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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해방? - 김종서 교수

2010.10.28.

끝없는 해방?

"이제 해방되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에서 해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글: 김종서 교수 (종교학과)

김종서 교수인문학, 그 가운데서도 세속적인 성취와는 제일 동떨어진 종교학을 내가 택했던 것은 솔직히 체념적 빈티 콤플렉스가 한몫했다. 그러니까 인생 살면서 어디 고민이야 없겠냐마는, 어떻게 하면 남들처럼 더 좋은 집 사고 더 큰 권력 잡느냐보다는 신은 과연 있는 걸까, 진짜 깨달으면 세상 만물이 다 분별없이 보이게 되는 걸까, 뭐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하는 쉬운 생각에서 종교학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학문적 비전보다는, 자신 없는 출세 대신에 아예 통속적 욕망에서 해방되자는 셈이었다.

허나 막상 종교학과에 들어와 시작한 공부는 전혀 딴판이었다. 처음 부과된 벌코 프의『신학개론』의 꼴보수 성서해석 틀부터 정말 나를 질식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조금 숨을 돌린 것은 철학적 논리로 포장된 폴 틸리히의『조직신학』을 그 다음 에 읽은 덕분이었다. 신의 존재라든지 하는 문제가 무조건 믿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입장에서 따져 볼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이 일깨워주었다. 분명히 지평이 넓어지는 것 같았다. 물론 완전히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니었다. 경건으로 내리누르는 듯한 힘을 다만 논리의 체계로 떠받치는 바로 그 밑에 서 있는 형국이었다. 살만했으나 틀에 갇혀 있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만난 멀치아 엘리아데의『성과 속』은 정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서구 기독교 일변도의 사고를 넘어서 원초적 종교들과 동양 종교들을 아우르는 열린 시각은 갇혀 있던 나를 해방시켜 주는 듯했다. 지평이 넓어진다기보다는 원래 지평 따위는 없는 다른 우주 공간으로 초대되는 느낌이었다. 엘리아데의 수많은 저술들을 접한다는 것은 정말 색다른 시련을 거쳐 존재론적 변화를 가져오는 입문 식의 과정들 같았다. 그저 성스러운 현상들의 세계적인 연관성에 감탄했다. 다양 한 상징들이 아케타입(archetype)의 무한한 반복으로 이해되면서 실로 문화 속에 하찮게 흩뿌려져 있던 삶의 현상들이 무언가 줄기로 연결된 듯 보이고 의미심장하 게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무의미한 삶이 의미 있게 되는 것이 곧 구원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렇게 몇 년을 엘리아데의 존재론적 의미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차차 새로 운 엘리아데의 책을 읽어도 미리 결론이 예상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물과 달과 여성과 메시아의 상징이 서로 통한다고 하자. 그래서 뭐라는 말인가(So what)? 종교학을 한다면서도 역시 현실적 세간의 삶이 늘 병존해서인지 그냥 깨달음에만 만족할 수는 없었다. 무언가 내 자신이 더 나아지고 나아가 내 주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유령처럼 늘 따라다녔다. 엘리아데가 상징의 바다에 쳐 놓은 그물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더 큰 해방을 누린 만큼 더 깊이 갇히는 것이구나 하는 느낌도 들었다.

돌이켜 보건대, 나는 사실상 엘리아데의 저술들을 공부하면서 종교학도가 된 셈 이다. 지금까지도 나는 철저한 엘리아디안으로 분류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학부 졸업논문을 준비할 때부터 내 학문의 중심 테마는 어떻게 엘리아데를 극복하느냐, 어떻게 하면 엘리아데의 거대한 종교학적 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엘리아데의 비판론자들을 하나씩 곱씹어 보기도 하였다. 분석철학적 칼날을 들고 나온 니니안 스마트의 비판은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종교가 그렇게 분석되면 너무 무미건조해지고 파편화되는 듯했다. 레비스트로스를 필두로 비롯된 에드먼드 리치 등의 구조기능주의나 후기구조주의로 넘어오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을 가져오는 푸코나 데리다 등의 이성 해체 등에 연결되는 비판 버전에도 한때 끌렸다. 그러나 엘리아데가 건설해 놓은 의미체계를 깨 버린 다면 그에 필적할만한 무슨 대안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또 엘리아데를 프로이트와 융의 심층심리학의 아류로 쳐버린 에릭 샤프나, 엘리아데 저술에서 프레이저 등의 뿌리가 갖는 논리적 모호성을 지적했던 조나단 스미스 등의 입장들도 마찬가 지였다. 남을 비판하기보다 창조하는 데 전념한 엘리아데 종교학의 매력적인 설득 력을 대신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엘리아데 극복의 가장 큰 가능성은 사회과학적 반환원주의 논쟁에서 보였다. 베버와 뒤르껨을 양대 지주로 하는 종교사회학 전통에서의 공헌들이 확대되 면서 엘리아데의 환원주의 비판을 시갈을 비롯한 소장학자들이 다시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사실 종교학이 신학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된 것은 아니었다. 종교의 연구가 완전히 신학에서 해방되는 데에는 심리학, 인류학 및 사회학 같은 사회과학적 연구들의 일정한 역할이 있었다. 허나 이런 사회과학의 공헌은 오히려 종교가 다시 그 본래적 의미보다는 엉뚱한 사회과학적 관심으로 난도질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사회과학적 환원주의를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고 종교의 본질에 대한 현상학적 탐구를 강조했던 게 바로 엘리아데였다. 그러니까 사회과학으로부터 종교연구를 해방시킨 셈이었다. 그런데 이런 반환원주의 담론은 종교에 대한 순수 연구만을 종교학이라 고집하다 보니 그 영역을 축소시켜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래 서 더 이상 엘리아데처럼 종교연구에서 환원주의를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비록 환원적인 연구들이라 할지라도 종교학 속에 다 포괄하여 종교학의 위상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신학과 사회과학들로부터 해방되어 온 종교학이 이제 그 자체 순수주의로부터 다시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논쟁들을 바라보면서 요즘 생각한다. 도대체 학문이란 무엇인가? 결국 시각을 어느 하나의 통로에 고정시켜 세상을 보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구태여 학문 에서 해방이라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인가? 물론 엘리아데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종교학적인 것인가? 내가 과연 종교학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혼자 묻고 답을 찾으려 할 때마다 엘리아데라면 이때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수십 년이 되었어도 엘리아데의 손바닥을 못 벗어나고 있는 나 자신을 실감하는 셈이다.

얼마 전 ‘해탈이 무엇인가’하고 묻는 제자에게 대답을 주는 대신 ‘누가 너를 옥 죄고 있느냐?’ 라고 되물었던 중국선사 희천의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다. 일생 해방을 찾아서 헤맨 내 인생. 이제 해방되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에서 해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 끝없이 해방되려는 이 자체가 병은 아닌가? 저 구름 넘어 하늘 에 잠시 물어본다. 혹시 전생에 나는 밧줄에 꽁꽁 묶여 수천 년 닭장 안에 감금된 삶이라도 살았던 것인가?

김종서 교수는 본교 종교학과를 졸업하여, 1983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UC Santa Barbara)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학중 앙연구원 교수를 거쳐 1993년부터 본교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해 왔다. 현대종교 이론을 전공하였고, 특히 종교공동체에 대한 연구 와 한국종교연구사 분야를 개척해 왔다. 한국종교학회 회장을 지 냈고, 일본종교학회에서, 호주국립대 주최 국제학술대회 등에서 기조강연을 했으며, 세계종교학회와 아시아 유럽 종교간 대화회 의, 동아시아종교문화학회 등에서 한국을 대표하여 활동해 왔다.

<인문대 소식지> 23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