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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와 21세기 과학문화: 회고와 전망 - 박상준

2008.04.06.

SF와 21세기 과학문화: 회고와 전망 - 박상준

1.들어가는 말

지금 우리나라의 청소년, 혹은 대학생이 장차 우주탐험을 꿈꾼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혹은 질문을 좀 바꾸어서, 우리나라 청소년이 장래 우주탐험가가 될 수 있는 현실적 조건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필자가 아는 한, 우리의 어린이들이 우주비행사의 선발 및 훈련과정, 그리고 그들의 실제 우주 생활 등을 가장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길은 다름 아닌 번역된 일본 만화를 보는 것이다. 대형 서점의 교양과학 코너나 진학 및 진로지도 안내서들을 봐도 장차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지침서들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극한의 별', '프라네테스', '문라이트 마일'과 같은 만화들이 그런 과정을 훨씬 정확하고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다. 어쩌다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도 우주비행사가 되려면 먼저 공군 조종사가 되어 많은 경력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주비행사는 말 그대로 우주선을 조종하는 사람일 뿐이고, 실제 우주에서 여러 가지 탐사나 연구 활동을 하는 것은 각 분야의 과학자들이다.

최근 중국이 유인우주선 발사에 잇달아 성공했지만, 이 분야는 아직까지 미국의 입지가 독보적이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유럽우주기구(ESA)를 중심으로 미국의 독주에 제동을 걸려는 움직임이 활발한데, 그 일환으로 1987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국제우주대학(ISU : International Space University)이 설립된 바 있다. 이곳은 ‘미래의 우주지도자를 위하여’라는 모토를 내 걸고 각 학문 분야들의 통합, 세계 각국 문화들의 통합, 그리고 우주개발 전문가의 훈련 및 연구를 위한 국제적 환경 조성이라는 세 가지 철학을 내세우며 대학원 중심으로 운영되는 학교이다. 우주과학, 우주공학, 시스템 공학, 우주 정책과 우주법, 경영학, 우주와 사회 등등의 수업이 있으며 1년간의 석사 과정과 두 달 간의 여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특히 여름 프로그램은 세계 각지를 돌며 진행되는데, 2007년에는 중국 북경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제까지 세계 87개국에서 온 2200명 정도의 학생들이 졸업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학교의 초대 총장은 세계적인 미래학자이자 SF작가인 아서 클라크가 맡아 16년간이나 재직했었다. (2003년부터는 유럽우주기구(ESA)의 총재가 이 대학 총장도 겸임하고 있다.) 우주개발을 위한 교육기관의 책임자 자리를 왜 과학자나 교육행정가가 아닌 SF작가에게 맡겼을까?

2. SF, 미래 예측을 넘어서

‘과학문화’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SF(과학소설)가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 내지는 기능을 할 수 있는지 먼저 다음의 사례로 얘기를 시작해 보자.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어느 날, 미국 FBI 수사관들이 뉴욕에 있는 한 작은 잡지사에 들이닥쳤다. 잡지의 이름은 '어스타운딩 사이언스 픽션(Astounding Science Fiction)'. 그들의 혐의는 국가기밀 누설이었다. 당시 미군에서 극비리에 개발 중이던 가공할 신무기가 그 잡지의 한 단편소설에 생생하게 묘사됐기 때문이다. 문제의 작품은 클리브 카트밀(Cleve Cartmill)이란 작가가 쓴 '데드라인(Deadline)'이란 SF였고, 이 단편에서 묘사된 신무기란 다름 아닌 원자폭탄이었다.

당시 미국정부는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을 끌어 모아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극비리에 원폭을 개발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언론매체에 그와 관련된 일체의 정보공개를 막았고, 심지어 과학 잡지에서 학술적인 주제가 되는 일도 교묘하게 방지했다. 그런데 SF잡지만큼은 아무런 통제나 공작도 취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다. 당시 미국에서 발간되던 SF잡지들은 대부분 유치한 그림의 표지와 싸구려 종이, 말초적인 오락소설 등으로 채워져 점잖은 대접을 못 받고 있었다. 그래서 ‘유치한 SF작가나 독자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결과 당시 핵무기에 대해 공개적으로 자유롭게 논의했던 사람들은 SF잡지와 그 독자들뿐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FBI의 취조 결과 밝혀진 정보의 출처는 다름 아닌 공공도서관이었다. 작가는 그곳에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물리학 이론서만을 참고했을 뿐, 나머지는 오로지 작가의 과학적 상상력만으로 채워진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순전히 우연의 일치, 아니 SF작가의 상상력에 기인한 필연적 우연이었던 셈이다.

이 해프닝은 SF가 과학적 미래 예측의 한 유력한 형태라는 점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사례이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단지 사건의 표면적 차원에서 SF를 과학기술의 계몽 수단으로서만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SF는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내다봐야 하며 그래야 좋은 SF로 평가할 수 있다는 식의 입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있는데, 이는 SF의 역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생각이다. SF는 기본적으로 문학, 즉 예술적 창작행위의 한 형태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작가의 창의적 상상력이나 미학적 차원에서 본 작품의 성취도이지 미래 예측의 정확성이 비평의 주요 잣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우리는 SF를 읽으면서 과학기술적 미래상이나 아이디어의 참신성에 흥미를 느끼는 것 못지않게 작품 전반에 깔린 문명 비판적 맥락도 포착해야 한다. 앞에서 예로 든 단편 '데드라인'의 경우에도 소설 속에서는 전쟁 당사국들이 결국 원폭을 사용하지 않기로 선언한다. 원폭의 위력이 너무나도 대단해서 인류에 큰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데드라인' 이전에도 이미 핵무기나 원자력을 상세하게 묘사한 SF소설은 여럿이 있었다. 핵무기가 전 세계에 대량 확산되면서 딜레마에 빠지는 상황은 일찍이 1941년에 어떤 SF작가가 예언한 바 있고, 그보다 앞선 1940년에는 원자력 발전소의 노동자 문제를 다룬 작품이 나오기도 했다. 또 1942년 9월호 '어스타운딩 SF' 잡지에는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를 다룬 '과민성(Nerves)'이라는 작품이 실렸는데, 이 해는 원자력 발전의 핵심기술인 핵분열 제어실험에 겨우 성공한 해이다. 이런 SF들의 과학적 상상력이나 미래 예측에 흥미를 느끼는 것을 넘어 그로 인한 사회적 파장까지 일찍부터 주목했다면, 그 이후의 사회적 윤리나 정책 차원의 대응도 조금은 다른 양상으로 흐르지 않았을까?

하지만 SF는 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과학 및 문화 양쪽 영역에서 모두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마이너 영역이었다. 그나마 인문학자들이 이런 쪽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1945년의 원폭 충격 이후의 일이며, 그것도 과학 그 자체를 새롭게 바라보려 한 것일 뿐 SF의 문명비판 기능에까지 적극적인 관심이 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SF가 과학적 상상력이라는 본령 못지않게 문명 반성의 실제적 매뉴얼일 수도 있다는 점은 1960년대를 지나면서 여러 작품에서 서서히 드러나게 되었다. 그 결과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주저 '미래쇼크 Future Shock (1970)'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된다.

“...학생들에게 역사 과목은 가르치면서 왜 ‘미래학’과목은 없는가? 우리가 지금 로마의 사회 제도나 봉건시대 장원의 대두를 탐구하듯이 왜 미래의 가능성과 개연성을 체계적으로 탐구하는 과목은 없는가? ...SF를 문학작품이 아니라 일종의 미래 사회학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예측의 습관을 길러내는 정신확장력으로서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어린이들은 클라크, 텐, 하인라인, 브래드버리, 셰클리 등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이 작가들이 어린이들에게 우주선과 타임머신에 관해 알려줄 수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어린이가 어른이 되어 부딪치게 될 정치적, 사회적, 심리적, 윤리적 문제의 정글 속을 상상력을 발휘해 탐험해 보도록 어린이들의 마음을 이끌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SF는 ‘미래의 나’를 위해 읽혀져야만 한다.”

물론 SF의 미래 예측 기능을 단순히 지엽적인 수준에서만 거론할 일은 아니다. SF가 미래 그 자체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예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직접 창조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의 사례가 좋은 보기가 될 것이다. 세계 최초의 산업용 로봇 제조회사는 1962년에 미국 코네티컷 주에 설립된 ‘유니메이션’사이다. 제너럴 모터스 사에 설치된 이 회사의 제품이 사상 최초의 산업용 로봇이다. 오늘날 전 세계의 산업용 로봇 시장을 형성하고 로봇공학의 물리적 토대를 제공하는데 이 회사가 결정적인 공헌을 했음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이 회사의 사장 조셉 엥겔버거는, 대학생 시절에 아이작 아시모프가 쓴 단편 '나는 로봇(I, Robot)'을 읽고 로봇의 가능성에 눈을 떴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1970년대 들어서 일본 회사들이 이 분야에 대거 진출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미국 산업용 로봇 시장에서 일본 제품의 점유율이 크게 높아졌는데, 당시의 일본 기술자들은 데스카 오사무의 ‘아톰’ 로봇을 보고 자란 세대이다. 이를테면 일본의 ‘아톰’이 미국의 아시모프 로봇을 밀어 낸 셈이랄까?

오늘날 일본의 로봇공학, 특히 인간형(휴머노이드) 로봇의 개발 수준은 주지하다시피 세계 최고이다. 비록 ‘혼다’사에서 개발한 인간형 로봇의 이름은 아시모프에서 딴 ‘아시모’이지만, 그들에게는 로봇이라면 단연 ‘아톰’의 친숙한 이미지가 압도적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2001년 우주의 오디세이'를 감독했던 스탠리 큐브릭은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로봇을 두려운 존재로 보지만 일본인들은 그렇지 않다. 일본 사람들은 로봇을 정말로 좋아한다.’ 그의 말이 맞았던 것일까? 큐브릭이 진행하다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넘겼던, 로봇 소년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 'A.I.'는 일본에서 개봉 주말동안 150만 명을 동원하며 '스타워즈:에피소드 1'을 능가하는 역대 최고의 주말흥행을 기록한 바 있다. SF와 과학문화라는 측면에서 유념해 볼만한 대목인 셈이다.

3. SF와 인문학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주류 인문학에서 과학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은 1945년 이후의 일이다. 그와 함께 SF가 아닌 주류 문학의 작가들도 SF적 형식을 차용하여 작품을 쓰기 시작했으며, 이는 곧 SF와 주류문학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요컨대 주류 문화계에서 과학이라는 테마, 그리고 SF라는 방법에 본격적으로 주목하게 된 것이다. 이 융합의 결과가 바로 ‘재앙 이후(post-catastrophe)’라는 장르의 탄생이다. 핵무기의 등장은 당시까지 과학만능주의와 상통하던 모더니즘의 환상을 깨트리고 인류 자멸의 불길한 가능성을 인식하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확장되었다. 이런 새로운 현실 인식은 ‘재앙 이후(post-catastrophe)’, 혹은 ‘종말 이후(post-apocalyptic)’라는 새로운 묵시록적 전망을 낳았다. 1945년 이후로 ‘재앙 이후’를 다룬 모든 문학작품은 공상이 아닌 실상의 설득력을 지니게 되었으며, 이런 소설들은 오늘날엔 완전히 독립적인 장르로 자리 잡은 상태이다.

주류문학계에서는 먼저 핵전쟁 발발 상황 그 자체에 감정을 이입시키려는 시도들이 나왔다.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네빌 슈트(Nevil Shute)가 1957년에 낸 장편소설 <해변에서(On the Beach)>가 있는데, 이 작품은 1959년에 그레고리 펙과 에바 가드너 등이 주연하고 스탠리 크레이머가 감독한 동명의 영화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날이 오면>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하여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걸작으로서, 3차 대전 이후 전 세계가 방사능에 오염되고 난 뒤 돌아갈 곳이 없어진 미국 핵잠수함 승무원들의 이야기를 담담하지만 애잔한 정서로 묘사하고 있다. 그들을 유일하게 반겨주는 대지는 호주대륙이지만, 그곳 역시 방사능 구름이 점점 몰려와서 국민들이 자살용 약을 배급받고 있다. 1959년에는 이스라엘 출신의 작가 모르데카이 로쉬왈트(Mordecai Roshwald)가 <핵폭풍의 날(Level Seven)>을 내놓아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원제는 ‘지하 7층’이라는 의미이며, 핵전쟁이 발발하면서 외부와 완전히 격리되어 버린 지하호의 군인들(그들은 이름이 없이 그저 X-117, P-867등의 부호로만 불려진다)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애써 지상의 삶과 같은 일상들을 꾸려가고자 애쓰지만 날이 갈수록 절망이 차오르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로쉬왈트는 1962년에는 핵잠수함이 독립국가 선언을 한다는 설정의 <세계의 조그만 종말(A Small Armageddon)>을 내놓아 역시 호평을 받으며 이른바 ‘반핵소설’의 선구자격인 위치를 차지했다. 이상의 작품들은 서구에서는 모두 스테디셀러로 지금까지 꾸준히 읽히는 고전들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1960년대에 번역판들이 나온 바 있다.

4. 21세기 문화에서 SF의 의미와 위상

앞서 언급한대로 1945년 이후 주류문학계가 SF적인 테마와 기법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면서 두 영역간의 경계가 모호해지자 SF 그 자체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된다. 이러한 점 역시 앨빈 토플러가 1975년 런던의 현대예술연구소(ICA) 강연 중에 거론한 바이다. "산업 사회에서는 개개인들뿐만 아니라 SF도 역시 자기정체성의 실종 위기를 맞고 있다. SF는 지금 전체 문화체계 안에서 그 스스로의 독자성을 보존해나가려면 이른바 '주류문학'이라고 하는 기존의 문학과 어떻게 관계설정을 해야 할지 곤란을 겪고 있다. 또한 환상소설이나 초현실주의, 부조리연극 같은 것들과는 어떻게 차별성을 유지해나갈지도 문제이다. 게다가 '미래주의'나 '미래학'과 충돌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서면서 SF가 스스로의 독자적 정체성을 주류문화의 전면에 부상시키는 가장 극적인 예가 등장했다. 1984년에 윌리엄 깁슨의 장편 <뉴로맨서(Neuromancer)>가 나온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1960년대에 로버트 하인라인의 장편SF <낯선 세계의 이방인(Stranger in a Strange Land)>이 청년 히피문화에 영향을 주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비주류의 영역이었고, 또 1970년대 말부터 이어진 <스타 워즈>나 등 일련의 대작 흥행 SF영화들도 단지 엔터테인먼트의 차원에 머물렀을 뿐이다. 그러나 <뉴로맨서>에서 비롯된 이른바 ‘사이버펑크(cyberpunk)'의 조류는 20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우리의 생각과 일상을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해왔다. 아마도 이 소설은 지난 20여 년간 나왔던 모든 SF중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뉴로맨서>가 아니었다면 <매트릭스>나 <공각기동대>도 없었을 것이며 오늘날 가상현실과 관련된 온갖 담론들도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뉴로맨서>는 지금은 너무나도 익숙한 컴퓨터 정보통신망과 그 환경에서 파생된 온갖 용어들, 즉 사이버펑크(급진적, 자유주의적인 컴퓨터 청년문화), 사이버스페이스, 가상현실, 매트릭스(컴퓨터 네트워크), 아이스(컴퓨터 보안시스템) 등등의 모태가 된 작품이다. 이 용어들이 모두 <뉴로맨서>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들과 관련된 정서와 감성은 <뉴로맨서>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이 작품은 하드웨어의 차원을 넘어서 컴퓨터 정보사회가 낳을 새로운 사회상과 감수성을 예리하게 전망한 것이다. 199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는 온갖 SF소설이나 영화는 물론이고 우리의 일상적인 정보통신 문화의 단면들은 어떤 의미에서든 모두 <뉴로맨서>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현재의 가상현실 하드웨어가 지향하는 기술적 미래상도 <뉴로맨서>에서 모델을 취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컴퓨터와 인간의 결합, 즉 감각신경과 두뇌가 컴퓨터와 결합되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타인에 대한 감각 이입은 물론 감정이입까지도 가능해진다. 이런 환경에서 파급될 사회상과 정서, 문화의 미래상은 기존의 SF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부분이다.

SF작가이자 그 자신 사이버펑크의 열렬한 전도사였던 브루스 스털링은 <뉴로맨서>에 대해 ‘진부한 미래는 이제 안녕이다!’라고 평한 바 있는데, 이 말은 사회와 문화 속에서 새롭게 변화하는 SF의 위상에 대한 매우 주목할 만한 언급이다. 즉 <뉴로맨서> 이전의 SF는 우주활극이나 과학적 낙관주의에 근거한 장밋빛 미래상만이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이런 구태가 완전히 허물어진 것이다. 1945년 이후 주류문학계는 새롭게 ‘과학’의 의미를 재설정하고 SF적인 기법을 차용하여 ‘재앙 이후’라는 새로운 분야를 내놓았지만, 1980년대의 컴퓨터 정보통신 혁명은 SF 그 자체의 체질 변화를 가져 온 셈이다. <뉴로맨서>는 과학과 사회의 미래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아닌 건조한 사실적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다.

이렇듯 SF의 위상에 역동성이 두드러지게 된 것은 사실 인류 문명 차원의 더 광범위한 변화와 맥을 같이 한다. 인류역사에서 20세기는 과학기술의 발달이 일정한 임계점에 다다른, 글자 그대로 전무후무한 시대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일정한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말해서 ‘과학기술적 세대교체의 속도가 인간의 생물학적 세대교체 속도를 앞지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러한 ‘추월’은 지금의 인류문명이 멸망하거나 퇴보하지 않는 한 역사상 단 한 번만 일어날 사건이다.

이 사건, 즉 ‘추월’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삼국시대와 조선시대는 시간적으로 수백 년의 차이가 나지만, 각각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구체적인 생활상은 그다지 큰 차이가 없었다. 농사를 짓는 데 가축의 힘을 빌리고, 여행수단은 고작해야 말을 타거나 아니면 그냥 걸어 다니는 식이었다. 수백 년 동안 똑같았다. 그러나 20세기에 태어난 사람들은 수십 년, 그리고 심지어는 수년 단위로 눈부시게 변화하는 과학기술적 생활환경 안에서 숨 가쁘고 힘겨운 문명인의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인류 최초의 비행기가 등장했을 때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평균적인 수명을 누리고 숨을 거둘 즈음엔 이미 달에 인간의 발자국이 찍힌 다음이었다. 인류역사상 인간의 생애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처럼 엄청난 변화를 체험한 세대는 일찍이 없었다. 더구나 1980년대 이후부터는 개인용 컴퓨터의 광범위한 보급과 급속한 개선이 ― 8비트에서 XT, AT를 거쳐 386, 486, 586 펜티엄까지 PC의 세대교체가 얼마나 숨 가쁘게 이루어졌는지 돌이켜 보라 ― 몇 년 사이에 세상 사람들을 구세대와 신세대로 나누어놓다시피 했다.

지금 40대 중반 이상의 기성세대는 급속하게 변화해가는 과학기술을 따라가지 못해 곤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20대 중반 이하의 청소년층은 이미 태어나서 성장할 때부터 이러한 변화에 익숙하게 적응해온 편이라 그다지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쉽게 예견할 수 있는 것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모두 과학기술에 익숙한 세대로 대체되는 가까운 미래의 모습은 지금까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양상을 나타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즉, 환경의 속성이 정적이었던 구세대와, 동적인 환경에 익숙하고 그것을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신세대는 그 감성과 사고방식, 세계관 등이 매우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진작부터 추론하고 묘사해왔던 장르가 바로 SF이다.

주류문학과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SF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늘 보조를 같이하며 그보다 한 발 앞선 상상력으로 지탱되는 분야이다. 과학기술이 현실에 드리운 반영을 후발적으로 고찰하는 주류 문학과는 근본적인 관점이 다른 것이다. 이런 전제 하에서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형성된 과학기술적 역동성의 시대인 21세기에는 주류문화의 직접적인 생산자로 SF가 계속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즉, 과학문화에서 출발하여 대중문화로,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인문학의 핵심에까지도 직결될 수 있는 문화의 컨텐츠 고속도로가 바로 21세기의 SF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