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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인간의 그늘에서: 제인 구달의 침팬지 이야기, 제인 구달 지음, 최재천, 이상임 옮김 - 이두갑

2008.04.06.

[서평] 인간의 그늘에서: 제인 구달의 침팬지 이야기, 제인 구달 지음, 최재천, 이상임 옮김 - 이두갑

1872년 다윈은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다양한 동물의 얼굴표정 사진과 인간의 사진을 사용했다. 그의 목적은 인간과 동물의 얼굴표정 사진을 비교해가며 인간과 동물이 가지고 있는 감정표현이 매우 유사하며, 이는 인간과 동물이, 특히 원숭이들이 인간과 매우 동일한 진화적 기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데에 있었다. 이미 '인간의 유래'에서 인간과 원숭이의 형태학적 유사성에 대해 논의한 바 있는 다윈으로서는, 감정이라는 정신의 영역 역시 진화의 산물임을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약 100년 후인 1971년, 제인 구달이라는 한 여성과학자는 침팬지 사회를 찍은 내셔날 지오그래픽의 훌륭한 사진들과 이에 대한 자신의 연구가 담긴 책 '인간의 그늘에서'를 출판한다. 그녀는 침팬지들의 행동을 예술적으로 담아낸 사진과 아프리카에 10여 년간 거주하면서 빽빽하게 기록한 자신의 관찰일기를 시적인 문장으로 바꾸어 동물행동학 분야의 고전을 완성해 낸 것이다. 한글로 출판된 본 책은 그 후 몇 차례 개정, 증보된 그녀의 책을 최재천 교수와 이상임이 4년간에 걸쳐 유려하게 번역해 낸 것이다.

언뜻 챔팬지들의 모습을 기록한 책일 뿐이라 생각될 수 있는 이 책은, 저명한 진화학자인 굴드가 이를 “20세기 학계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칭송했을 정도로 인간의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선 구달의 연구는 생물학 역사상 처음으로 침팬지 개개인을 모습을 오랫동안 직접 관찰했을 뿐만 아니라, 침팬지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의 사회 내부로 깊숙하게 잠입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이었다. 이러한 서술을 통해 그녀는 침팬지 사회의 모습을 어느 누구보다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복원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다윈이 자신의 사진과 글을 통해 복원해낸 표정을 통해서 인간정신의 진화를 밝히고자 했던 것처럼, 구달 역시 동일한 방식을 사용해 복원해낸 침팬지 사회의 모습을 통해 인간사회의 진화를 밝히고자 했다. 침팬지는 생물학적으로 6백-8백만년 전 인류로부터 분화된 종으로 인간과의 진화적 관계가 가장 밀접한 종이라 할 수 있다. 구달은 이 종의 행동양식과 이 종이 지니고 있는 집단생활(사회)이 지닌 여러 모습들의 관찰을 통해 침팬지 사회가 지닌 모습을 자세하게 기술한 후, 이것을 인간사회가 지닌 모습을 비교해 나간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그녀는 인간의 사회 역시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임을 주장하고자 한다.

육식을 하고 도구를 사용하며, 성생활과 육아를 통해 가족 생활을 하고, 행동을 통해 의사소통을 할뿐만 아니라 사회적 위계를 지니고 있는 침팬지 사회의 모습을 그려내며 구달은 인간의 사회와 침팬지 사회가 지니고 있는 진화적인 기반을 들춰내려 한다. 침팬지의 잔악한 면과 협동과 애정을 동시에 보여주는 구달의 서술은 때때로 인간이 지닌 추악한 면을 들춰내는 것으로, 혹은 인간이 발전시키지 못한 침팬지들의 미덕을 칭송하는 것으로 오해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굴드가 주장하듯, “침팬지는 그냥 침팬지”일 뿐, “이 챔팬지가 인간이 본받아야 할, 혹은 되찾아야 할 길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굴드의 지적처럼 구달은 무리하게 침팬지 사회로부터 규범적인 주장들을 이끌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인류와 진화적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이 생물들이 멸종되어 가고 있음을 애석해 한다. 아마도 침팬지의 행동과 사회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녀의 침팬지에 대한 사랑은 깊어져만 갔고, 동등한 생물학적 존재로서 인간의 다른 생물종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으리라. 동물행동학의 고전으로 인간사회의 진화에 대한 조심스러운 주장과 침팬지 사회와 생명계 전체에 대한 애정으로 꽉 차 있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산업사회에서는 좀처럼 얻기 힘든 자연에 대한 경외와 놀라움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