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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늦으리 - 김주원 교수

2010.11.01.

바우바우시의 초등학교 교실,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언어인 찌아찌아어를 한글로 배우고 있다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 언어에 담겨 있는 문화가 함께 사라지는 것
‘생물 종 다양성’이 지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처럼 언어문화 다양성의 유지가 꼭 필요

세계의 언어가 위험하다. 금세기 말이면 지구상의 언어가 반으로 줄어들어 3,000 개만 남게 된다. 이런 말은 요즈음 너무 많이 들어서 늑대 소년의 외침일 수도 있다. 그런데 현장을 다니다 보면 언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언어가 사라져가는 과정을 보면 사회교제언어로 정상적으로 기능하던 언어가 어느 시기부터 동일한 민족끼리만 쓰는 민족교제언어로 줄어들고 종국에는 가정내에서만 쓰이는 언어로 되고 만다. 그러면 조부모 세대만 그 언어를 구사하고 부모 세대는 그 말을 알아듣고 대답만 할 수 있는 정도이다. 이 상황도 잠깐 지나면 조부모 세대가 사망하면서 그 언어는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러시아의 아무르 강의 지류인 암군 강가에는 네기달족이라는 퉁구스계의 민족이 거주한다. 2002년의 통계에 의하면 567명이 있으며 그 중에서 9명이 모어를 구사한다고 한다. 2008년 여름에 네기달어를 조사할 기회가 생겼다. 언어 조사는 현장에 가서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하지만, 우리의 경험으로는 대도시 호텔로 불러내는 것이 제일 좋다. 두 가지 이유인데, 첫째는 현장의 문제 이다. 대개는 벽지의 시골이어서 차로 가기가 힘들 뿐 아니라 현장에 도착한 이후도 문제이다. 언어 조사시 깨끗한 음질의 녹음을 위하여 주위가 조용해야 하는데 대개는 병아리, 개 등의 가축이 소리를 내는 데다가 외국에서 손님이 왔다고 소문이 나면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들어 집중이 되지 않는다. 둘째는 자료제공인(consultant)이 가정사 등 생업을 영위해야 하므로 한 자리에 오래 앉아서 언어 조사에 전념하여 응할 수가 없다. 시내의 호텔로 불러내면 현장감은 떨어지지만 이 두 가지가 동시에 해결된다.

조사팀과 함께 하바롭스크에 도착해서 보니, 현지의 네기달인은 이미 주위 에서 사용되는 위세 언어인 어웡키어에 동화되어서 고유의 네기달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한다. 최후의 네기달어 사용자라고 소개된 우리의 자료 제공인은 열 살이 되었을 때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와서 줄곧 러시아어를 사용 하면서 살아온 분이다. 순수한 네기달어는 이 분의 머릿속에만 남아있게 된 것 이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기억 되살리기 작업이 필요하다. 다행히 이틀 정도의 대화를 통해서 문장 수준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의 건강 때문에 사흘밖에 못 만났고 그동안 약 300개의 어휘와 200여 문장정도밖에 얻어내지 못했지만 보람 있는 면담이었다. 할머니와 헤어지면서 6개월 뒤에 다시 올테니 그 사이에 생각을 많이 해두시라는 부탁을 드렸다. 필자가 동행하지는 못했지만 2008년 12월에 할머니를 다시 만났는데, 더욱 노쇠해졌고 더 추가할 수 있는 단어나 문장이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지구상에서 한 언어가 사라지는 것이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어웡키어 사용자가 있다. 중국 어웡키족의 대부 분은 내몽고자치구에 살고 있는데 흑룡강성에도 약간 명이 살고 있다. 2009년 여름에 두 차례에 걸쳐서 흑룡강성 어웡키어를 조사하였다. 통상 한번 조사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두 차례 조사한 데에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준비과정 에서 현장에는 호텔이나 여관이 없어서 접근이 불가능하며 언어를 구사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지만 건강이 나빠서 인근 대도시인 하얼빈으로 나오지 못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현지 초등학교에서 어웡키어 교사를 하는 선생님을 불러오겠다는 제안을 해서 그나마 언어 조사가 가능할 것이라 하여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하얼빈에 도착하였더니 성실해 보이는 어웡키인 교사가 미리 와 있었다. 이 분이 39세라고 하니 조금 불안하기는 했다. 이들의 언어 역시 가정언어로 전락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부터 언어 조사가 시작되었는데 불안한 예감은 적중하고 말았다. 쉬운 단어는 몇 가지 자신 있게 대답하더니 조금 지나자 땀을 흘리기 시작하였고 문장 수준의 어웡키어는 정확하게 구사하지를 못하였다. 언어 조사는 더 이상 진행되지를 못 하였다. 그런데 이 분이 쓰는 어웡키어 단어와 문장을 몇 개 듣다보니 러시아의 어웡키어, 내몽고의 어웡키어와는 구별되는 분명 한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이 언어를 제대로 조사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겨났다. 그리하여 두 달 뒤에 현장을 방문하기로 약속을 잡은 후 헤어졌다.

두 달 후 하얼빈을 거쳐서 넌 강가에 있는 싱왕 어웡키족향(興旺鄂溫克族鄕)을 방문하였다. 지난번에 만났던 선생님과 그 학교 교장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교장 선생님은 자신의 언어를 모르는 몽골계의 다고르족이었다. 우리는 그 학교의 숙직실로 안내되었다. 여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서도 굳이 방문하겠 다고 했으므로 그들로서도 손님 맞을 대책을 고민하다가 학교 숙직실을 내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낮에는 교장실에서 언어 조사를 하고, 팀 중에서 여성은 거기에 간이침대를 놓고 지내게 되었다. 막 개학을 하였지만 교장실은 좀 떨어져 있어서 비교적 조용한 가운데 언어조사를 할 수 있었다. 자기 집무실을 내어 준 교장은 낮이면 어디를 돌아다니다가 끝날 때쯤이면 나타나서 불편한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물 좋은 넌 강이 바로 옆에 흐르는데도 세수할 물조차 변변치 않아서 물 기근을 겪기도 하였지만 조사는 성공적이었다. 73세 할머니를 자료 제공인으로 모셨는데 발음도 정확하고 언어 감각이 좋아서 우리가 무엇을 질문하는지를 알아채고 잘 대답해 주셨다. 할머니만큼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분이 10명을 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 방언도 앞으로의 수명이 20년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 나오므로 아쉬움으로 가슴이 답답해졌다.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 언어에 담겨 있는 사용자들의 문화, 자연관, 인생관, 사고방식이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지금 세계의 언어학자들은 마치 ‘생물 종 다양성’이 지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처럼 언어문화 다양성의 유지가 앞으로의 인간의 삶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양성 유지를 위해서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다른 인문학과 마찬가지로 언어학이 추상적이고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학문이라고는 하지만 요즈음은 다르다. 절멸위기에 처한 인류의 언어와 문화를 기록, 보존하고 되살리는 의미 있는 작업을 하게 된 것 이다. 현지 언어를 연구하는 언어학자는 이렇게 외친다.“나는 최후의 기록자이다. 내일이면 늦으리."

김주원 교수는 지난 10년 동안 중국, 러시아, 몽골 등 알타이 언어 사용지역에서 사라져가는 언어에 대한 조사를 펼치고 있다. 지난 해에는 인도네시아 소수 민족 찌아찌아족에게 한글로 문자 시스템을 만들어 주어 찌아찌아어를 보존하는 데 성공했다. 한글과 알타이어 비교 연구를 수행하며, ),『몽골어와 퉁구스 어』(공저),『조선왕조실록의 여진족 족명과 인명』,『사라 져가는 알타이언어를 찾아서』(공저) 등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