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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을 뻔한 길’의 파리 - 오생근 교수

2010.11.04.

‘가지 않을 뻔한 길’의 파리
글: 오생근 교수 (불어불문학과)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인생의 갈림길 앞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길을 선택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의미 있는 선택임을 일깨워주는 시이다. 그 시에서 ‘사람이 많이 다닌 길’이 안전한 길을 뜻한다면, ‘사람이 덜 다닌 길’은 모험 의 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갈림 길 앞에 서는 것일까? 저마다 자신의 운명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순 탄한 삶의 소유자에게는 갈림길이 많지 않았을 것이고, 갈림길이 있다 해도 그는 안전한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나는 순탄한 운명으로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갈림길 앞에서 크게 고민한 적이 많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시간을 돌아보 면 당시에는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선택의 결과가 나의 삶에서 가장 큰 갈림길로 되었던 일이 있다. 그것은 70년대가 끝날 무렵, 뒤늦게 프랑스에 유학가려 했을 때 파리로 갈 것인가, 엑스 앙 프로방스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갖고 고민할 때 였다. 그 당시 나는 초현실주의 시인 엘뤼아르의 시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겠다 는 계획서를 프랑스의 몇몇 교수에게 보낸 뒤에, 그것에 대해 호의적인 답장을 해 준, 파리 10대학의 한 교수와 엑상 프로방스의 한 유명한 교수의 편지를 양손에 들고, 둘 중에서 어느 쪽을 결정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파리로 가자니 대도시의 분주한 생활리듬으로 논문에만 몰두할 수 없을 것 같았고, 지방도시로 가자니 한적한 생활 속에서 논문에 집중할 수야 있겠지만 선뜻 내키지 않는 점은 파리가 본거지인 초현실주의 시인의 시를 공부하면서, 굳이 파리를 피해 지방으로 가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런 고민 끝에 나는 결국 프로방스대학으로 결정했는데, 그렇게 결정한 이유 중의 하나는 무엇보다 그 길이 안전한 길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엑상 프로방스 대학은 나와 가까운 몇몇 선배들이 졸업한 대학이란 점에서 친숙감이 느껴진다는 것 외에도, 그 대학에서 나의 지도교수가 될 사람이 워낙 유명하고 지도학생이 너무 많아, 학생들을 꼼꼼히 지도해 주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도 나에게는 오히려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논문을 쓸 수 있다는 긍정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그 대학을 졸업한 한 선배가, 엑상 프로방스는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늘 투명한 햇빛이 가득한 청춘의 도시이고, 가까운 들판에는 르네 샤르의 시에 나오는 라벤더 꽃들이 자욱하게 피어나는 아름다운 곳이어서 ‘행복의 충격’을 겪을만 하다고 말한 것이 나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점도 있었다.

이런 점에서 대학을 이성적인 판단으로 결정하기보다 다분히 감성적인 생각으로 결정한 후, 그 해 여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를 거쳐 곧 엑상 프로방스로 내려갔다. 그런데 그 곳에서 한 일주일 머무는 동안, 나는 그 대학과 도시가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다르게 아주 작고 답답한 곳이라는 점이 불만스럽게 느껴졌고, 그 선배가 말한 아름다운 풍경은 매혹적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또한 작은 대학에 한국인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어디를 가거나 그들과 마주치게 되면서, 그들이 보여주는 호의와 친절이 오히려 불편하고 부담스럽게 생각되기도 했다. 나의 지도교수가 될 사람에 대한 소문이 이번에는 오히려 그 대학에 등록을 망설이게 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이 도시가 나와는 인연이 없는 곳이라는 판단을 내리고는 그 즉시 무거운 트렁크를 들고 무작정 파리로 올라갔다. 그날 밤, 파리의 역에서 숙소로 가는 동안, 나는 군중 속의 고독이 아닌, 군중 속의 자유를 만끽하면 서, 대도시가 편한 ‘도시적 인간’으로서의 내 모습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 후 며칠 동안 초현실주의자들이 거닐던 거리를 걸어보고, 그들이 자주 모이던 카페를 기웃거리면서, 목적이 없는 산책길에서의 자유로움을 향유하거나 도시의 간판과 온갖 기호들을 근거로 상상력을 펼치면서 행복감에 젖기도 했다.

그러나 파리에서 누릴 수 있는 그러한 행복의 자유에는 가혹한 시련이 따른다 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지도교수인 아바스타도와 면담할 때였다. 그 자리에서 그는 내가 어떤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건 동의하겠지만, 연구방법은 반드시 기호학이어야 한다는 것을 무엇보다 강조한 것이다. 나로서는 그의 요구가 너무나 뜻 밖이어서 앞으로 어떻게 논문을 써야할지 막막해지기만 했는데, 그 이유는 내가 기호학에 무지했을 뿐 아니라, 그 방법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 연구 에 필요한 연구방법 이라면 기껏해야 바슐라르의 상상력 이론이면 충분할 것으로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나에게 그 교수의 엄격한 주문은 나 스스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학생’임을 깨닫게 했다. 또한 그 교수가 초현실주의에 대한 두 권의 책을 쓴 사람이라는 정보만 갖고, 그 대학의 기호학 연구소 소장이라는 것 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 나의 불찰이라는 자책감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러나 또 다시 지도교수나 대학을 바꿀 처지가 아니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그의 세미나에 참석하고 그 대학의 기호학 강의들을 청강하면서 기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가 고행처럼 생각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공부가 재미있어야 하는 데, 무엇 때문에 이런 방법이 필요한 것인가 하는 회의가 가시지 않아 공부의 진척이 순조롭지도 않았다. 그런 가운데 문학작품의 형태적 중요성과 그것의 분석적 시각의 필요성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 것은 다행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또 한 지도교수의 불어권 아프리카 소설들의 기호학적 분석에 관한 강의를 들은 것은 완전히 새로운 학문세계에 진입한 것 같은 개안의 경험이 되었다. 그러나 연구방법에 대한 그의 요구 때문에 엘뤼아르의 시를 포기하고 초현실주의의 핵심인 브르통의 산문텍스트를 논문 주제로 삼게 된 것은 큰 사건이었다. 그러니까 나의 뒤늦은 결정은, 단순한 감성적 선택이 삶의 방향을 얼마나 크게 바꾸어 놓 았는지를 절실히 깨닫게 한 운명적 사건이 된 셈이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가지 않은 길’을 뒤늦게나마 가게 되어 운명의 전환 뿐 아니라 학문적 수확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변화 외에도 중요한 것은 파리에서 푸코의 책을 발견하게 된 점이다.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읽 게 된 ‘감시와 처벌’은 감동과 전율이 느껴지는 독서체험을 갖게 했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정보화 사회는 거대한 감옥의 사회이다. 이 사회에서 인간은 감 옥의 죄수처럼 감시받고 있으며, 우리의 모든 행동과 생각은 기록되고 평가되고 서열화된다.”는 메시지를 강력한 웅변으로 들었다. 나는 귀국하면 푸코를 소개하고 연구하는 일을 앞으로 추구해야 할 과제로 삼겠다고 나 자신과 약속하기도 했다. 프로스트의 또 다른 시, ‘눈 내리는 저녁 숲에 멈춰서서’의 마지막 구절처럼, 그 일은 나에게 쉬지 않고 ‘가야 할 먼 길’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약속 을 과연 얼마나 지킨 것일까?

오생근 교수는 프랑스문학 전공자로 20세기 프랑스 시와 비평을 주로 연구해 왔다. 파리 10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성심여대 불문과 교수를 거쳐 1984년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부임했다. <대학신문> 주간과 한국불어 불문학회회장을지냈다.『 문학의숲에서느리게걷기』(2003),『 프랑스어문학 과 현대성의 인식』(2007) 등 다수의 저서가 있으며 우호학술상을 받았다. 정년을 1년 여 앞둔 지금도 청년과 같은 열정으로 새로운 연구에 열중하고 있다.

<인문대 소식> 19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