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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칼럼

늬는 자라서 무엇이 되려니

2009.11.09.

아우의 인상화, 이현숙 생명과학부 교수

“늬는 자라서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중학교 2학년 사춘기 시절부터 때때로 되새기게 되는 윤동주의 ‘아우의 인상화’의 한 구절이다.

‘사람’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 때는 어렴풋이 아는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든 지금은 오히려 한 마디로 말 할 자신이 없다. 경험이 쌓이면서 다양한 인생들을 포용할 수 있게 된 이유도 있겠으나 사실, 내 자신 살면서 불의를 모른 채 넘어간 일, 의도치 않았으되 남한테 못할 짓을 저지르는 실수가 있었기에 사람이 잘 산다는 게 뭔지 분명하게 말 할 자격이 없어졌다고 느끼는 탓이 크다. 윤동주는 “사람이 되지”라는 아우의 답을 설은 답, 아우의 얼굴을 슬픈 얼굴이라고 했다. 어린 아이의 답은 명답인데, 그게 얼마나 힘든 지 아는 지금, 나도 일제 치하의 윤동주 시인과 마찬가지로 아우의 그 답을 쉽게 듣지 못한다. 그래도 선생이란, 바른 길을 비춰주어야 하니 그 고뇌가 적지 않다.

2004년 학부 학생 하나가 상담 차 찾아왔다. 그 학생은 자신이 주변이 기대하는 만큼 실력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것, 그와 연관하여 대학 친구들과의 관계에 자신이 없는 것이 고민이었다. 이러다가는 대충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졸업장 하나 믿고 사는 형편없는 사람이 될 까 걱정이라고 했다. 언론에 약한 사람 짓밟고 나쁜 짓 하는 서울대 졸업생들이 많이 나오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의 순수함에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어느덧 겉모습에만 치중하고 다른 이를 배려한다는 사람됨의 기초를 잊고 살아가기 시작한 교수에게, 그 학생은 제대로 한 방 먹인 것이다. 나는 그에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이름만 번지르르한 서울대생이 되지 않을 테니 걱정 말라고, 너는 훌륭한 자질을 갖춘 학생이라고 말해주었다.

이제껏 살면서 윤동주가 말한 ‘사람’다운 사람을 몇 분 만나 뵈었다. 그 중에 한 분은 유학 시절 만난 선배이고 또 다른 한 분은 우리 대학 인문대에 교수님으로 계신다. 두 분 다 내가 갈팡질팡 하던 시절, 큰 힘이 되어 주신 분들이다. 그 분들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남다르신 분들이었다. 마음이 여리신 분들인데, 불의를 보면 누구보다도 강해지셨다. 한국 사회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으로 옳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어느 정도 반대파에 대한 증오, 무시가 깔려있다. 나부터 그러한데, 그 분들은 항상 사람 걱정이 먼저였다. 그분들의 인간에 대한 애정은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어 그 어떤 논리나 분석보다도 좌중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반대파도 무안하지 않도록 배려하셨다.

서울대는 우리 사회에서 힘의 상징이고 견고한 기득권이다. 그런데 사실 이 기득권은 보장된 자신의 주류성을 포기하고 기꺼이 비주류를 선택한 70년대 80년대 젊은이들 때문에 이어져 오는 부분이 있다. 대법원장, 총리, 수 없이 많은 장관들, 그리고 재벌가의 자제들만 배출하였다면 사람들은 서울대를 지금처럼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기표, 심상정, 김세진, 박종철이 다닌 서울대이기에 국민으로부터 인정받는 것 아니겠느냐는 어느 교수님의 말씀이 옳다.

요즈음 고시와 자격증, 학점에만 매달리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다. 기껏해야 훗날 평안한 중산층이 되기 위해 눈 감고, 귀 닫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 생각하고 있다면 지금 서울대인의 모습은 너무 초라하지 않는가.

신영복 선생이 감옥에서 어린 조카들에게 엽서를 띄웠다. 잠자고 있는 토끼를 깨우지 않고 자기만 먼저 앞질러 간 거북이가 되지 말고 깨워서 함께 가는 진정한 사람으로 자라 달라는 당부였다. 경주에 질지언정 낙오된 자도 함께 데리고 가는 그 당당한 인간됨. 그것이 우리가 배출해내야 할 리더의 모습이고 우리가 어렸을 적 꿈꾸던 사람의 모습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