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안내

서울대 소식

뉴스

뉴스

교수칼럼

나의 맹자 수학기 - 허성도 교수

2010.10.28.

나의 孟子 修學記
"학문에도 믿음이 그토록 중요한 것인가 보다"

글: 허성도 교수 (인문대학 중어중문학과)

대학시절 나는 한문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적당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3 학년 봄을 맞이했다. 5월이었다. 가난한 시절에는 봄도 추웠다. 스 산한 바람이 부는 동숭동 캠퍼스 의 나무 의자에 앉아 있을 때, 시 간 강의를 나오시는 선생님 한 분 이 내 옆에 앉으셨다. 연구실도 없이 강의만 하고 가시 는 길이었으니 그 분의 마음도 추웠을 것이다.

그 분은 나에게 요즈음은 무슨 생각으로 지내느냐고 물었다. 나는 한문 공부를 해야겠는데 어떻게 해야 좋 을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분은 “한문 할라꼬? 나 지금 서당 가는데 니도 갈래?”하고 물으셨다. 그 길로 나는 그 분을 따라 나섰고, 그래서 도착한 허름한 한옥에서 나의 선생님을 만났다. 매일 아침 7시에 와서 맹자를 배우기로 했다. 선생님께서는 하루에 맹자 한 줄을 가르쳐 주셨다. 서당까지 오고 가는 데에 한 시간 이상이 걸리는데 공부 시간은 5분이 못 되었다.

나는 맹자의 철학적 의미와 같은 깊은 뜻을 듣고자 했으나 “그런 것은 나는 모른데이, 나중에 니 혼자 생각하그레 이.” 하시는 것이 대답의 전부였다.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더러는 며칠씩이나 서당에 가지 않았다. 혼자 공부해도 그만큼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독학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었다. 게으름은 친구처럼 다가와 나의 의지가 얼마나 약한 지를 자주 확인시켜 주었다. 그래서 며칠 후에는 다시 서당에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한번도 꾸중하시는 법이 없었다. 그 분은 맹자 한 줄을 200 번씩 읽어 오라 고 하셨고, 후에는 500 번씩 읽어 오라고 하시더니 나중 에는 천 번을 읽어오라고 하셨다. 나는 문리과 대학에 있던 중앙도서관에서 이것을 읽었다.

어느 날 내가 “그 동안 배운 것을 외워 볼까요?”라고 말씀드렸더니 “내가 고대 읽으라고 했제? 언제 외우라고 했나? 고대 읽기만 해라이.” 이것이 그 분의 대답이 었다. 선생님께는 한문을 물으러 오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때마다 선생님은 막힘없이 그것을 해석해 주셨다. 그 모습은 나에게 경이로운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공부하면 그렇게 되느냐고 여쭈어 보았다. 대답은 맹자만 천 번 읽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말씀을 믿을 수가 없었다. 과연 그럴까라는 회의 속에서 흉내를 내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선생님의 임종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맹자만 천 번 읽으면 정말 한문을 잘 하게 되는가를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선생님, 이제 임종 을 앞두고 계십니다. 그러하오니 평소의 고집이 아니라 진실을 말씀해 주십시오.”라는 의미를 최대한으로 살린 질문을 드렸다. 선생님의 응답은 똑 같았다. “맞다. 고대 천 번 읽으레이.” 이것이 선생님과 나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 후로 孟子千讀은 내 삶의 화두가 되었다.

그러나 이 방법이 옳은가라는 의심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에 나는 내 생애를 통해서 선생님의 말씀 이 과연 맞는가를 증명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이 증명될 때 선생님 묘소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1999년 이후로 나는 읽는 횟수를 세지 않았다. 천 번이라는 횟 수는 의미가 없으며, 그저 한 구절 한 구절을 무한히 생각하기로 하였다. 작년에 나는 안식년을 맞았고, 이 동안 맹자를 끝내기로 작정하였다. 나이로 보아 이미 늦었다는 초조감이 들었을 것이다. 몇 번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금년 1월 13일, 나는 맹자를 일단 완독했다. 이 한 권을 읽는 데에 35년이 걸린 셈이다. 그러나 全文을 다시 보니 뜻을 모르는 부분이 아직도 곳곳에서 나를 맞는다. 앞으로도 몇 년은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

내 생애의 많은 세월이 이곳으로 흘렀다. 그러나 이러한 독법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는다. 더러는 가슴 터질 것 같은 흥분을 경험하기도 하였고, 더러는 맹자와 고즈넉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이 옳은지를 증명하겠다는 꿈은 이루기 어려울 것 같다. 시간이 너무 늦은 것이다. 왜 늦었을까? 그것은 이 방법에 대한 믿음의 부족 때문이었다. 방황의 시간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학문에도 믿음이 그토록 중요한 것인가 보다. 이 방법에 대한 확신을 가진 후에 나는 이를 믿고 따라줄 제자를 찾았다. 그러나 아직 그러한 제자를 만나지 못했다. 내 삶에 가을처럼 소슬한 부분이 있다면 아마도 이 부분일 것이다. 금년 한식에는 선생님의 묘소를 찾아가려 한다. 평소 좋아하시던 약주 한 잔 올리며, 세월 지나 풀잎 푸르를 그곳에서 號哭을 바람에 날리고 싶다. 그리고 한참이나 묘소 옆에 앉아 있고 싶다.

<인문대 소식지> 2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