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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으로 살아가기 - 이종묵 교수

2010.10.28.

풍경으로 살아가기
"조선시대 산수화에 사람이 조그마하게 그려진 것은, 사람도 풍경의 일부이기 때문"

글: 이종묵 교수 (국어국문학과)

조선시대 산수화에는 사람이 조그마하게 그려져 있다. 진경산수로 이름을 떨친 정선(鄭敾)이 철원의 삼부연(三釜淵)을 그린 그림이 그러하다. 전면에 자리한 바위산과 삼단의 폭포가 작품의 중심에 크게 자리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물가 의 언덕에는 대여섯 명의 사람이 조그마하게 그려져 있다. 거대한 삼부연과 왜 소한 인간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산수화에서 사람은 산과 물에 비해 크지 않다. 사람은 풍경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선비는 풍경의 일부로 살고자 하였다. 편리한 삶을 위하여, 혹은 아 름다운 조망을 위하여 풍경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16세기 예안(禮安)의 선비 이현보(李賢輔)도 그러하였다.

구불구불 산허리에 길은 비뚤비뚤
길 따라 지은 대는 안계가 탁 트이네.
노니는 객이 조망을 막는다 싫어하기에
새로 대를 쌓아 고운 빛을 마주한다네.
山腰屈曲路?斜 緣路爲臺眼界遐
遊客尙嫌眺望? 更新高築對文華
* 이현보, 「봄날 지산정사에서 홀로 절구 두 수를 지어 황준량에게 부치다 (春日芝山精舍獨吟二絶寄仲擧)」(『농암집』)

이현보는 젊은 시절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친 후 노년에 고향으로 물러나 한가한 삶을 살았다. 고향의 영지산(靈芝山) 아래 지산정사(芝山精舍)를 짓고 후학인 이황(李滉)과 학문을 토론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그런데 처음에 지산정사 앞의 높은 언덕에서는 청량산(淸凉山)이 잘 보이지 않았다. 후학인 황준량(黃俊良)이 지산정사로 찾아와 청량산을 가리고 있는 동쪽 고개의 소나무를 베어 내자고 하였다. 이현보는 소나무를 베는 대신 조망할 수 있는 언덕 을 새로 조성하였다. 청량산이 훤하게 바라다보이는 곳에 흙과 돌로 높은 언덕을 새로 쌓았다. 그리고 그 이름을 망령된 마음을 막는 대라는 뜻의 두망대(杜妄臺)라 하였다. 이처럼 나무를 베는 것이 아니라 건물을 옮기는 것이 옛사람의 생태적 지혜다.

혁명가로 조선을 개국하기 위하여 창칼을 휘두른 정도전(鄭道傳)이지만, 혁명의 대열에 들어서기 전 은자로서 살 때 산과 물의 일부로 살고자 하는 뜻을 보였다.

삼봉 아래 쓰러져 가는 집이 있는데
돌아오니 소나무에 가을이 들었네.
집안은 가난하여 요양하기 힘들지만
마음은 고요하여 시름 잊을 만하다네.
대숲을 보호하느라 길을 둘러 내었고
산을 아껴서 누각을 조그맣게 세웠네.
이웃 절의 스님이 찾아와 글자를 물으니
온종일 그 때문에 잡아둔다네. 弊業三峯下 歸來松桂秋
家貧妨養疾 心靜足忘憂
護竹開迂徑 憐山起小樓
隣僧來問字 盡日爲相留
* 정도전, 「산속에 살며(山中)」 『삼봉집』

시성(詩聖)이라는 일컬음을 받은 두보(杜甫)는 대나무를 좋아하여 즐겨 시에 담았지만, 정작 자신이 살 집을 짓기 위해서는 아무렇지 않게 대나무를 베어내 풍경으로 살아가기 었고 또 길을 내기 위해 스스럼없이 대숲을 없앴다. 그러나 정도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숲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길을 빙 둘러 내고, 스카이라인 이 구겨지지 않도록 조그맣게 집을 세운 것이다. 힘이 들고 불편하더라도 사람 이 조금 돌아가고 조금 작은 집에 살면 될 뿐이다.

17세기 뛰어난 산문가 신흠(申欽)은 시골사람의 말이라는 뜻의 「야언(野言)」 이라는 글에서, 사람이 풍경의 일부가 되는 법을 이렇게 운치 있게 적고 있다. 봄이 다하려 할 때 숲 속으로 걸어간다.

호젓한 곳으로 통하는 오솔길에 솔과 대가 어리비친다.
들꽃은 향기를 뿜고 산새는 혀를 놀린다.
이럴 땐 거문고 끼고 바위에 앉아 좋은 곡조를 두엇 탄다.
몸이 변하여 신선이 되고 그림 속의 사람이 된다네.
春序將?,步入林巒.曲逕通幽,松竹交映.
野花生香,山禽?舌.時抱焦桐,坐石上,撫二三雅調.
幻身卽是洞中仙?中人也

맑은 산수화에 그려진 사람은 풍경의 일부다. 호젓한 산길, 소나무와 대나무 의 푸른빛이 산뜻한데 이름 모를 들꽃은 향기를 뿜고 산새는 노래를 한다. 너럭 바위에 앉아 거문고를 타는 사람은 풍경의 인물이요, 자연의 일부다.

옛사람은 자연의 일부로 살았다. 사람이 자연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사람이 풍경의 일부가 된다는 말로 바꾸면 훨씬 쉽다. 생태적 사고는 풍경의 일부가 되는 데서 출발한다. 사람은 원래대로 산수의 일부로 돌아가야 한다. 사람이 산과 물보다 커서는 아니 된다. 산과 물보다 크지 않은 사람의 모습을 그린 산수화를 보고, 자신의 부피를 줄여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람이 풍경의 일부가 될 때 더욱 멋진 산수화가 되지 않겠는가?

이종묵 교수는 본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 한문학 연구자이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재직하다 2003년 모교에 부임했다. 『한국한시의 전통과 문예미』(2002), 『조선의 문화공간 1-4』(2006), 『우리 한시를 읽다』(2009) 등의 저서를 냈다.

<인문대 소식지> 16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