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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있는 교양교육을 위한 제언-김희준 교수

2008.06.18.

균형 있는 교양교육을 위한 제언

문과, 이과를 떠나서 모든 대학생이 어렵게 들어온 대학이니만큼 많은 것을 얻고 졸업해야 할 것은 당연지사이다. 대학에서 배워야 할 내용의 우선은 졸업 후 세상에 나가 살아가는데 당장 필요한 전공 지식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지성인으로 살아가는데 갖추어야 할 기본 교양에 관한 지식 또한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접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대학의 교양교육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나도 지적 절름발이 같은 자의식을 가지고 평생 살아왔다. 인류의 문화유산이라고 할 만한 문학작품을 대부분 제목과 대략적인 내용만 알고 있을 뿐이고, 철학, 역사, 경제학이라면 아예 할 말이 없다. 그것을 누구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솔직히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60년대 후반 서울대의 교과과정은 지금에 비해 상당히 부실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문과과목으로는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던 국어, 영어, 철학개론, 문화사 이외에 한 두 과목을 선택했지만 전공과목에 ?i기다 보니 무얼 배웠나 전혀 기억이 없고 학점도 만족스럽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의 교양과목은 핵심교양과목만 해도 분야 별로 매력적인 강의가 숱하다.

나는 이 지면을 빌어 문과생도 21세기를 사는 지성인으로서 자연에 대한 포괄적 이해가 바람직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나의 대학 시절 이과생이 문과과목에서 재미를 보기 어려웠듯이,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문과생이 과학의 개론적 과목에서 흥미를 느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는 자연과학 내에서도 다른 분야는 잘 알지 못하고 통합적인 시야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각자 분야의 세부적인 내용을 별로 관심을 느끼지 못하는 문과생에게 주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1960년대에는 1929년에 허블이 우주의 팽창을 발견한 이래 정상상태우주론과 대립하고 있던 빅뱅우주론이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후 4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우주의 기원으로부터 소립자와 화학원소의 생성, 별과 은하의 진화, 지구의 환경, 생명의 원리에 대해 포괄적인 이해를 가지게 되었고 과학의 여러 내용들이 밀접하게 링크된 연결고리를 파악하게 되었다. 이제 자연과학은 단편적 지식의 집합이 아니라 고갱이 말년 타히티섬에 살면서 그린 대작의 제목처럼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추어 하버드대학은 모든 신입생에게 졸업 전에 "Science of the Physical Universe" 그리고 "Science of the Living Systems" 두 영역에서 한 과목씩을 수강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서울대 기초교육원도 종전의 “자연의 이해” 영역 20여개 과목을 “자연과 기술” 그리고 “생명과 환경”으로 나누어 배치하고 인문사회계 학생들에게 각 영역에서 한 과목씩 수강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요즘같이 고등학교에서 과학의 기초를 거의 배우지 않고 대학에 입학하는 서울대 문과생의 경우 “자연의 이해” 영역에서 수학, 물리과학, 생명과학, 또는 지구환경과학 중 한 과목만 수강한다면 과학기술사회라 지칭하는 21세기 사회의 리더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과학 지식을 갖추었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 인류가 직면할 에너지, 식량, 환경 문제 등은 모두 적절한 과학의 지식을 바탕으로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정책을 세워야 할 분야들이다. 따라서 서울대 졸업생이 정계, 관계, 법조계, 언론계, 교육계 어디로 진출하더라도 적정한 과학의 배경은 커다란 자산이 될 것이 틀림없다.

문과생에게 기초 수학, 과학, 기술의 내용을 가르치는 교수들에게도 막중한 책임이 있다. 어느 정도 배경 지식을 가진 이과생과 똑같은 내용과 수준을 문과생에게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겉핥기식의 강의는 지적 욕구가 강한 서울대생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문과생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 우주와 생명에 관한 그들의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또 만족시키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오늘날 과학이 얼마나 폭넓게 자연을 이해하게 되었나, 과학 공부가 얼마나 재미있을 수 있나에 관심이 있는 학생은 etl.snu.ac.kr 사이트에서 본인이 문과생을 위하여 수년 간 공들여 개발한 “자연과학의 세계” e-learning 자료를 훑어보기를 권한다. 과학을 공부하는 것은 시야를 넓히는 훈련이다.

<열린지성> 12호 게재 (2008. 6. 1일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