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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갖추어진 문학박물관 - 권영민 교수

2010.11.04.

제대로 갖추어진 문학박물관
글: 권영민 교수 (국어국문학과)


일본 동경의 국립 일본근대문학관(日本近代文學館)은 명치시대 이후 근대문학의 모든 자료를 한자리에 보존 정리하여 놓은 문학박물관으로 유명하다. 이 근대문 학관이 발족한 것은 동경 올림픽 직전인 1963년이다. 일본 근대문화와 예술의 역 사적 체계화를 목표로 새롭게 계획된 근대문학관은 그 본관이 1967년에 개관하 였다.

일본 근대문학관은 그 설립 목적 자체가 근대문학 관련 자료를 모두 수집, 정리, 보존한다는 데에 있었기 때문에 문학 관련 자료의 수집 과정이 자연스럽게 그와 같은 취지에 따라 이루어졌다. 일본의 근대문학 자료를 중심으로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관련 자료가 모두 수집 대상에 포함되었다. 도서, 잡지, 신문 등의 일반 자료는 물론이고 문필 관련 원고, 서간, 필묵, 일기, 노트, 사진, 유품 등의 특수 자료까지 모두 백만 점에 가까운 소중한 자료가 이곳에 보존되어 있다. 근대문학관의 설립을 준비하는 동안에 많은 언론사와 유서깊은 출판사들이 자료 수집 운동에 앞장섰다. 오랜 역사를 지닌 출판사들은 이 근대문학관에 초간본 문학 도서 4만 여권과 수많은 문예 잡지를 기증하였고, 일본의 저명한 문인들도 자료 기증 운동에 적극 호응하였다. 작고한 문인들의 경우는 그 유족들이 장서와 유고 유품들을 이곳에 무상으로 기증하게 되었다. 현역 작가들도 자신의 작품집이나 친필 원고들을 근대문학관에 기증하여, 근대문학관계 자료의 수집 정리 작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었다.

일본 근대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중요 자료 가운데에는 아쿠다가와 류노스 케(芥川龍之介),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등의 개인문고가 특히 유명하다. 일 본 문학을 대표하는 이들의 문학관련 자료는 대부분 이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명 문인의 문학 관련 자료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간행된 근대 문학 예술 관련 잡지 및 동인지가 대부분 이곳에 소장되어 있다는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이 들 자료는 일본 근대문학관이 운영지침으로 내세우고 있는 보존제일주의 원칙에 따라 매우 엄격하게 정리 보존되고 있는데, 미정리된 특수자료 이외의 모든 자료 는 항상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으며, 복사나 사진 촬영도 허용하고 있다. 일본 근 대문학관의 자료 정리 작업에서 가장 주목되고 있는 작업은 근대문학 잡지의 복 각판 간행이다. 일본 근대문학관은 개관 이후 ‘문예시대(文藝時代)’, ‘문예전선(文藝戰線)’, ‘프롤레타리아문학(プロレタリア文學)’, ‘근대문학(近代文學)’ 등의 중요 잡지와 동인지들의 원본을 수집 보관하게 되면서 이들을 원본의 상태와 거의 비 슷하게 복각본을 제작 보급하여 모든 도서관들이 이 복각본을 소장할 수 있게 하 였다. 일본근대문학관은 1963년 설립 이후 정기적으로 대대적인 전시회를 개최 하고 있다. 각종 세미나와 공개 강연인 곁들여지는 정기 전시회와는 별도로 특별 전시도 정기적으로 이루어진다. 일본 근대문학관의 특별전시실로 꾸며져 있는 노 벨문학상으로 유명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기념관은 매년 4~5월과 10~11월 사이에 일반인에게 유료로 개방하고 있다.

일본근대문학관보다 규모가 작지만 이런 특징적인 문학박물관이 일본 전역에 150여개가 현재 문을 열고 있다. 동경 근교인 요코하마에도 유명한 가나가와현 (神鵒1;川縣) 근대문학관이 있다. 1982년에 개관한 이 근대문학관은 모든 운영 경비 를 지방 자치단체인 현(縣)에서 부담한다. 가나가와 현은 이른바 예향으로서 일본 의 유명 문인 예술가들이 많이 기거했던 곳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생애의 대 부분을 이곳에서 지냈고, 일본문학사의 중요 인물들 가운데 이 지방에 연고가 깊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가나가와 현에서는 자기 고장의 특성을 살려서 이러한 문학인들의 자료를 폭넓게 수집 정리하여 일반인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지하 3층 지상 2층의 근대문학관은 연건평 5,400m2나 되는 대규모 건축물인데, 지진을 대비한 특수설계와 화재방지시설 등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수장하고 있는 자료 55만점을 보존하기 위해 전동식 서가를 완비하고 있다. 그리고 특수자료의 보존을 위한 자료실은 별도의 목조서가와 보존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 근대문학관은 넓은 원형의 상설 전시실이 인상적이다. 전시자료는 유명 문인들의 자필원고와 서간, 그리고 유물이 주종을 이룬다. 영상자료관도 별도로 운영하고 있어서 문학관계 자료의 입체적인 관람이 가능하다. 이곳 근대문학관 설치되어 있는 특별자료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개인 기념관이다. 가나가 와 근대문학관의 설립에 기여한 문인들의 저서와 소장도서, 그리고 저서 유품 등 을 생존시의 모습대로 비치하여 진열해 놓고 있다. 그런데 몇 개의 방이 비어 있 는 상태로 남아 있다. 앞으로 이 방에 모셔질 후대 문인들의 몫으로 남겨놓고 있 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근래 문학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나 문학박물관이 여기 저기 들어서고 있다. 새로 생겨나는 기념관이나 박물관들을 보면 그 규모도 작지 않다. 그러나 덩그렇게 지어놓은 건물에 비해 그 속에 보존하고 있는 자료 들이 엉성하기 이를 데 없다. 공간을 만들면서 그곳을 채울 자료 내용을 전혀 고 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물을 세우는 데에만 돈을 들이고 자료를 수집하고 정 리하고 보존하는 일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니 그 운영 상태가 부실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유명 문필가의 이름을 내걸고 있는 곳들이 부끄럽게도 그 이름값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근대 문학의 역사는 불과 백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연구자들은 모 두가 그 대상이 되는 연구 자료에 늘 불만이다. 유명 문인의 초간본 작품집이나 시집을 제대로 보존하고 있는 곳이 아무데도 없다. 문예 잡지나 신문 가운데에도 창간호부터 결호가 없이 전질을 제대로 갖추어 보존된 것이 별로 없다. 한국 최 대 규모의 국립중앙도서관도 이런 자료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고, 국회도서 관이나 유명 대학의 도서관도 형편은 마찬가지다. 한국문학의 소중한 자료들을 모두 한데 모아 보존할 수 있는 변변한 문학자료관 하나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중요한 자료를 한번이라도 원본 그대로 구경이라도 하려면 개인 소 장자들을 찾아다녀야만 한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말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다.

권영민 교수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81년 국문과 교 수로 부임했다. 한국 근현대문학사 연구의 권위자로『한국현대문학사 1,2』, 『한국민족문 학론연구』, 『한국계급문학운동사』, 『서사양식과 담론의 근대성』, 『이상 텍스트 연구』등 많은 저서를 냈다. 올해 서울대학교 학술연구상을 수상했다. 인문대학장을 역임했으며, 미국 하버드대학, 버클리대학, 일본 동경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강의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국제적으로도 펼치고 있다.

<인문대 소식> 18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