 이용하여, 감정적 각성자극이 나타내는 상황으로부터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도록 우리의 행동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가끔 우리의 목표를 향해 계속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결정들을 내려야 한다. 스스로 자각하는 자아 지식은 분명히 인간 동기화의 중요한 측면이지만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스스로 자각 못하거나 덜 자각한다고 여겨지는 동물들도 어떤 일들을 함에 있어서 충분히 동기화된다. 즉, 그들도 음식과 거처할 곳을 찾고 포식자와 다치는 것을 피하려 한다. 우리가 하는 것들의 상당부분 또한 의식의 경계 밖으로 퍼져있는 과정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의식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밑에 깔려있는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인지, 감정, 동기화 과정들도 그만큼 중요하게 되었다.

자아와 뇌의 신경회로적 이해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이다. 우리 뇌에 의해 우리의 정체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이해하려한다면, 우리는 인지측면, 감정측면, 또는 동기측면 등과 같은 각각의 과정들이 어떻게 혼합되어, 뇌의 전기 화학적인 활동들로부터 쉽게 한 인간이 출현하게 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자아와 개성에 대한 이론들은 뇌기능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이해와 일치하는 방식으로 틀이 짜여져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내가 자아라고 부르는 복잡한 무리들을 뇌의 시냅스들과 체계들에게 어떻게 관련을 맺을 것인가?

사람이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들에 대한 정보를 학습하고 저장하는 일을 하는 뇌 체계들(의식 가능한 외현적 체계와 의식 밖의 내재적 체계들)을 통해 자아는 이해될 수 있다. 이런 체계들이 하는 처리과정은 물리적이고 사회적인 상황 속에서 항상 일어나고 있으며, 유전적 유산과 과거경험에 의해 규정된 방식에 따라 기능하는 네트워크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자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고, 감정, 동기라는 정신의 3대 요소의 기초가 되는 뇌체계들이 어떻게 선천성과 후천적 영향 하에서 발달하는지, 그리고 이 체계들에 의해 우리는 어떻게 주의하고, 지각하고, 경험들을 배우고, 저장하고, 다시 회상할 수 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는 다른 체계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서로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상호작용과 아울러 통합작용이 없다면, 우리 개개인은 일관된 한 인간이기보다는 분리된 정신 기능들의 집합에 불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지, 감정, 동기의 처리과정들 사이의 선천적 또는 학습에 의한 상호작용이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상호작용들이 일어나는 과정을 신경계의 시냅스적 처리과정에 의하여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냅스적 처리과정은 특정한 상태들이나 경험들에 관여하는 다양한 뇌체계들 사이에 일어나는 협동적인 상호작용들을 가능하게 해주며 또한 이런 상호작용들이 시간이 지나는 과정에서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결론

뇌의 신비는 인류가 풀어야 할 매우 어려운 숙제임에 틀림없다. 뇌의 신비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다는 견해들도 있다. 뇌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뇌 자체를 이용한다는 순환적 모순이 그 바탕을 이룬다. 역설적이지만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이 뇌의 신비에 철학적으로 매료되어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과학자의 열정과 또한 수 십년 전부터 태동되기 시작한 다양한 과학기술적 발전에 힘입어 뇌의 신비가 하나, 둘 벗겨지고 있다. 분자생물학에 의하여 분자수준에서 일어나는 뇌의 기능이 속속 밝혀지고 있으며, 단 한 개의 이온통로 단백질로부터 발생되는 전류의 흐름을 측정하는 수준까지 발전한 전기생리학, 복잡한 뇌신경 회로의 처리과정을 모델링하고 이해하게 해주는 컴퓨터 과학의 발달, 인간의 두뇌를 해부하지 않고도 정상적인 의식상태에서 그 기능을 연구할 수 있는 컴퓨터를 이용한 다양한 뇌영상기술의 발달 등은신경과학의 앞날을 밝게 해주고 있다. 특히 DNA 칩으로 대변되는 생물정보과학(bioinformatics)의 기술적 발전과 보다 시·공간적 해상도의 개량을 통한 뇌영상기술의 첨단화는 앞으로 신경과학의 질적인 발전을 이뤄낼 지렛대가 될 것이다.

의학의 발전으로 인간수명은 연장되고 있지만 치매, 중풍, 우울증, 정신분열증, 간질, 다발성 경화증, 파킨슨씨병, 무도병 등과 같은 뇌·신경질환으로 인해 삶의 질은 향상되지 못하고 있다.(뇌 질환으로 소모되는 의료비용은 미국의 경우 연간 6천억달러에 달한다.) 뇌의 신비를 풀기 위한 인류의 노정 상에 치매, 중풍, 우울증, 정신분열증, 간질, 다발성 경화증 등의 뇌 질환의 치료, 진단, 예방 및 신경 기능 향상 등 의학적인 면에서 획기적인 성과가 있을 것이다. 특히 분자생물학적 연구 결과에 기초한 약물 개발, 유전자 치료요법, 줄기세포를 이용한 신경세포 및 조직의 이식과 재생 등이 기대된다. 또한 공학적인 면에서도 최종적으로 감정, 의지, 지성을 갖춘 시스템(예, 지능형 로봇)의 창조가 언젠가는 가능하게 될 것이다. 당분간은 뇌-컴퓨터 접속기술(brain-computer interface)에 의해 뇌의 특정부분을 컴퓨터나 미세신경 칩(chip)에 의해 직접 자극하여 뇌기능과 운동 등을 조절하거나 뇌활동을 컴퓨터로 읽어내는 일이 서서히 실현되고 있다. 시각, 청각 신경의 손상뿐 아니라 뇌특정조직의 손상을 복구하는 데 이미 실용화가 되고 있다. 또한 뉴로칩(neurochip)의 개발도 가속화되어 1억개의 뉴런으로 구성된 사고가능한 칩에도 도전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뇌의 문제들이 정말 과학에 의해 풀릴 수 있을까? 필자는 지난 10년간 얻어진 신경과학의 연구결과가 그 전 1세기 동안 연구된 결과보다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러한 폭발적인 연구 추세를 앞으로도 계속 전망해본다면 이상에서 열거한 많은 신경과학의 난제들이 21세기에 상당부분 해결 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이 결코 꿈만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인간의 두뇌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풀 수 있도록 진화해온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아울러 뇌에 대한 이해 및 뇌조작기술의 도입 등은 인간의 정체성, 가치관 및 윤리의식에 대한 정의에 규정하는 데 또 다른 복잡성을 가져다 주리라 보인다. 뇌연구는 생물학 및 의학, 공학의 범주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학, 윤리학, 종교, 문화 등 인간생활이 미치는 모든 영역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