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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chemist에서 Chemist로

2010.11.12.

Alchemist에서 Chemist로 (연금술사에서 화학자로)

글: 화학부 정두수 교수


연금술사(alchemist)들은 금이 빛나는 노란 금속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납, 은, 수은, 주석 등에서 금속의 성질을, 황에서 노란색을 뽑아 잘 짜집기하면 금이 될 것이라 믿고 수천년 동안 금을 만드는 비법을 찾았었다. 이제 연금술사는 판타지 영화 속에서나 나오는 사라진 존재이지만 우리는 아직도 연금술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연금술사가 이것 저것을 모아 짝퉁 금을 만들려 하듯이, 영화 속의 주인공이 지녔던 장신구를 지니고, 주인공의 머리 모양과 말투를 따라하면서 나도 주인공이 된 듯 느낀다. 눈은 누구를, 턱은 누구를, 성격은 누굴 닮은 짜집기 이상형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인간은 연금술의 매력과 마력에서 벗어나기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학자들도(과학적 방법론이 나오기 전이므로 과학자라 부르기 어렵다) 연금술의 짜집기 원리가 과연 맞는 것인지 의심한 것은 17세기에 들어서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기체의 압력과 부피가 반비례한다는 보일의 법칙으로 잘 알고 있는 로버트 보일은 1661년에 출간한 "Sceptical Chymist"에서 동료 화학자(chemist)들에게 연금술의 기본 원리를 의심해 볼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모든 원리는 반복된 실험의 검증을 통해서 확인되기 전에는 가설에 불가하다는 과학적 방법론을 주창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것을 수 천 년의 시행 착오 후에야 깨닫게 된 것이다. 이 각성을 통해 인류는 연금술 마법의 저주에서 벗어나 과학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원리보다는, 검증된 하나의 법칙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화학도 로버트 보일 이전과 이후를 고대화학과 현대화학으로 나눈다.

Chemistry (화학이란?)

연금술을 무조건 폄하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Alchemist의 사전적 풀이에는 experimenter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무모하기는 했었지만, 무수한 실험적 도전(empirical try)의 결과 그들의 남긴 금속 및 합금에 대한 방대한 지식들은 이제 막 과학으로 자리잡기 시작하는 화학이라는 싹이 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CHEM IS TRY"로 풀 수 있는 chemistry에서 지칠줄 모르는 실험적 도전은 지금도 필수 덕목으로 여겨지고 있다. 연금술에는 그 나름의 철학도 있었다. 만물이 물, 불, 흙, 공기라는 ‘기본 4 원소’(chem의 어원은 이집트어의 keme으로 즉, ‘earth’라는 뜻이다)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전제와 이들의 절묘한 조합으로 전혀 다른 새로운 물질을 만들 수 있다는 일종의 신앙과도 같은 믿음이 그것이다. 현대 화학자들도 같은 맥락을 따르고 있다. 다만 4 원소 대신 100여 가지의 원소를 과학적 방법론에 의거하여 조합하고 있다는 것이 다르다. 18세기와 19세기의 화학자들은 원소의 기본 단위인 원자와 원자들이 모여 구성된 분자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매우 제한된 실험과 관찰 도구만으로도 원자와 분자의 존재를 규명해냈다. 연금술사들이 4 원소에 근거하여 막연한 믿음으로 수천 년 간 쌓은 업적보다, 과학적 방법론으로 현대 화학이 지난 100년간 이룬 업적은 도저히 비교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다. 처음에는 답답하고 느려 보였지만, 꼼꼼하게 객관적 검증을 거쳐 쌓아가는 원자와 분자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인류 문명은 20세기 들어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17세기의 로버트 보일은 자신의 각성이 이토록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줄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저명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모든 인간의 지식 중 가장 중요한 생각은 만물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발상’ 이라고 언급했다. 마치 연금술사가 세상이 4원소의 조합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시각과 비슷해 보이지만 이는 보다 단순하면서도 많은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실질적 접근이었다. 원자의 집합체인 분자는 매우 작아서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우리 주변 자연의 모든 것들을 이루는 단위체, 골격과 같은 존재이다. 고대에서 현대로 오면서 과학적 계몽이 크게 이루어지긴 했지만, 아무리 과학적 지식과 기술로 파악하려 하여도 자연은 여전히 인간에게 알 수 없는 존재다. 우리들이 직관적으로 바라보는 세상과는 달리 원자와 분자의 세상에서는 파동과 입자라는 양립하기 힘들어 보이는 두 가지 얼굴을 동시에 가지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분자는 한결같은 정적 상태를 유지하지도 않는다. 매 순간 상호간의 위치가 변하고 쉴새 없이 새로운 분자로 다시 태어난다. 화학자들은 그들의 창조적 욕구로 분자를 원하는 형태로 조립하려 한다. 이는 마치 고대 연금술사와 같다고 할 것이다. 화학자들은 마치 가상의 손잡이 같은 분자 내 작용기를 고안하기도 하고, 방향을 조절하여 원하는 분자만 접근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때로는 분자 부위별로 원자 및 전자를 공급하여 반응에 적합한 접착성 분자 구조를 만들기도 하고, 종류를 구분하여 쌓기도 하며, 촉매를 투입하여 원하는 물질로 변화시키기도 한다. 수 많은 실험과 연습을 살피며 우리는 모순이 가득해 보이는 자연을 ‘분자’라는 언어로 이해하고 조절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렇게 귀하고 신묘막측한 chemistry를 "CHEM IS mysTRYous"로 풀기도 하나 보다.

General Chemistry (일반 화학)

과학적 사고와 탐구를 위한 틀을 마련할 수 있는, 새로운 창조에 대한 도전 의식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화학. 그렇다면 현재 우리 학교에는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일반화학을 배우고 있을까? 지난 학기를 살펴보면 화학 이론수업 중 1년 과정의 화학1이 12개, 단학기 과정인 화학이 4개의 강좌가 개설되었다. 각 강좌 별로 100명 안팎으로 수강하여 화학 1은 947명이 화학은 466명이 수강하였다. 이 중, 1,286명이 실험 수업도 참여하였다. 지난 5년간의 통계를 볼 때 매 학기 1,500명 내외의 학생들이 화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1,000여명이 학생이 실험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매해 신입이 3000명 정도인 것을 감안할 때 일반화학은 기초과학의 중요한 소양을 쌓을 수 있는 비중 있는 과목으로 인정받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 화학 이론 교육은 화학의 방식으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가는 과정이다. 지난 2~300년에 걸쳐 정립된 중요한 화학적 발견들을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분자를 구성하는 힘과 그 원천, 그리고 분자들에게 일어나는 화학 반응이 평행에 도달해 가는 일련의 과정을 가르친다. 상당 부분의 일반화학 교과 내용은 중고등학교에서 이미 다룬 것들의 심화 과정이지만, 단순한 학문적 지식을 수용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학적 방법론으로 무장한 Sceptical Chymist가 되도록 의식화 교육을 한다. 다시 말해, 책 혹은 인터넷에서 대하는 내용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과연 그런가?" "그 이유는?" 등의 질문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게 만들고자 한다. 화학의 문제들을 풀기 위한 가설을 세우고, 적절한 실험적 검증을 동원해 제안한 가설의 타당성 여부를 스스로 판단하고 발전시키는 훈련을 통해, 자연과 과학적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막연한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구성 요소들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미루어 살피고, 통찰하는 사고의 과정을 겪는 바탕이 된다. 그리고는 미래에 대한 궁금증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자연과 소통하는 법을 화학이라는 언어를 통해 배운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혜안을 얻게 된다.

일반 화학 실험에서는 보물 찾기처럼 자연 속의 비밀을 찾아 이것 저것을 시도하는 다양한 실험과 연습이 진행되며 학생들은 놀이를 하듯이 문제를 해결해 간다. 바륨의 원자량, 이산화탄소의 분자량 등을 통해서 원자의 개념을 확인하고, 수소와 같은 우주의 기본적인 물질의 물성을 확인하고 관찰하는 실험을 수행한다. 또 비타민C와 같은 물질을 정량하거나, 천연물에서 아름다운 색소를 추출하여 실제 염색도 해보고, 감자 속에 숨어있는 효소를 추출하여 생화학의 분해 반응을 유도해 보면서 지속적으로 분자와의 대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실생활과 관련된 여러 가지를 접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다나카가 노벨상을 받아 주목을 받았던 MALDI-TOF 기법을 이용한 실험, HPLC 등의 자연의 혼합물을 분리하여 정제하는 분석화학적 기법, 유기화학, 무기화학, 물리화학까지 포괄적으로 응용하는 방법도 경험해 본다. 특히, 컴퓨터를 이용하여 분자들의 상호작용을 정량적으로 계산하여 화학 현상들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전산화학도 실습하고 있다. 학부 일반화학실험 수강생 전원에게 전산화학을 교육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전례를 찾기 힘든 첨단 교육이다.

Science 와 Future (과학과 미래)

그 어떤 학문보다 현대 사회의 중요한 패러다임으로써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학문은 과학이다. 우리는 과학의 비약적 발전을 기반으로 상상도 하지 못한 전인미답의 세계까지 뻗어 나가고 있으며 그 중심에서 화학이 크게 기여하고 있다. 원자들의 다양한 형태의 결합으로 무한한 세계를 창조하며, 가장 현실성 없어 보이는 일을 가장 현실성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화학이다. 21세기 젊은 지성들이 화학이라는 역사와 문화 창조의 원동력으로 인류 미래를 위하여 힘써 가꿔나가기를 기대한다.

기초교육원 웹진 <열린지성> 29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