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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야기

자연과 세계가 나의 LAB이다

2010.10.22.

흔들리는 배에서 거친 바다와 싸우기도 하고 서울대학교 수원캠퍼스 근처 논에서는 모를 심고 벼를 추수한다. 또 학문에 대한 깊은 호기심으로 모래 가득한 사막을 찾아가 인류와 사막화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자연을 벗삼아 이루어지는 서울대 학생들의 연구 활동. 그 모습이 궁금하다.

연구 열망으로 동해를 누비다
박재형(지구환경과학부 석사과정)

박재형 사진동해 독도 연안 울릉분지. 파고 3m의 거친 바다와 흔들리는 해양관측 실습선 ‘탐양호’. 그리고 바다를 연구하는 학생들. 탐양호에 승선한 해류역학연구실의 박재형 씨는 밤새도록 해류를 살피고 자료를 수집하는 데 여념이 없다. “바닷물의 이동을 연구해요. 구체적으로는 바다가 가지고 있는 열 저장능력, 기후변화에 따른 해양의 변화, 해수온도의 변화 등을 연구하죠. 바다에 직접 나와서 자료를 수집할 기회는 1년에 몇 번 되지 않아요. 한번 나왔을 때 많은 자료를 수집해야 좋은 연구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물리라는 학문의 매력과 활동적인 성격의 접점을 바다에서 찾은 박재형 씨는 여러 배를 연구실 삼아 바다를 누빈다. ‘해양선상실습’의 경우 4박 5일간 18개의 관측 지점을 돌아야 하는 강행군이다. 2교대 혹은 3교대로 해양관측을 해야 하기에 육체적으로 많이 고되지만, 연구실에 틀어박혀 숫자를 보는 것보다 훨씬 연구할 맛이 난다고 한다.

탐양호는 전국 10여 개 대학의 학생들이 사용하는 실습선으로, 탐양호의 승조원들 사이에서도 서울대 학생들의 높은 열의는 소문이 자자하다. 보통 1년에 4~5회 정도 현장 관측을 나온다는 박재형 씨는 이번 관측에서 얻은 새로운 자료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책 속에 있는 기존 관측 자료들의 숫자보다 자신이 직접 관측한 결과로 연구할 때 훨씬 애착이 간다는 박 씨. 만약 그의 연구실을 1년 365일 바다에 띄운다면, 바다에 대한 그의 열망에서 나오는 훌륭한 연구결과들로 동해가 메워질 기세다. “해양 관측은 마치 등산과도 같아요. 산에 올라가면 집도, 차도 모두 조그마할 뿐이죠. 망망대해에 나가 있으면 절로 마음이 넓어집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실에서 지내야 하는 학문을 했다면 연구를 포기했을 거에요. 바다가 제 연구실이 되어주었기에 저는 오늘도 더욱 연구에 몰두할 수 있습니다.”

전 학생이자 농부. ‘주경야독’ 실천 중
구본혁(식물생산과학부 작물생명과학전공 석사과정)

구본혁 사진 봄 햇살이 한층 뜨거워진 4월 어느 날,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이 있던 옛 수원캠퍼스 근처의 농장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다. 얼굴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니 예상외로 나이 지긋한 농부 어르신들이 아닌 앳된 얼굴의 학생들이다. 다름아닌 농대 식물생산과학부 대학원생들.

작물생명과학을 전공하는 구본혁 씨는 벼를 공부한다.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지 두 학기 만에 농부 티가 물씬 풍긴다. 시골에서 농(農)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처럼 그 힘든 모내기도 척척 해낸다. 올해 경작해야 할 논의 면적은 300평. 5월 중순에는 거의 1주일간 같은 연구실 학생들이 모두 수원으로 달려와 모내기에 매진했다. “모내기철이 아니더라도 이틀에 한번은 농장에 와야 해요. 논에 물 대랴, 제초하랴, 농약치랴. 한창 바쁠 때는 낮에 일하고 밤에는 관악캠퍼스로 돌아와 연구해요. 한마디로 주경야독이죠. 농장이 관악산에 있으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자주 합니다. 하하.”

쌀은 벼의 꽃이 피고 난 후에 열리는 열매다. 따라서 벼 수확은 개화시기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구본혁 씨는 바로 이 벼의 개화시기를 조절하는 유전자를 연구한다. 전공으로 원예과학을 선택할지, 작물생명과학을 선택할지의 갈림길에서 그는 인간 생활의 주식인 벼에 매력을 느끼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올해 구본혁 씨의 목표는 개화시기 조절 유전자와 열매 수량과의 관계 연구다. 개화시기를 앞당겨 이모작을 가능케 하더라도 수확량이 적으면 소용 없기 때문이다. 올해 연구할 재료들만 총 300평에 약 10,000그루 정도. 수확량 조사는 낱알을 일일이 세야 하기에 벌써부터 까마득하다. 다 똑같아 보이는 쌀알이 유전자에 따라 크기도 다르고 무게도 다르다는 것이 그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는 “농장에 나와 바람도 쐬고 흙도 밟으며 일하니 학문과 건강을 모두 챙길 수 있어 행복하다”며 “선후배와 함께 멀리뛰기, 삽 던지기 같은 ‘모내기 삼종경기’ 등을 즐기며 공부할 수 있는 연구실은 여기 밖에 없을 것”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사막 한 가운데, 나만의 연구실
이선화 (인류학과 박사과정)

이선화 사진이선화 씨는 전세계적 환경문제 중 하나로 손꼽히는 사막화를 연구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내몽고를 찾아갔다. 주변 동료 중 선행연구자도, 관련 자료도 희박했다. 인류와 사막화의 연결고리가 궁금하다는 호기심. 그 단순하면서도 열정적인 호기심이 그녀를 사막으로 인도했다.

내몽고 어우얼두어스시의 다라터치라는 마을은 농업과 목축업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사막화의 주범은 목축업이라는 설이 힘을 얻고 있지만 사막화를 둘러싼 주민, 중국 정부, NGO, 학자 등 여러 주체들의 상호작용은 이선화 씨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사막화와 인류학을 따로 분리시켜서 생각할 수는 없어요. 중국의 혁명으로 인해 공유지의 사유화가 진행됐고, 정착민이 증가하면서 목축업과 농업을 함께 하는 형태가 발생했다고 봐요. 이러한 일련의 인류 활동으로 인해 사막화가 급속하게 진전됐고, 이를 둘러싼 여러 주체들의 대처방안도 모두 다릅니다.”

어우얼두어스시에 이 씨만의 연구실을 차린 후, 각 국에서 온 NGO와 함께 사막화가 진행중인 지역을 조사했다. NGO와 함께 나무를 심고, 지역 주민과 함께 양의 출산 과정도 지켜보는 등 다러터치 마을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자신만의 연구를 차근차근 진행했다. 열악한 환경, 언어의 장벽도 그를 막지 못했다. 연구를 진행하면 할 수록 놀라운 사실이 많다. 한 주민의 말에 의하면 원래는 사막 지역이 5리 정도였지만, 근 20~30년 사이에 수십 킬로미터로 확장됐다고 한다. 현재 그 지역은 모래가 목초지를 덮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어느 날은 한치 앞이 안보일 정도로 황사도 심했다고 이 씨는 말한다. 하지만 심각한 상황에 맞닥뜨릴수록 이선화 씨는 자신의 연구실이 사막 한가운데 있음에 감사한다. “사막화의 심각한 영향을 몸소 체험할수록 저의 연구 욕구는 더욱 커져만 가는 것 같습니다. 사막화의 원인을 단순히 목축업이라고 볼 수는 없어요. 인류 생활 방식의 변화와 관련된 여러 측면이 많죠. 그 원인을 밝히고 싶습니다. 사막화를 둘러싼 여러 주체들의 참여 또한 궁금하구요.”

서울대 사람들 22호 (2010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