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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생은“My Way”가 없다?

2010.06.25.

법대생은 My Way가 없다, 피난처 대표 이호택(법학과 79학번)

서울대학교 법학과 79학번 이호택 선배의 직업은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아닌 ‘난민운동가’이다. “사람들을 위해서, 의를 위해서, 역사를 위해서 일하자는 것이 내 인생관입니다”라고 말하는 선배는 학창시절 당신의 인생관을 위해 학생운동에 참여한 적도 있고 여느 법대생과 같이 사법고시를 준비하기도 했다. 그는 대학원 시절 전공한 노동법에 관한 지식을 살릴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피난처’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생계를 위해 민변 계통의 법률사무소에서 근무도 하였으나 언제나 선배의 마음을 끈 것은 자원봉사활동이었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기가 버거워졌을 무렵, 이호택 선배는 과감히 자원봉사의 길을 택했다. 그는 1999년, 기독교 NGO ‘피난처’를 설립하여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한 일을 시작하였고 기존 자원봉사경력을 바탕으로 ‘외국인’ 난민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에 이르렀다.

난민들의 쉼터, 피난처

‘피난처’(避難處, The Refuge Pnan)는 박해를 피해 한국을 비롯한 타국으로 피난한 국제난민과 북한 난민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최초의 기독교 NGO이며, 법무부등록(2005.11.8.제6호) 비영리법인이다. 일반인들은 이 곳의 ‘난민학교’를 통해 난민과 관련된 기본 사항들을 교육받을 수도 있다. 이호택 선배는 추억의 ‘천리안, 하이텔’ 등을 통해 법률 코너에서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점차 피난처의 사업을 진행하였다. “이라크의 쿠르드 난민이 가장 처음 만났던 사람들이에요. 그들이 먼저 이메일을 보냈죠. 비록 난민 인정을 받는 데는 실패하였지만 인도적 지위(humanitarian status)를 부여 받았고 지금은 그 사람들이 다른 난민들은 돕는 활동가가 되었습니다.”
 초기 피난처의 활동에서 법률지원사항은 대부분 선배가 도맡아 했지만, 지금은 사례가 워낙 다양해지고 증가한 터라 난민에 관심 있는 다른 변호사들의 조력도 받고 있다고 한다. 본인소송 형태로 피난처가 담당하는 사안도 여전히 존재한다. “나라마다 난민 유형이 크게 달라요. 종교, 부족?인??간 내전, 소수에 대한 다수의 박해 등을 이유로 우리를 찾아오지요.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전 세계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난민들을 통해 국제사회를 바라보는 것이지요.” 이호택 선배는 즐거운 일을 하기에 목표 달성을 향한 강박관념은 없다.

험한 길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 등을 이유로 박해받을 우려가 있다는 합리적 근거가 있는 공포(well-founded fear)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또는 종전의 상주국) 밖에 있는 자로서, 그 국적국(상주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상주국)의 보호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를 일컫는다.
 하지만 이호택 선배가 가진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내가 정의하는 ‘난민’은 험한 길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이런 ‘광의의 난민’을 위해 일하려면 죽을 때까지 일해도 아마 모자랄 지도 모르죠.”
 쿠르드 난민의 난민 지위 획득을 실패하고 주저앉아 있을 때, 법적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자명해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 생길 때까지 포기하지 말자는 그의 일념은 이후 콩고에서 온 한 사람의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직접 콩고에 갔어요. 기회가 와서 극적으로 이 사람을 위해 증언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났고 심문조서 등 모든 자료를 수집해서 돌아왔죠. 다행히도 그 사람은 난민 자격을 지니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정말 보람찬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심사기간만 2~3년이 걸리는데 취업은 허용되지 않고 국가로부터 생계비 지원도 받지 못하는 난민신청자들이 피난처를 찾을 때면 선배는 답답함을 느낀다. “나도 넉넉지 못하지만 뭐, 어떡합니까? 기본적인 교통비나 식비는 당연히 내가 줘야죠”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요즘의 우리 젊은이들은 난민은 차치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충분한 관심을 주고 있을까. 대학교에서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는 자체적인 팀, 그룹을 운영하는 것이 선배님의 바람이다. “이를 테면 ‘피난처 후원회’ 같은 것이지요. 모금도 하고 캠페인도 하고, 우리 피난처에서 파견되는 봉사자들의 강의도 듣고 그랬으면 좋겠네요.”

기다림의 미학

“조급해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사법시험 합격, 로스쿨 입학 등의 목표를 좇다 보면 대학생활이 바쁘게만 느껴지고 아무것도 못하게 될 겁니다. 물론, 나도 대학생 때 사법고시를 공부해 본 사람으로서 지금 가진 모든 걸 버리고 봉사활동을 하라고 권고하고 싶진 않아요. 단지, 꼭 한 가지 길만 가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대학 4년이 모든 것은 결정하기에는 짧은 시간이기에 조바심 내지 않고 의미 있게 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우리는 자기 이익만 구하지 않고 남을 도우면서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에요.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갈증은 있기 마련이죠. 지금은 대학 동기들이 내가 하는 일을 보고 부러워한다니까요. 인생의 코너에 몰렸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항상 ‘길’은 존재하고 또 내가 실패한 것이 오히려 더 좋은 일일 수 있기 때문이죠. 힘든 것들은 하나의 과정에 불과한 겁니다.”

이예하 (법학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