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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야기

물질의 본성에 관한 철학과 종교 그리고 과학

2010.11.22.

물질의 본성에 관한 철학과 종교 그리고 과학
글: 소광섭 교수 (물리천문학부)


"현대 물리학은 우리의 소박한 생각들이 틀렸다는 것은 가르쳐 주지만 궁극적 답을 주지는 않는다.
물질의 진리를 찾는 것은 실험에 바탕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물질이 근본적으로 무엇이냐 하는 것은 아주 옛날부터 철학자들의 주 관심사였는데, 불교 등 종교에서도 큰 논쟁의 주제가 되기도 했으며, 현대 사회에서는 과학 특히 물리학의 주 연구대상이 되었다. 물질의 본성을 알기 위하여 쪼개어 보면 그 구성의 기본요소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여 철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쪼개는 방법과 결과에 대한 논의가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었다. 이러한 방향에서 “물질은 한없이 쪼갤 수 있는가? 아니면 어떤 크기에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것인가?” 라는 문제가 철학, 종교, 과학 분야의 중요한 논쟁거리가 되곤 하였다. 즉, “물질은 연속적인가, 원자적인가?” 라는 질문이다.

현대의 교양인이라면 당연히 물질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더 이상 쪼갤 수 없으며, 이 문제는 과학에 의해 완전히 해결되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스의 철학자들의 논의부터 시작해서 2천 년도 넘는 세월 동안 해결을 못 보았었는데, 달턴 (Dalton, 1766-1844)이 비로소 과학적인 원자가설을 만들고, 20세기 초에 아인슈타인의 확산이론에 근거하여 원자의 수를 셀 수 있게 되어 원자의 존재가 확립되었다. 그러므로 물질은 연속적인 것이 아니고 불연속적 원자로 되었다는 것이 확립되는데 아주 오랜 세월이 걸린 셈이다.

그러나, 원자의 연구가 본격화 된지 채 100년도 안되어 물리학은 엄청난 발전을 이룬 결과 “물질을 쪼갤수 있다 또는 쪼갤 수 없다” 라는 단순 명쾌해 보이는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물질관에 이르렀으며, “물질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단위가 있다”는 말이 그렇게단순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물질을 쪼갠다는 것과 같은 문장이 전혀 성립하지 않는 훨씬 묘한 세계임이 밝혀졌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한 답은 매우 복잡한 것이므로, 먼저 “물질은 쪼갠다”에 관한 과거의 철학적, 종교적 논의를 먼저 훑어보고 그에 대한 반성을 해보도록 하자.

물질의 무한 분할 가능성 여부를 형이상학적 주제로 심도있게 논의한 사람으로 칸트를 빼놓을 수 없겠다. 그는「순수 이성비판」에서 ‘이율배반’의 두 번째로 다음과 같은 상호 모순되는 두 진술을 든다.

정립 (These): 세계 내의 합성된 실체는 그 어느 것이나 단순한 부분들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단순한 것이거나 단순한 것에서 합성된 것만이 실재한다.
반정립 (Antithese): 세계 안의 그 어떤 합성물도 단순한 부분들로 되어있지 않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세계에서 단순한 것은 실재하지 않는다.

쉽게 해설하면 정립은 ‘모든 화합물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이고 반정립은 ‘원자같은것은 없다’로 풀어쓸 수 있겠다. 그의 논의의 결론은 이 두 진술이 논리적으로 상호 모순 되지만 둘 중의 어느 하나가 진실이고 다른 하나는 거짓으로 결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둘 다 사실과는 거리가 먼 언어적유희에 불과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 이유는 이 진술들은 인간의 경험 (실험적 과학)의 테두리를 벗어나 인간 멋대로의 상상의 세계를 헤매고 있는 때문이란 것이다. 현대 물리학은 칸트의 이 결론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원자의 발견으로 정립(these)의 판정승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물질을 쪼갠다”는 것이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 그런 것이 아니며, 원자보다 더 작은 소립자 세계에서는 “쪼갠다”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립자가 아주 작은 물질조각이라는 생각도 맞지 않는다. 물질의 본성은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있는 극미의 알갱이가 아닌, 상상하기 어려운 어떤 것이다. 2천 5백여년 전, 인도에서도 여러 학파의 사상가들이 물질의 본성 등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하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그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4가지 중 하나를 고르는 형태로 문제를 형식화시켰다. 물질의 ① 무한분할성 (연속성) ② 유한분할성 (원자성) ③ 연속이며 유한분할 ④ 연속도 아니고 유한분할도 아니다.

이러한 4가지 중 어느 것이 정답인가하고 부처님께도 물었는데, 부처님은‘침묵’으로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런 식의 논의로는 사실을 알 수도 없고사실과 전혀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며, 진리에 바탕한 수행에도 이르지 못한 때문이라 했다. 고전불교를 혁신하여대승불교를 일으킨 용수보살의 명저「중론 (中獠)」에서는 이러한 4지 선택형 논의가 공 (空) 사상에 위배되는 언어적 유희에 불과함을 설파하고 있다. 이런 방식의 논의는 헛된 망상이며 자연의 실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현대 물리학은 중론의 주장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과학은 원자론이 성립된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물질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단위(원자가 있다는 소박한 생각을 지지해 준 것 처럼 보였다 예를 들어 금을 계속 쪼개면 금가루가 되고 결국은 금원자가 되어 더 이상 나눌 수 없게 되듯이 모든 물질이 최종적으로 원자까지만 나눌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1세기 초의 현대물리학은 이러한 소박한 물질관을 멀리 떠나 일상의 언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보여주게 되었다. 그 시작은 상대성 이론에서 물질이 곧 에너지라는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공식 (E=mc2)에서 출발한다. 다음으로는 양자역학이 나와서 물질이 알갱이 (입자)인지 파동 (연속체)인지 구분할 수 없는 이중성에 이르렀고, 양자역학적 물질관은 아직도 각종 해석이 분분하다. 그리고 끝으로 상대론과 양자역학이 결합되면 물질은 장 (Field)을 형성하므로 물질의 개체 알갱이란 것이 본질이 아니게 된다. 그리고, 어느 소립자를 그 속을 알아내려고 쪼개려 시도하면 속에 있는 더 작은 구성요소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 많은 다른 소립자들이 생성될 뿐 속에 있는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쯤 되면 물질을 구성하는 요소란 개념은 성립조차 하지 않는다. 결국 칸트나 용수보살의 언명처럼, 물질을 계속 쪼갤 수 있느니 없느니 하고 갑론을박하는 것은 동네 꼬마들이 “계속 앞으로 가면 끝없이 갈 수 있다”, “아니다. 끝이 있어서 절벽으로 떨어진다” 라고 입씨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논리나 상상의 논의로는 해결할 수 없고, 실험에 바탕한 과학적 연구가 물질의 진리를 찾는 정도이다. 물질의 본성, 그것은 여전히 신비에 가려져있다. 현대 물리학은 우리의 소박한 생각들이 어떻게 틀렸는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지만, 궁극적 답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 

<자연대이야기> 9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