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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허시명 막걸리 학교 교장

2010.10.07.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허시영 막걸리 학교 교장

최근 막걸리 열풍과 함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막걸리 학교는 막걸리를 직접 빚고 음미하면서 고유문화를 이해하자는 취지에서 설립된 곳으로, 이 특별한 학교의 교장은 서울대학교 국문과 81학번 허시명 선배다. 술 기행을 ‘정성껏 술을 빚는 이들에게서 진솔한 사연을 듣고 행복감을 누리는 과정’이라 표현하는 선배의 명함에는 술 평론가, 여행작가라는 직업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 그의 책 《허시명의 주당천리》와 《비주, 숨겨진 우리 술을 찾아서》등에서는 ‘술 평론을 하는 여행 작가’로서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허시명 선배는 혼자 즐기고 찾아다니던 우리 술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고, 우리 술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막걸리 학교를 설립했다.

술에 문화를 더한 막걸리 학교
“술 문화의 바람직한 모습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장을 마련해 보고 싶었어요.” 우리는 어떤 술을 마시고 있는가, 이 술은 어떻게 마셔야 하는가 같은 것들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지금 우리 술 문화의 잘못된 점으로 ‘공급자 중심의 문화’를 지적했다. “술은 기호식품입니다. 소비자가 개인의 기호에 따라 술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우리 술 문화는 소비자보다 공급자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소비자가 선택하는 것은 기껏해야 소주냐 맥주냐 막걸리냐 하는 것 밖에 없어요. 이건 술을 즐기는 최종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맛도 멋도 없는 거죠.” 그래서 그는 우선 우리 전통 술인 막걸리의 기본적인 맛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막걸리를 빚어도 보고, 역사도 배우고, 술을 마시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도 성찰해 보는 자리로 막걸리 학교를 설립한 것이다. 막걸리는 요즘의 웰빙(well-being) 열풍을 타고 인기를 얻고 있다. 이름부터 ‘막 거른 술’이라 하여 막걸리지만 전국 각지에서 막걸리와 관련된 다양한 축제가 기획되고 다양한 소재와 결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고, 대기업의 관심을 받으며 세계화의 문을 두드리는 귀한 몸이 된 것이다. 허시명 선배는 이와 같은 막걸리의 여러 가지 모습을 알고 이를 통해 나와 술친구와 시장과 문화를 이해하자는 차원에서 막걸리에 대한 강좌를 열었다. 실제로 막걸리 학교의 수강신청은 우리 학교의 수강신청보다 훨씬 경쟁률이 높아, 정원 마흔명을 채우는 데 1기에는 이틀이 걸리던 것이 5시간, 7분으로 줄어들더니 6기는 1분여 만에 신청이 마감되었다고 한다. “수십 년 술을 즐긴 사람들이 술에 대해 하나도 모른다는 후회 속에서 막걸리 학교의 문을 두드립니다. 술 문화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거죠.”

술도 빚고 삶도 빚고
허시영 막걸리 학교 교장전국 방방곡곡의 우리 술을 찾아다니는 전통주 평론이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길은 아닐 것이다. 처음으로 ‘술 기행’을 하게 된 계기는, 솔직히 말하자면 ‘여행을 하다 보니 술이 따라왔다’고 했다.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과 다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호기심이 선배의 발걸음을 방방곡곡으로 옮겨놓았고, 그러다 보니 물 좋고 산 좋은 곳에서 빚어지는 좋은 술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는 술을 사랑하는 사람답게 ‘좋은 곳에서 좋은 술을 즐기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옛 사람들이 경치 좋은 곳에서 독작하는 것을 최고로 쳤다는 말과 함께 아마 술을 통해 자기를 들여다 볼 수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듯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성찰의 기회를 술이 제공했던 것이 아닐까요.” 선배의 말에서는 풍류를 아는 사람의 여유를 엿볼 수 있었다. 혹시 학창시절에 술을 좋아하셔서 그 영향을 받은 게 아니냐는 다소 짓궂은 질문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 그는 “우리 땐 누룩 국(麴)자 쓰는 국문과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어요.” 하고 말문을 열었다. “술은 내가 선택한 소재 중의 하나인데, 국문학을 했기 때문에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글로 옮겨내는 작업을 보다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하는 일들, 내가 삶의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을 글로 써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참 고마운 일이죠.” 처음에는 여행, 십여년 전부터는 주로 술이 소재가 되는 그의 글은 ‘여기 한 번 가 보고 싶다’, ‘이 술을 한 번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러고 보면 허시명 선배는 이미 술을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멋지게 마시는 술
허시영 막걸리 학교 교장술은 삶과 매우 가까운 곳에 있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마주대하는 초록색과 갈색의 병들, 혹은 희거나 초록빛의 플라스틱 병들은 사람들을 쉽게 취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술자리는 상당히 ‘공격적’이라는 것이 허시명 선배의 말이다. ‘부어라 마셔라’하는 태도에 ‘폭탄주’ 라는 도구까지 얹은 술자리는 함께 마시는 사람들을 취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 술을 마시는 목적은 취하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술을 즐기는 것 그 자체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선배의 지론이다. “술자리를 한 번 앉으면 서너 시간씩 술을 마시면서 술 자체에 대해서는 한 시간도 제대로 이야기해 본 사람이 없어요. 음식들처럼 술도 우리가 먹는 것인데 그 술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술에 대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알아야 해요.” 막걸리를 예로 들자면 얼마 동안 숙성된 맛인지, 신 맛은 어디서 오고 쓴 맛은 왜 강한지 등을 알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술을 골라서 마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술 문화가 한층 풍성해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대학생들의 술자리에서 필요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냐는 물음에 선배는 역시 ‘문화’ 라고 답했다. “학생 때라면 더욱 더, 술과 더불어 자연과 문학과 세상을 바라보는 문화가 필요해요. 이것이야말로 술을 ‘멋지게’ 마시는 방법이죠.”

<서울대 사람들> 23호 (2010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