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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기계를 하나로: 케빈 워릭 - 이현경

2008.04.06.

인간과 기계를 하나로: 케빈 워릭 - 이현경

2035년 미국의 시카고. 인간과 로봇이 자연스럽게 서로의 생활을 공유하고 있다. 로봇은 인간 5명당 1대꼴로 존재할 만큼 수적으로도 엄청나다. 이 로봇들은 인간의 충실한 하인 역할을 수행하며 인간의 ‘생필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인간과 로봇의 신뢰관계가 깨졌다. 로봇들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켜 인간을 통제하려고 했기 때문.

기계, 인간을 지배한다?

지난해 여름 개봉해 인기를 끈 영화 ‘아이 로봇’(I, Robot)은 슈퍼컴퓨터에 해당하는 인공지능시스템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로봇들을 움직여 반란을 일으키는 줄거리다. 인류 전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인류를 통제해야 한다고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간 인간과 로봇, 인간과 기계의 전쟁은 SF영화에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는 컴퓨터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인간을 해친다. ‘터미네이터 3’에서는 기계들의 반란을 유도해 인류를 멸망시키려 하는 고도로 발달된 기계네트워크인 ‘스카이넷’이 자신을 자각한 후 인류에 무차별 핵공격을 퍼 붇는다. ‘애니 매트릭스’에서는 어느날 인간에게 불복종의 마음이 생긴 기계들을 인간이 탄압했고, 독립국을 건설한 기계들이 인간과의 공존을 제안했으나 무시당하자 인간과 전쟁을 시작한다. 이들 영화에서 그려진 기계들은 인간과 대립하기까지 모두 나름대로의 이유를 갖고 있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자신을 자각했기 때문에, 자신이 무시당했기 때문에, 그리고 자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시스템이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생각하고, 느끼고, 진화할 수 있는 존재였다. 인간과 별반 차이가 없다. 아이 로봇에 등장하는 로봇 ‘써니’는 인간과 모습이 흡사함은 물론이고 “나는 누구인가요?”라며 자신의 정체성까지 고민한다. 인간과 기계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다. 그런데 도대체 로봇이 생각한다는 영화의 설정은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로봇이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지식을 쌓고 스스로를 진화시키는 로봇은 가능한가? 만약 이 세가지가 가능하다면 로봇은 반란을 일으킬 수 있을까? 영국 레딩대 인공두뇌학과 교수인 케빈 워릭은 1997년 출판한 그의 책 ‘로봇의 행진, 21세기 지구의 주인은 로봇’에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정확히 말해 현재 인간은 뛰어난 지능 때문에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생명체지만 가까운 장래에는 기계가 인간보다 더 지능적으로 될 가능성이 있고, 그 때는 기계가 지구를 지배하는 생명체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런 그의 선택은 뭘까? 그는 직접 기계인간이 되기로 결심했다. 케빈 워릭은 인류 최초의 ‘사이보그’가 되기 위해 스스로 실험대 위에 올랐다.

‘칩슨가족’의 등장

사이보그(cyborg)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생물과 기계장치의 결합체’로 나온다. 사이보그는 인간과 기계의 결합체를 연구하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생물체, 유기체를 의미하는 ‘오가니즘’(organism)이라는 두 단어를 합친 것. 사이보그라는 말은 1960년 미국의 만프레드 클라인즈와 나단 클라인이 함께 쓴 논문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들은 인간이 우주복을 입지 않고도 우주를 여행하려면 인체를 기술적으로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유기체와 기계, 생물과 무생물의 합성물을 사이보그라고 불렀다.

사이보그라고 할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사람’은 SF영화 속 주인공인 ‘600만불의 사나이’나 ‘터미네이터’ ‘로보캅’ 등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한쪽 팔이 로봇팔이거나 인공심장과 같이 몸의 일부에 인공장기를 이식한 사람도 사이보그다. 더 넓게는 예방주사를 맞은 어린이나 틀니를 한 노인도 기술적 의미에서 사이보그라고 할 수 있다. 일례로 뇌 보철 장치가 있다. 뇌 보철 장치는 뇌의 일부가 손상돼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그 자리에 넣어주는 기계장치를 말한다. 2003년 3월 미국의 신경과학자들은 세계 최초로 뇌 보철 장치를 개발했다.

당시 이들이 선보인 뇌 보철 장치는 반도체 칩이었다. 해마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인공 해마’를 만든 셈. 해마는 새로 학습한 내용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해마를 손상당한 사람은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만약 인공 해마를 사람의 뇌에 제대로 이식하기만 한다면 알츠하이머병이나 간질, 뇌졸중 등의 질환으로 기억 장애를 보이는 환자들의 기억력을 회복시켜줄 수 있다. 요즘 눈과 귀 등 사람의 감각기관을 대신하는 전자 장치도 개발 중이다. 청각 장애인들이 전화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해주는 달팽이관 이식장치는 이미 개발돼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심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만이 사이보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 문제가 없이 건강한 사람도 사이보그가 될 수 있다. 미국의 ‘칩 가족’이 대표적이다(USA 투데이는 만화 ‘심슨가족’을 본따 이들을 ‘칩슨가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난 2002년 5월 미국 플로리다주의 제이콥스 가족 3명은 자신들의 몸에 ‘베리칩’(VeryChip)을 이식했다. 베리칩은 미국의 ‘어플라이드 디지털 솔루션스’가 선보인 컴퓨터 칩이다. 길이 12mm, 너비 2.1mm로 크기가 쌀 한 톨만해서 일반 주사기를 사용해 간단히 피부 밑에 이식할 수 있다. 베리칩에는 실리콘 메모리가 있어 여기에 개인의 신원과 질병 이력 등 원하는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또 무선 송수신 장치가 있어 스캐너로 칩 안에 저장된 정보를 판독해 외부로 전송할 수 있다. 만약 베리칩을 이식한 환자가 의식을 잃고 응급실에 실려 오면 의사들은 베리칩에 저장된 정보를 읽어내서 환자의 이름, 전화번호, 질병 기록 따위를 신속히 파악할 수 있다.

제이콥스 가족도 이런 이유 때문에 베리칩을 이식했다. 퇴행성척추질환과 만성 안질환 등 여러 후유증으로 10여가지 약에 의존하는 중환자인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갔을 때 의사에게 자신의 질병을 설명하지 못해 목숨을 잃을 뻔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이콥스 가족이 베리칩을 이식함으로써 이들은 세계 최초의 사이보그 가족이 됐다. 이 외에도 기계와 살아 있는 동물의 신경을 연결하려는 연구도 있다. 독일의 막스 플랑크연구소에서는 신경에 신호와 정보를 주고받는 통신 기술을 개발해 살아 있는 거머리의 움직임을 컴퓨터로 제어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이보그 연구 중 단연 돋보이는 사람은 바로 워릭 교수다. 그의 팔에는 아직도 컴퓨터 칩이 박혀 있다. 그는 도대체 왜 사이보그가 되려고 했을까?

프로젝트 사이보그 1.0

1998년 8월 24일 월요일 오후 4시. 워릭 교수는 자신의 왼쪽 팔 근육에 23mm×3mm 크기의 동전만한 실리콘 칩을 집어넣는 수술에 들어갔다. 9일 뒤 실리콘 칩은 제거됐다. 하지만 칩은 제거되기 전까지 제 몫을 다했다. 조그만 컴퓨터 칩은 워릭 교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던 것. 워릭 교수가 연구실이 있는 건물로 들어서면 건물 관리 컴퓨터는 그의 팔에 있는 칩의 신호를 인식해 알아서 문을 열고 연구실의 모든 전원까지 자동으로 켰다. 그렇다면 그가 직접 자신을 실험의 대상으로 삼았던 이유는 뭘까? 다른 실험처럼 동물에 먼저 칩을 이식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지난 2001년 내한한 워릭 교수는 “영국에서는 동물보호운동이 강하기 때문에 동물실험이 더 힘들다”고 대답했다. 무엇보다 “사람의 감정은 동물실험을 통해 알 수 없기 때문에 직접 칩을 이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가 사이보그가 되기로 결심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는 평소 머지않아 인간보다 뛰어난 기계가 출현해 자칫하면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자신의 몸에 컴퓨터 칩을 이식함으로써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가 기계의 감시 아래 놓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 위해서 실험을 감행했던 것이다. 인간이 기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컴퓨터 칩을 이식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www.kevinwarwick.com)에서 이 실험을 ‘프로젝트 사이보그 1.0’(Project Cyborg 1.0)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그 실험은 ‘인간이 컴퓨터와 융합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What happens when a man is merged with a computer?)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해답은 뭘까?

워릭 교수는 “인간은 기계를 능가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화론에 따르면 먼 옛날 침팬지에서 인간이 갈라졌다. 그는 지금 인간이 또 다른 진화를 겪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 인간은 기계로 진화하는 단계라는 것. 자연 그대로의 인간에서 반은 인간, 반은 기계인 사이보그로 진화하는 단계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래서 그가 찾은 해답이 사이보그다. 사이보그야말로 기계를 통해 인간을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미래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기계의 두뇌는 그 용량이나 능력을 무한히 계속 확장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두뇌는 그렇지 못하다. 때문에 기계의 두뇌와 인간의 뇌를 결합시키면 정보의 저장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고, 네트워크로 연결도 가능하다. 워릭 교수는 “사이보그는 부분적으로 사람이면서 부분적으로 기계인 존재다. 기계가 사람의 기능을 높일 수 있다면, 인류는 사이보그를 통해 새로운 종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프로젝트 사이보그 2.0

워릭 교수의 ‘사이보그 되기’는 4년 뒤 다시 한번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2002년 3월 14일 그의 ‘프로젝트 사이보그 2.0’이 시작됐다. ‘2.0’이란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번 실험은 1.0에 비해 훨씬 더 ‘업그레이드’ 됐다. 이번에는 단순한 실리콘 칩이 아니었다. 100개의 실리콘 전극이 달린 대못만한 전기배열기를 자신의 왼쪽 손목 신경에 집어넣었다. 인간과 컴퓨터가 연결되는 것을 넘어서 그의 신경이 컴퓨터에 결합됐다. 이를 위해 그는 옥스퍼드 래드클리프 병원에서 왼쪽 2시간에 걸쳐 수술을 받았다. 수술진은 먼저 가로 세로 3mm의 정사각형 실리콘 칩을 워릭 교수의 왼쪽 손목 근처에 이식했다. 그 다음으로 칩에서 나온 머리카락 굵기의 전극 100개를 정중신경에 연결했다. 그리고 이 칩에서 감지되는 신경 전달 신호를 외부 컴퓨터에 연결시킬 연결 케이블 접속장치도 팔뚝의 피부 바로 아래에 심었다.

실험에 나선 사람은 워릭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아내 이레나도 실험에 참여했다. 이레나의 신경에 전극바늘을 삽입했다. ‘사이보그 커플’이 탄생했다. 도대체 워릭 교수가 ‘프로젝트 사이보그 2.0’에서 얻고자 했던 것은 뭘까? 워릭 교수는 당시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 실험을 통해 감정 상태나 느낌, 손가락 움직임에 관여하는 신경 전달 신호를 해독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놀랐을 때나 충격을 받았을 때 발생하는 전기 신호를 해독해 특정한 감정 상태에서 손가락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기 위한 것. 그는 2001년 이미 “자체 전원과 라디오파 송수신 기능을 갖춘 칩을 또다시 이식할 계획이며 이번에는 칩을 신경에 직접 연결할 것”이라고 자신의 계획을 밝힌 적이 있었다. 그 때에도 “아내의 팔에 칩을 이식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상대방이 느끼는 감촉과 더불어 감정까지 알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워릭 교수는 고소공포증이 있어 높은 곳에 가면 손이 떨린다고 한다. 이 때 손가락의 떨림이 신경을 통해 칩에 전달되고, 이 신호가 인터넷을 통해 멀리 떨어진 아내에게 전달된다. 이로부터 아내는 워릭 교수가 처한 상황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의사소통 방법이 가능한 것이다. 워릭 교수는 “칩과 신경계가 완벽하게 연결되면 손발이 없는 사람이 로봇 손발을 이식해 생각만으로 움직일 수 있으며 외부에서 전기신호를 줘 신체의 통증을 경감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실험으로 척추손상과 같은 신경마비를 겪고 있는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했다.

시기상조 비판 받아

그렇다면 실제로 과학자들은 워릭 교수의 연구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그를 한낱 ‘엽기 과학자’(mad scientist)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워릭 교수 본인은 “그 말을 듣는게 처음이 아니다. 별로 기분 나쁘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워릭 교수가 ‘프로젝트 사이보그 1.0’을 마쳤을 때 기존 과학계는 “지나친 기대와 공포를 유발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퍼부었다. 심지어 워릭 교수를 ‘익살광대’나 ‘미디어의 매춘부’라고 비꼬기까지 했다. 2001년 12월에는 워릭 교수가 영국 왕립연구소에서 크리스마스 과학강연을 했는데, 이 때도 과학계는 한바탕 논란에 휩싸였다. 크리스마스 과학강연은 1825년 패러데이가 크리스마스 휴가 중에 아이들을 위해 즐겁고 재미있는 과학강연회를 열었던 것이 시초가 돼 이후 170여년을 이어오며 왕립연구소의 대표적인 행사로 자리잡은 전통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 자리에 과학계에서 합의조차 되지 않은 워릭 교수의 생각을 발표하는 것은 과학자들의 비판의 실마리를 제공한 셈이었다.

2002년 그가 ‘프로젝트 사이보그 2.0’을 감행했을 때도 대다수 과학자들의 그의 실험이 아직 때이른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선 생체실험이 문제였다. 왜 곤충과 같이 좀 더 단순한 신경 조직을 갖고 있는 생물체를 대상으로 먼저 실험을 하지 않는가. 과학이 좀 더 발달한 후에 생체실험을 해도 늦지 않는데 말이다. 기술적으로 아직 미흡하다는 것도 또 하나의 반대 이유였다. 아직은 워릭 교수가 밝히고자 하는 전기 신호를 감지할 만큼 정교한 기계나 컴퓨터가 개발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 특히 사생활 보호 단체들은 워릭 교수의 칩 이식 실험을 비롯해 베리칩의 이식 등 인간에게 칩을 이식하는 것은 인권 침해의 소지가 많다고 지적한다. 얼마든지 오용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베리칩 제작사는 베리칩에 위성과 송수신을 통해 신상과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할 수 있고, 이것이 완료되면 항공기 등의 보안 문제를 해결하는데 매우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똑같은 이유로 전과자나 종업원 등에게 베리칩을 강제로 이식해 행동을 감시한다면 이는 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칩 이식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문제다. 워릭 교수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2001년 워릭 교수의 크리스마스 과학강연을 주선했던 왕립연구소의 수잔 그린필드 소장이 대표적이다. 그린필드 소장은 주부들도 과학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지론을 펴고 있는데, 그가 보기에 워릭 교수는 사람들의 관심을 과학으로 모을 수 있는 적격자였다(미국 TV시리즈 ‘X파일’에서 ‘스컬리’역을 맡은 질리언 앤더슨도 워릭 교수를 지지하기도 했다. 극중에서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냉철하게 비판하는 스컬리가 새로운 생명체격인 사이보그를 지지하는 것은 일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사이보그 세상이 온다

과연 워릭 교수의 주장대로 인류의 미래는 사이보그일까. 미래학자들은 지금 속도라면 2015년쯤이면 우리 주변에서 눈에 보이는 커다란 컴퓨터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입고 다니거나(웨어러블 컴퓨터) 몸안에 지니고 있을 것(칩 이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030년경에는 우리의 뇌 안에 칩을 넣어 인간의 생각을 직접 컴퓨터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컴퓨터 칩이 모든 감각을 통제하는 사이보그 세상이 가능해진다. 칩은 각각의 IP 주소를 갖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무선으로 다른 사람들의 네트워크와도 연결돼 하나의 거대한 통합 신경망을 이룰 수 있다. 인간은 사이보그가 되면서 몸의 기능과 감각은 좀더 향상될 것이다. 사이보그에겐 불치병이란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2050년에는 사이보그들끼리 생각만으로 뜻을 주고받는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도 텔레파시로 의사전달을 한다. 또 사이보그들은 컴퓨터 통신망에 뇌의 송수신 장치를 연결해 세계 곳곳의 수많은 사람들과 생각 신호로 정보를 교환한다. 덩달아 전화는 물론 언어가 쓸모없어진다. 인류는 사이보그라는 전혀 새로운 종으로 진화한 것이다. 하지만 사이보그 세상이 장밋빛 미래만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인류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거나 피조물에게 지배권을 빼앗길 수 있다고 내다보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이를 ‘포스터휴먼’(posthuman), 곧 인간 이후의 시대라고 부른다. 가장 먼저 인류의 미래를 점친 영국의 데스먼드 버널은 1929년 ‘세계, 육체, 악마’라는 소책자를 펴냈는데, 버널은 제목으로 뽑은 세 가지가 바로 인류의 적이라고 생각했다. 가난이나 홍수 같은 물질적 장애가 세계라면 질병이나 죽음 같은 신체적 한계는 육체, 탐욕과 질투 같은 정신적 약점은 악마로 본 것. 그리고 그는 인류가 이 세 가지 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식을 낳는 기계를 만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60여년 뒤 미국의 나노기술이론가인 에릭 드렉슬러는 ‘창조의 엔진’에서 자기복제 기능을 가진 나노로봇의 개발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988년 미국의 로봇공학 전문가인 한스 모라벡 역시 ‘마음의 자식들’이란 책에서 미래사회는 사람보다 수백배 뛰어난 인공두뇌를 가진 로봇에 의해 지배되는 후기 생물사회가 될 것이므로 인류의 문화는 사람의 혈육보다 사람의 마음을 모두 넘겨받은 기계 곧 마음의 아이들에 의해 승계되고 발전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2000년에는 미국의 대표적 컴퓨터 이론가 빌 조이가 ‘왜 미래는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가’에서 유전공학, 나노기술, 로봇기술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펼쳐 보이며 자기복제 기계가 개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빌 조이는 컴퓨터기업 선 마이크로 시스템스 대표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침팬지, 인간, 그 다음은 사이보그?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운명의 장난이었다. 나는 우리가 이 운명을 바꿀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2000년 워릭 교수는 미국 ‘와이어드’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신을 생체실험의 대상으로 삼아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에서 사이보그로 변신함으로써 자신의 말을 증명했다. “우리는 인간의 신체가 어떻게 작동하고 육체적으로 무엇이 가능한지 아직 잘 모른다. 한 세기 전 켈빈 경이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 기계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것처럼 지금 우리는 기계가 항상 우리의 지배를 받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얘기에 현혹된다.” 같은 해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인간이 기계의 지배를 받을 가능성은 충분하며 자신의 팔에 칩을 이식함으로써 칩에 감시당할 수 있음을 보였다.

“모든 사람이 다 사이보그가 돼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 인간인 상태에 만족한다면, 지금 그대로 머무르면 된다. 하지만 잊지 말라. 우리 인간이 아주 오래 전 침팬지에서 분리됐던 것처럼 사이보그도 인류에서 분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인간으로 남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류가 될 것이다. 그들은 ‘미래 세상의 침팬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책 ‘아이, 사이보그’(I, Cyborg)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기계의 지능은 네트워크화하기 쉽고 수백 가지 차원으로 정보처리가 가능하지만 인간은 가까운 곳에서도 메시지를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오류투성이다. 스스로 학습하고 생각하며 환경에 적응하는 로봇의 등장이 가까워진 지금 인간은 사이보그로 진화할 수밖에 없다. 지미 핸드릭스의 록 음악과 오토바이에 열광하던 평범한 소년이었던 케빈 워릭은 지금 사이보그 연구를 이끄는 ‘사이보그 시민 1호’가 됐다. 그는 여전히 ‘나는 사이보그가 되길 원해’(I want to be a cyborg)라고 외치고 있다. 그가 얘기하는 사이보그 세상이 곧 닥칠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워릭 교수의 주장을 한낱 공상과학소설 정도로 치부하기에는 그의 몸에 박힌 컴퓨터 칩이 시사하는 바가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