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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문화 활성을 위한 TV방송 - 김현기

2008.04.06.

과학문화 활성을 위한 TV방송 - 김현기

1. 서 문

<과학대중화>를 넘어 <과학문화 활성>으로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과학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나 사용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도 모두 영향을 미친다. 일반대중의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것은 이처럼 일반대중들이 생활 곳곳에서 과학기술과 연관된 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나름대로의 판단과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 지식들을 과학전문가 집단이 일반대중에게 전파해야 한다는 '과학대중화'운동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특히 연구 규모가 거대해 질 수밖에 없는 현대과학의 특성상 과학기술에 대한 일반대중의 이해와 지지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거대한 과학(Big Science)의 연구를 진행할 연구비가 상당부분 국민들의 세금에서 충당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과학대중화'운동에서 주의해야 할 관점이 있다. 그것은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이 과학전문가 집단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는 일반대중을 과학지식이 결핍된 대상으로 간주하는 태도이다. 일명 결핍모형(Deficit Model)이라고 불리는 관점에서 생각하면 과학기술 지식은 과학전문가 집단이 일반대중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할 수밖에 없으며, 일반 대중은 수동적으로 과학기술 지식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된다. 그러나 과학기술 지식이란 것이 단일 분야의 지식이 아니듯이 일반대중이란 집단 역시 균일한(homogeneous) 집단이 아니라 매우 불균일한(heterogeneous) 집단이다. 특히 성인들은 나름대로 다양한 삶의 경력을 갖고 있으며, 판단의 근거가 될만한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 접하는 과학기술 지식에 대한 수용을 판단한다.

수동적 지식 소비자로서 일반대중을 바라보는 계몽주의적 관점은 더 이상 선진 방송매체 시장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매우 능동적이고 상호작용(Interactive)적이며 다양한 필요조건을 요청하는 영향력 있는 일반대중만이 방송시장에 존재할 뿐이다. 과학기술 지식이 이런 방송의 대세와는 무관한 독립적 지위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다양하면서 능동적이고 매우 까다로운 지식 소비자인 '일반대중'의 과학적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일반대중이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 알맞은 과학기술 지식을 생활에서 얻을 수 있도록 과학전문가 집단이 능동적으로 '과학대중화'에 참여하는 '과학문화 활성화' 또는 '일반대중의 과학이해(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 PUS) 운동'이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한국에는 'TV 과학프로그램 분야'가 존재하는가?

1985년 영국의 왕립협회(Royal Society)가 특별위원회를 조직해서 발간한 보고서인 '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에서 시작된 <PUS>는 대중이 처해있는 개인적인 상황과 대중의 능동성을 강조한 새로운 형태의 '과학대중화' 개념을 제안했다. 이 개념에 가장 충실하면서 대중의 과학적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는 매체가 바로 'TV 과학프로그램'이다. 현대의 디지털 혁명을 통해 <독점적 동영상 지식전달 매체>로서 'TV'의 지위는 약화되고 있으나, <멀티미디어 지식 콘텐츠 제작중심>으로서 'TV'의 지위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광의의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에는 나름대로 많은 'TV 과학프로그램'이 방송되었고, 지금도 방송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TV 과학프로그램'이 없고, 'TV 방송'을 통한 과학문화의 활성화가 매우 미약하다고 느끼고 있다. 세계 최고의 공영방송인 영국의 BBC(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에서 40년 넘게 꾸준히 제작되고 있는 'Horizon'과 같은 세계적 수준의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너무 식상한 답변이다. 우리나라 방송도 SBS가 드라마 '카이스트'와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 Information + Entertainment) 프로그램 '호기심 천국'을 방송했고, KBS는 현재 건강.의학 프로그램 '생로병사의 비밀'과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인 '스펀지', '비타민'등을 인기리에 방송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방송프로그램이'TV 과학프로그램'으로서의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2004년 KBS에서 조직된 'KBS 환경과학 팀'도 완전한 'TV 과학프로그램 분야'로는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 과학을 그냥 스쳐가는 프로그램의 소재로 생각하지 않고, 프로그램 제작과 프로그램 기획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으로 삼고 과학을 상상력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집단이 'TV 과학프로그램 분야'이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TV 과학프로그램 분야'는 영국 BBC의 <SCIENCE Unit>이다.

2. 한국 'TV 과학프로그램' 현황 및 제작여건

1) 과학 드라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매력적인 TV 프로그램 분야는 단연 '드라마'이다. 우리나라는 일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 이상이면서도 국민의 과반수가 특정 드라마를 시청하기 의해 TV 앞에 모이는 특이한 나라로 해외 방송전문가들에게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지나친 드라마 강세현상이 세계방송시장에서는 독특한 경우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현재 서구 선진국들에서 가장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 분야는 '리얼리티 쇼(Reality Show)'이다. 드라마 왕국 대한민국에서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향력 있는 과학드라마에목말라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순수한 희망사항에 매우 우려할 만한 기준이 되고 있는 프로그램이 존재했었다는 점에 한국 과학드라마 분야의 모순이 존재한다. 아직도 과학계가 과학드라마의 전형 혹은 성공신화로 오해하고 있는 SBS의 드라마 '카이스트'가 바로 그 문제의 드라마이다.

<드라마 '카이스트'>는 매우 성공한 '청춘 드라마'

드라마 '카이스트(KAIST)'는 분명 성공한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를 통해서 이나영, 채림, 지성, 故 이은주 등 신세대 연예인들이 스타의 반열에 올라선 것이 그 명확한 근거이다. 더구나 이 드라마는 제작 방송국인 SBS가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지나친 상업주의적 방송만을 제작한다는 비난의 꼬리표를 떼게 해준 고마운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카이스트'가 '과학 드라마'의 성공한 전형으로 보기에 한계점이 많다는 것이다. '카이스트'는 '과학드라마'가 아니라 전형적인 특수직업 소재 '청춘 드라마'에 가깝다. '과학드라마'는 단순히 과학자나 과학지식을 소재로 사용하는 드라마를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다. 더군다나 드라마 '카이스트'는 제작진들이 제작의도에서 밝힌 대로 한국판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과 같은 드라마였다. 캠퍼스를 배경으로 한 '청춘 드라마'였다는 것이다. 드라마 '카이스트'를 본 많은 젊은 학생들이 청년 과학도를 꿈꾸게 한 이 드라마의 성과는 결코 폄하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과학계의 기대대로 제2, 제3의 드라마 '카이스트'가 제작되지 못하는 상황은 이 드라마가'과학 드라마'가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성공한 드라마 분야가 확대 재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번 사극이 성공하면 여기저기서 사극을 만들어 내고, 애정드라마가 성공하면 여기 저기서 그런 드라마들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미디어의 속성이다. 드라마 '카이스트'는 특수직업을 선호하던 당시의 드라마 인기 방정식을 매우 잘 수용했던 드라마였다.'항공기 조종사와 승무원'이라는 선호직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던 MBC의 드라마 '창공'과 종합병원 의사들을 소재로 성공했던 MBC의 '종합병원'의 전통이 SBS의 드라마 '카이스트'로 이어졌다는 것은 방송계에서는 매우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문제는 드라마 '카이스트'이후 특수직업 중심의 청춘 드라마는 쇠퇴하고 '재벌2세'나'출생의 비밀'등이 청춘 드라마의 화두가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카이스트'가 과학드라마로서 독자적인 성공을 거두었다면 청춘드라마의 유행과는 상관없이 계속 '카이스트'시리즈가 제작되었을 것이다. '청춘 드라마'의 유행은 계속 변화하는 속성을 지녔다. 그 유행이 다시금 '젊은 천재 과학도'라는 소재를 선택하게 하는 방법이 지금 당장 '청춘 드라마'에 과학계의 역량을 모아주는 것이라는 논리는 너무 비과학적이다. 유행의 대세는 때가 되어야만 돌아올 수 있다.

<정통 과학드라마>의 기초는 '어린이 과학드라마'

큰 의미에서 과학드라마에는 다양한 종류의 'SF 드라마', 외국 프로그램인 'CSI 과학수사대' 등의 과학 수사 드라마,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은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접목한 '팩츄얼 드라마'(Factual Drama, 다큐 드라마) 분야 및 어린이 과학드라마, 과학 소재 시트콤 등이 있다. 세계적인 흥행작인 'ER'등의 병원 및 건강관련 드라마도 큰 의미에서는 과학드라마에 속한다. 외국에서 제작된 여러 과학드라마 중에서 가장 본받을 만한 과학드라마는BBC의 'Doctor Who'이다. 1963년부터 매년 시리즈로 방송되어 BBC의 위상을 높여준 SF 드라마 'Doctor Who'의 초기 기획의도가 '토요일 저녁 가족 프로그램 (Saturday night family series)'이었고, 그 기초가 수 많은 어린이용 과학 드라마였다는사실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언젠가는 반드시 제작해야 할 그러나 지금 누군가가 시작하지 않으면 결코 만들어 질 수 없는 'Doctor Who'와 같은 정통 과학드라마의 기초인 '어린이 과학드라마'분야에 과학계의 관심과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다.

2)과학 교양 프로그램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한 'TV 과학 교양 프로그램'의 범위에는 정통 과학 교양프로그램과 우리나라 TV 방송의 큰 흐름을 차지하고 있는 '인포테인먼트 (Infotainment) 프로그램', 정통 '건강,의학 프로그램', 어린이 과학 프로그램이 속해 있다. 정통 과학 교양프로그램으로는 KBS에서 방송되고 있는'8월의 크리스마스 과학강연', '과학 콘서트', '과학의 향기'등 과학강연 프로그램들과 '로보콘 코리아'와 같은 과학행사 프로그램이 있다. 시청자 접촉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형태의 방송 프로그램이지만 과학을 좋아하는 일반인들의 참여라는 공영방송적 사명과 과학계의 지원으로 나름대로 과학프로그램의 기반을 다지고 있는 의미 있는 프로그램들이다. 어린이 과학프로그램으로는 KBS 대전 총국이 제작해서 전국에 방송하고 있는 '신나라 과학나라'가 있다.

<호기심 천국>은 성공한 '인포테인먼트'프로그램

시청자의 호응 면에서는 정보를 재미있게 가공해서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 프로그램이 현재 가장 유망한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최초의 정통 과학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을 표명하며 227회까지 방송되었던 SBS의 '호기심 천국'은 '과학'이라는 분야가 방송의 재미있는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인식시켜준 매우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당시까지 매우 낮은 인지도를 갖고 있던 윤정수라는 무명 연예인을 일약 유명스타 반열에 올려 놓았으며, 황수관 박사를 국민 스타로 만들기도 했던 인기 프로그램 '호기심 천국'. 이 프로그램은 경쟁 프로그램이었던 KBS의 '확인 베일을 벗겨라'를 확실히 압도하면서 '과학 인포테인먼트 분야'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호기심 천국'의 빛나는 성공이 '과학 대중화'라는 열매로 다가서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TV 프로그램 하나의 성공이 과학대중화라는 거대한 결과를 가져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제2, 제3의 '호기심 천국'이 만들어 졌어야 했을 것이고, 경쟁사에서도 제2, 제3의 '확인 베일을 벗겨라'가 만들어 졌어야 했을 것이다. 왜 이런 연쇄 반응이 일어나지 않은 것일까? 또 하나의 아쉬운 답변이겠지만 '호기심 천국'의 연쇄반응은 분명히 있었다. 현재 KBS에서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인포테인먼트프로그램인 '스펀지'와 '비타민'등은 분명 '호기심 천국'의 성공에 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SBS의 '호기심 천국'의 직접적인 제작전통과 기법을 계승해서 제작되었던 '이문세의 사이언스 파크'는 26회의 매우 짧은 방송역사를 남기고 시청자들의 기억에서 사라져야 했다.

'과학 인포테인먼트'프로그램의 인기가 줄어들고 '정보 인포테인먼트' 및 '건강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의 인기가 올라갔다는 분석은 너무 피상적이고 자의적인 분석이다. 오히려 '호기심 천국'이 '과학 인포테인먼트'를 표방하기는 했으나 시청자들에게는 그냥 '인포테인먼트'프로그램으로 인식되어 있었다는 것이 더 분명한 정답이 될 것이다. 실제로 '호기심 천국'의 시청자 호응도를 분석해 보면 '마술코너'가 프로그램을 지탱해주는 기둥이었다는 분석이 방송계의 주된 의견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호기심 천국'을 통해 실질적인 혜택을 받은 분야는 '과학'이 아닌 '마술'분야와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 분야 그 자체였던 것이다. '호기심 천국' 은 과학에 뿌리를 둔 제작진들이 제작한 프로그램이 아니었기 때문에 '과학'을 소재로 채용한 '인포테인먼트'프로그램의 소명을 다하고 '정보'나 '건강' 등 다른 지식 분야를 소재로 한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들에게 그 영광을 물려주었을 뿐인 것이다. '지식 검색'을 화두로 삼은 KBS의 인기프로그램 '스펀지'와 '건강 정보'를 화두로 삼은 인기프로그램인 KBS'비타민'의 화려한 성공이 '과학문화 대중화'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이들이 과학문화에 뿌리를 둔 '과학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로병사의 비밀>의 성공사례 분석과 한계점

'생로병사의 비밀'은 2002년 10월 29일 첫 방송 이후 현재까지 140 회가 넘게 방송되고 있는 KBS가 자랑하는 '정통 건강, 의학 프로그램'이다. '생로병사의 비밀'은 KBS 1TV에서 가장 취약한 시간대로 알려져 있던 화요일 밤 10시 시간대에 공영성 높은 프로그램으로시청자들의 호응도 함께 얻어내자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과학을 소재로 한 주간단위 정규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생로병사의 비밀'의 성공사례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생로병사의 비밀'을 건강과 의학을 주제로 한 매주 60분 분량의 정규 프로그램으로기획하기 위해 이공계 출신의 프로듀서를 포함한 7년 이상의 프로그램 제작경력을 갖춘 6명의 프로듀서들은 초기 기획에만 거의 두 달의 시간을 투자했다. '생로병사의 비밀'은 초기 기획 이후 3개월에 가까운 사전제작으로 3회분의 완성 프로그램을 확보한 이후 4회부터 매주 프로그램의 형태로 방송을 시작했다.

BBC나 NHK등의 선진 방송국과 비교하면 매우 미약한 수준이지만 KBS의 경우 6명의 프로듀서가 5개월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면서 기획과 사전제작을 통해 정규 방송을 시작한 프로그램은 '생로병사의 비밀'이 최초였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이 정도의 사전투자를 통해 제작되고 있는 KBS의 프로그램은 없다. MBC나 SBS의 사정이 KBS와 비슷하다고 가정한다면 '생로병사의 비밀'은 매우 독특한 그리고 매우 바람직한 과정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제공된 고품격 건강, 의학 프로그램인 것이다. 그렇다면 시청자들에게 '생로병사의 비밀' 정도의 호응을 얻어 낼 수 있는 고품격 '정규 과학프로그램'의 제작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사전투자가 필요할까? 프로그램이 완전히 자리를 잡은 지금도 '생로병사의 비밀' 제작 프로듀서들은일반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들보다 더 많은 양의 사전 준비를 통해 프로그램 제작일정을 간신히 맞추고 있는 실정이다.

'과학'을 프로그램의 주제로 삼고 있는 비정규 과학 다큐멘터리인'사이언스 21'의 경우 비 이공계 출신 프로듀서들이 작품의 주제에 대한 기초 공부를 끝마치고 작품에 몰입하기까지는 최소 3-4 개월의 시간이 소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과학'을 주제로 '생로병사의 비밀'과 같은 성공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생로병사의 비밀'보다 1.5배 이상의 초기 투자를 단행해야 된다는 간단한 계산이 나온다. 즉, 7년 이상의 경력이 있는 프로듀서 10명을 약 반 년 동안 초기 기획과 2-3편의 사전 완성품 제작을 위해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KBS의 사정은 이런 엄청난 투자를 단행할 상태가 아니며 MBC나 SBS의 상태도 KBS와 비슷하다.

3)과학 다큐멘터리

우리나라에서 방송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과학 다큐멘터리는 2003년부터 매년 비정기적인 시리즈로 방송되고 있는 KBS의 '사이언스 21'이다. 우주, 공룡, 줄기세포, 수소에너지 등 과학분야의 중요한 화두를 정통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시청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는 '사이언스 21'은 공영방송 KBS의 우수한 다큐멘터리 제작 전통과 과학계의 지원으로 '정규 과학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제작이라는 목표를 향해 착실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 '사이언스 21'이전에도 KBS는 '한반도 탄생 30억년의 비밀', '생로병사의 비밀'등의 대형 과학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전통이 있고, 현재도 '마음'이라는 대형 과학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타 공중파 방송국에서도 과학을 소재로 한 기획 다큐멘터리들은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국내 방송사들의 과학다큐멘터리 제작 전통은 BBC가 자랑하는 40년 역사의 'Horizon'과 같은 정통 정규 과학다큐멘터리와는 그 제작의 뿌리가 다르다는 큰 차이점이 있다.

BBC는 대부분 이공계를 전공한 백여 명 이상의 방송전문가들이 'BBC Science Unit'라는 국내 방송사의 '국'이상 규모의 제작단위(Unit)로 편제되어 매우 전문적으로 과학 다큐멘터리 등의 과학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 방송사에는 기본적으로 이공계를 전공한 방송 프로그램 제작 전문인력이 희소하다. 국내에서 제작되고 있는 과학 다큐멘터리들은 단지 과학을 소재로 했을 뿐 인문계열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인력에 의해 역사와 문화를 다루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제작 전통에 따라 만들어지고 있을 뿐이다.

4)과학 저널 프로그램

현재 우리나라 과학계가 가장 원하는 '공중파 TV 과학 프로그램'은 당연히 '과학 저널 프로그램'일 것이다. 현재 케이블 방송인 YTN에서 방송되고 있는 '사이언스 플러스'와 같은 내용을 다루면서도 공중파 방송에 적합한 형태를 갖춘 프로그램을 생각해볼 수 있다. 과학계의 현안을 소개하면서도 보도 뉴스처럼 딱딱하지 않고,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처럼 가볍게 느껴지지도 않으면서 어느 정도 과학의 깊이를 갖고 있는 'TV 과학 프로그램'으로의 '과학 저널 프로그램' 제작은 과학대중화를 위한 진정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과학 저널 프로그램>은 '과학 홍보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러나, 미디어 산업의 특성은 과학계의 이런 달콤한 환상과는 매우 거리가 있다. 일반적으로 '저널'이라는 분야는 '홍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애정이 담긴 진지한 비판과 토론을 통해 그 분야의 발전을 도와준다는 것이 방송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정의하는 '저널'이라는 용어이다. '시사저널'이란 용어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계의 업적을 매우 알기 쉽게 그리고 멋있게 일반 시청자들에게전달하는 프로그램이 '과학 저널 프로그램'이 아닌 것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현재 과학계가 요청하고 있는 과학 저널 프로그램의 공중파 제작은 그렇게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제작은 언제나 가능하다. 잘 몰라서 그렇지 이미 많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과학계가 기대하는 재미와 전문성을 함께 갖춘 저널 프로그램은 지금 상황에서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BBC Science Unit'과 같은 진정한 'TV 과학 프로그램 분야'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제작될 'TV 과학 저널 프로그램'은 내용이 부실하거나 시청자 및 방송전문가들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닐 것이다.

5)과학 오락 프로그램

EBS에서 방송되었던 '사이언스 쇼'와 '사이언스 대전'은 가장 기초적인 의미에서 우리나라 과학 오락 프로그램의 시초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과학 오락 프로그램'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미흡한 점이 많았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EBS라고 하는 매체의 한계점, 제작비의 열악함, 인기 연예인들이 아닌 일반인 출연 등을 그 이유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이유를 포괄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EBS에 오락 프로그램 즉, '쇼'를 제작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없다는 것이다. EBS는 양질의 교육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전문인력과 노하우를 쌓아왔지만 그것만으로는 쉽게 제작할 수 없는 또 다른 전문분야가 '쇼'이다. '쇼'라는 분야는 그렇게 쉽게 의욕만 갖고 제작될 수 있는 성질의 프로그램 분야가 아니다.

방송을 모르는 일반인들과 방송 전문인력 중에서도 오락 프로그램을 제작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오락 프로그램의 제작'을 '오락'과 혼동하는 경향이 강하다. 정확히 말하면 도제수업과 비슷한 최소 3년 이상의 오락프로그램 제작 보조 경험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경험과 유머감각을 바탕으로 오락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과학 오락 프로그램'은 과학을 뿌리로 한 전문 오락프로그램 제작인력이 양성된 이후 국내 공중파를 통해서 시청자들에게 소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청자들을 상대로 한 무모한 실습은 자칫 그 분야의 자생적인 발생 및 발전 자체를 막아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해외 우수 'TV 과학프로그램 분야' 연구

1) 영국 'BBC 과학프로그램 분야' 연구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는 영국의 BBC. BBC의 과학프로그램들은 어렵고 까다로운 고급정보인 과학지식을 얼마나 재미있게 시청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춘 고품격 과학 프로그램들을제작하고 있다. BBC 과학프로그램에 대한 소개는 BBC가 자랑하는 정규 과학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Horizon'이 방송 40주년을 기념했다는 한가지 사실로 다 표현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훌륭한 과학프로그램들을 제작하고 있는 BBC의 비밀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BBC에 이런 훌륭한 과학프로그램들을 제작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TV 과학 프로그램 분야'인 'BBC Science Unit'이 있기 때문이다.

BBC의 방송중심지인런던 화이트시티(White City)에 위치하고 있는 'BBC Science Unit'은 5개의 전문부서에 약 15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는 전문 조직이다. 이 중에는 이공계 출신으로 방송 프로그램 제작경력이 최소 5년 이상인 과학전문 프로듀서들이 약 60명 정도 근무하고 있으며, 나머지 제작보조 인력들도 거의 대부분 과학과 관련된 분야를 전공하였다. 'BBC Science Unit'은 BBC의 14개 조직(Division, 우리나라의 '본부'급 규모)중에서 BBC 공영성의 핵심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F&L(Factual & Learning) Division'에 속해있다. '교양, 특집, 교육 프로그램 제작본부'라고 번역이 가능한 BBC F&L은 런던을 중심으로 브리스톨, 버밍햄, 맨체스터에 총 2,1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는 거대 조직이다.

BBC F&L은 Documentaries & Contemporary Factual(D&CF; 일반 교양, 시사 프로그램 제작), Learning & Interactive(L&I; 교육 및 양방향 프로그램 제작) 및 Specialist Factual(SF; 특집 분야 프로그램 제작)의 3대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Specialist Factual(SF)조직은 다시 6개의 전문 Unit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BBC Science Unit'은 이 6개 전문조직 중의 하나로 BBC에 편제되어 있다. 조직의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각 분야를 전공한 방송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는 SF의 6개 Unit은 런던에 Science, History, Art, Specialist features & Business가 있고, 브리스톨에 Natural History Unit(NHU)이 그리고 맨체스터에 Religion & Ethics Unit 이 있다. 'BBC Science Unit'은 방송 40주년을 기념하는 정통 과학 다큐멘터리'Horizon'을 중심으로 어린이 건강 프로그램인 'Little Angels'를 정규 과학프로그램으로 방송하고 있으며, 다양한 특집 과학 다큐멘터리들과 과학적 지식이나 과학사의 현장을 드라마와 접목한 여러 편의 과학 'Factual Drama'(다큐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다.

2) 일본 'NHK 과학프로그램 분야' 연구

일본을 대표하는 공영방송 NHK의 과학조직은 과학/의학반, 생활과학반, 자연/환경반 등의 3개 부서로 편제되어 있으며, 부장급 책임 프로듀서 11명을 포함한 60명의 제작 프로듀서들로구성되어있다. NHK의 과학조직은 'BBC Science Unit'과는 달리 이공계 출신과 비 이공계 출신 제작 프로듀서들이함께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그러나, NHK 과학조직은 지난 수십 년 간의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매우 고정적이고 전문적인 부서체제를 확립하고 있으며, 외부 연구자 집단과의 매우 확고한 유대관계를 통해 안정적으로 우수한 과학프로그램들을 제작하고 있다.

'지구대기행', '생명, 그 영원한 신비'등의 기념비적 과학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제작한 NHK 과학조직은 NHK의 간판 프로그램인 'NHK 스페셜'을 통해 매년 12-13편의 과학 다큐멘터리를 제작 방송하고 있으며, NHK의 간판 시사 프로그램인 '클로즈업 현대'를 통해 다양한 과학관련 화제거리를 방송하고 있다. '건강과 음식'을 주요소재로 하고 있는 NHK의 간판 인포테인먼트프로그램인 '다메시테 갓탱(아하 그렇군요)'은 1966년 시작된 '4개의 눈'이라는 프로그램이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서 오늘에 이른 장수 생활과학 프로그램이다. NHK 과학조직은 '다메시테 갓탱'과 더불어 '과학 타임저널', '과학이 너무 좋아 토요학원'등의 어린이, 청소년 대상 정규 과학프로그램들을 NHK 위성 및 교육채널을 통해 방송하고 있다. NHK 과학조직의 힘, 그것은 어린이 과학프로그램에서 건강 인포테인먼트프로그램, 시사 및 특집 과학 다큐멘터리까지 과학을 뿌리로 한 모든 종류의 프로그램을 제작해 내는 수십 년 전통의 매우 고정적이고 전문적인 '과학중심 조직체제'에 있다.

4. '방송(TV)을 통한 과학문화 활성화' 방안

1) '이공계 출신 TV 과학프로그램 제작 인력' 확충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BBC Science Unit'의 비밀은 이공계를 전공하고 방송 프로그램 제작경력이 5년 이상인 '과학전문 프로듀서'들이 60여명이나 근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만일 우리나라에도 충분한 과학전문 프로듀서가 있어서 드라마 '카이스트'가 '과학전문 드라마 프로듀서'에 의해서 기획되었다면 어떤 형태로든 제2, 제3의 과학드라마 '카이스트'가 제작되었을 것이다. 방송을 통해 과학문화를 활성하고 '과학 한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BBC Science Unit'과 같은 'TV 과학프로그램 분야'를 국내에 만들 수 있도록 과학계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의 과학계는 국가 주요기관에 이공계 출신 비율을 20% 이상이 되도록 늘려달라고 요청했듯이 KBS, MBC, SBS 등의 공중파 방송국에게 제작 프로듀서 및 방송기자의 이공계 출신 비율을 20% 정도는 되게 해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독일의 과학계가 영국보다 10년이나 늦게 PUSH(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 and Humanities)라는 이름으로 과학문화 대중화 운동에 참여한 이유가 독일의 과학자 단체가 영국이나 미국의 과학자 단체만큼 강력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는 독일 '대화하는 과학(Science in Dialogue)'의 부위원장 Ekkehard Winter박사의 분석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이공계 출신을 '공중파 방송 프로듀서 및 기자'로 많이 선발해 달라는 과학계의 지속적이고 강력한 요청과 더불어 방송 프로그램 제작 역량을 갖춘 우수 이공계 인력을 양성해 내는 방안도 함께 고려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미 전세계적인 무한경쟁에 돌입하고 있는 공중파 방송사들은 기존의 신입사원 선발 방식을 대체할 전문 방송경력자 우대 선발방식을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는 실정이다.

2) PUS를 통한 '과학프로그램 제작 및 자문 인력' 확대

'이공계 출신의 과학 프로그램 제작인력'을 확충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기존의 '비 이공계 출신 방송전문가'들을 '과학 프로그램 제작 인력'으로 만들어 내고 방송의 특성을 잘 이해하는 '과학프로그램 자문 인력'을 양성해 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선진국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PUS(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를 지금이라도 당장 '한국형 PUS'로 개발해서 가장 먼저 방송 프로그램 제작전문가들과 과학기술 전문인들에게 적용해야 한다. 현재 서울대, 서강대, KAIST 등에서 특수 과정을 통해 한국형 PUS과정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그 대상 범위가 너무 작으며 주로 사회와 언론의 고위직이나 프로그램 비 제작 인원들만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단점이 있다.

방송을 위한 새로운 소재와 창조를 위한 휴식에 목말라하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전문가들에게 환영 받을 수 있는 연수과정을 개설해서 효율적으로 운영한다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방송의 진행과정을 잘 이해하면서 TV 과학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는 과정도 분명히 함께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 지식을 일반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올바르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학기술 전문가들에 대한 학계의 인식도 단순한 냉소주의를 벗어나 과학기술인의 사회적 의무를 대행해 주는 고마운 존재로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외에도 학위 과정을 포함한 다양한 언론인 과학연수과정, 과학방송 전문가 양성을 위한 해외 유학 특전, 과학전문 프로그램 제작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 설립 등의 다양한 한국형 PUS를 통해 '과학프로그램 전문 제작인력' 및 '과학프로그램 전문 자문인력'을 양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3) 어린이, 청소년 과학프로그램에 대한 전폭적 지원

상위개념의 과학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꼭 있어야 하는 기본적인 과학 프로그램이 있다.'BBC Science Unit'의 많은 과학프로듀서들은 그것이 '어린이 과학프로그램'이라고 주저 없이 강조한다. 어린이 과학프로그램이 제작하기 쉽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같은 고급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기초를 닦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제대로 된 어린이 과학프로그램은 그 제작에 엄청난 노력과 경험을 요구한다. BBC의 과학전문프로듀서들이 어린이 과학프로그램을 소중히 여기는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BBC 과학프로그램을 보던 시청자들만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BBC 과학프로그램을 좋아할 것이라는 신세대 연구보고서를 바탕으로 한다. 디지털세대(Digital Generation)로 통칭되는 영국의 신세대들은 어린 시절에 익숙해진 분야에만 성인이 된 이후에도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디지털세대가 나이가 들면서 바뀌는 것은 관심분야가 아닌 관심분야에 대한 대응 방식이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자연히 관심사항이 변화할 것이라는 우리의 통념과는 매우 다른 연구결과이다. 한국의 디지털 문화가 영국보다 앞섰다는 보고서가 많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관심해서 그렇지 우리의 디지털세대도 영국의 디지털세대와 유사한 특성을 갖고 있을 것이다. 즉, 어린 시절에 과학에 관심을 갖지 못하면 어른이 된 이후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과학에 관심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과학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우리의 어린 세대에게 제대로 된 '어린이 과학프로그램'을 제작해 주는 것은 기성세대의 의무인 것이다.

'BBC Science Unit'에서 설정한 연령별 과학 프로그램 개발 전략은 다음과 같다. 유아와 어린이 계층에게는 과학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원리를 알려주는 과학 프로그램을, 청소년들과 성인에게는 과학의 놀라운 업적을 보여줄 수 있는 대작 다큐멘터리나 팩츄얼 드라마를, 그리고 중, 장년 층에게는 생활에 도움이 되는 과학소식과 건강관련 프로그램들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정된 제작인력과 재원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시급한대로 어느 한 곳에 과학계의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소외된 부분을 찾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멋있어 보이는 대작 다큐멘터리나 건강관련 프로그램들에 신경 쓰는 동안 우리는 다음 세대가 무엇을 보고 '한국의 과학'을 떠 올리게 될지 제대로 고민해오지 못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BBC의 연구결과를 한국식으로 응용해 본다면 어린 시절에 한국의 과학에 대한 제대로 된 과학프로그램을 접하지 못한 한국의 신세대는 결코 나이가 들어도 한국의 과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된 한국형 어린이 과학프로그램과 어린이 과학 드라마에 대한 투자는 과학계가 지금부터 혼신의 힘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될 우리시대의 사명이다.

4) 방.통 융합 시대용 '과학 콘텐츠 제작 인력' 확보

가장 한국적인 '과학전문 프로그램 제작인력' 집단을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물론 영국 'BBC Science Unit'과 같은 이공계 출신 방송전문 제작자 집단을 만들고 40년 정도 경험과 실적을 축적한다면 가장 훌륭한 방안이 될 것이다. 이런 점진적이고 근본적인 방법과 함께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으로 '방.통 융합 시대용 과학 콘텐츠 제작인력의 확보'를 제안하고 싶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TV'라는 매체는 앞으로 가까운 미래에 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 IPTV(Internet Protocol TV), PMP(Portable Multimedia Player) 등의 양방향성(Interactive) 디지털 매체로 대체될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시대를 방송과 통신이 융합하는 '방송.통신 융합시대' 혹은 '방.통 융합시대'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TV라는 매체의 개발과 발전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서구 선진국들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척박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그러나, TV가 디지털화 되어 DMB나 IPTV로 발전해 나가는 '방송.통신 융합시대'에 우리나라의 기술력은 더 이상 서구 선진국들의 주변에 머물러 있지 않다.

문제는 이런 '방송.통신 융합시대'에 실질적인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우수한 '콘텐츠'를 많이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e-sports등을 포함한 강력한 과학 영상 콘텐츠 후보들이 생겨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런 분야에서 기술을 축적한 많은 전문가들이 영상산업의 가장 기초적인 수련을 거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상 콘텐츠 시장에 참여하면서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BBC Science Unit'을 포함한 BBC의 특별프로그램 제작집단(SF; Specialist Factual)에는 '영상을 활용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 결코 피할 수 없는 불문율적 훈련방법이 있다. 그것은 옥스포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라고 해도 '과학전문 프로듀서'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3년간의 방송 기초 수업 기간인 리서쳐(Researcher)의 기간과 최소 2년에서 5년의 AP(Assistant Producer)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사회를 살면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가 방송이다. 그렇기 때문에 튼튼한 기초가 없어도 아무나 제작이 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것이 또한 방송 영상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으로 기초도 없이 영상산업에 들어와서 젊음을 허비하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유념해야 한다.

물위에 뜨기 위해서는 꼭 좋은 수영 코치에게 수영을 배울 필요가 없다. 그러나 목표가 단순히 물위에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정식으로 수영을 배워서 대회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훌륭한 코치의 지도 없이 혼자 수영을 연습한다는 것은 시간낭비이다. '방송.통신 융합 시대'를 대비한 과학 영상 콘텐츠 제작 전문가 집단을 육성함에 있어서도 위의 법칙은 냉혹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의 목표가 '과학 영상 콘텐츠'를 활용해서 세계 시장으로 나가는 것이라면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과학 영상 콘텐츠를 제작해본 경험이 있거나 제작할 수 있는 인력들을 집중적으로 활용하여 '방송.통신 융합 시대'를 대비한 우수한 '과학 영상 콘텐츠 제작 전문가'들을 육성하여야 할 것이다.

5. 맺음말

방송이라는 분야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사람'이 중요한 분야이다. 같은 주제와 같은 내용으로 같은 비용을 들여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같은 프로그램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것이 방송이다. 그냥 한번 사용하는 프로그램의 소재 정도로 '과학'을 인식할 수밖에 없는 비 이공계 출신 방송 전문가들에게 '과학'을 프로그램 기획과 제작의 원천으로 삼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너무 과도한 욕심이다. 과학을 프로그램 기획과 제작의 뿌리로 삼을 수 있는 'TV 과학프로그램 분야'의 탄생만이 방송을 통한 '과학문화 활성화'의 가장 빠른 길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세계적인 과학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BBC의 'BBC Science Unit'과 NHK의 'NHK 과학조직'은 우리에게 정답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은 단순히 TV 과학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에서 자신들의 임무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과학 이벤트'를 미디어적으로 기획하고, '방송.통신 융합시대'를 준비할 미래의 과학 영상 콘텐츠 제작 전문가들을 육성하는 임무들을 이미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특히 BBC의 'Science Unit'은 '과학을 위한 과학프로그램의 제작'을 오래 전에 포기하고 '시청자가 알고 싶어하는 과학'을 제공하는 전략으로 세계 최고의 TV 과학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공계 기피현상'을 우려하는 우리나라의 과학계가 너무 성급하게 '과학 홍보' 또는 '과학 업적 강조'TV프로그램에 지원을 남발하는 현상에 깊은 우려를 느낀다. 준비도 안된 아마추어 이공계 출신 방송인력들로 가칭 '과학방송공사'등의 <과학프로그램 전문 채널>을 만들려는 노력은 더욱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방송시장의 속성을 모르고 함부로 뿌려지는 과학계의 자금지원은 방송계 내에서 어렵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자생적인 'TV 과학프로그램 전문집단'에게 약이 아닌 독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과학문화 활성화'를 위해 과학기술인들의 염원을 한데 모은 과학계의 지원은 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과학 정책 홍보성 TV 프로그램'의 제작이나 시청자들에게 아마추어로 평가될 '과학전문채널'의 설립에 투입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과학계의 지원은 과학 문화의 미래를 위해 'TV 과학프로그램 전문 제작인력'의 양성에 집중적으로 투자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의 어린 세대에게 '과학 한국'의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어린이,청소년 용 과학 영상 콘텐츠'의 제작과 그 제작 인력의 육성에 한국 과학계의 지혜가 모아진 전폭적인 지원이 집중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