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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술(仁術)의 삶 30년 - 김인권 애양재활원장

2010.11.23.

애양원에서 살며 생각하며, 김인권 여수 애양재활병원장

의사로서 봉사의 삶을 살아온 남다른 이력 탓인지 다양한 곳에서 수많은 강연을 요청받았고 강단에 섰다. 특강의 주제들은 대부분 병원 관련 내용이나 존경하는 선교사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제 耳順에 가까워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대학교 올해 마지막 ‘관악초청강연’의 주인공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센병 환자의 치료에 일생을 헌신한 김인권 원장(59)이었다. 한평생 외길 인생을 살아오고 있는 그는 하루 평균 500여명의 환자들이 다녀가고 있고 현재도 88명의 한센병 환자들이 무료로 입원 중인 여수 애양재활병원 원장이다.

30년 동안 변치 않고 한센병 환자들 곁에서 그들을 지킬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은 의사로서 보람이었다. 의사로서 많은 재량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환자의 사정이 딱해 돈이 없다면 경우에 따라 무료치료도 가능했고, 개인 사정에 맞춰 치료비 감면도 소신껏 할 수 있었다.

김 원장은 서울대 의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1980년부터 한센병 환자들의 보금자리인 전남 고흥 소록도에서 공중보건의로 군 생활을 하면서부터 한센병 환자와 인연을 맺었다. 1983년 5월 국내 최초의 한센병 치료기관인 애양병원 정형외과 과장으로 부임해 1995년부터 원장직을 맡아오고 있다. 당시 김 원장은 모교인 서울의대 교수직까지 물리쳤다.

김 원장은 지금 자신의 자녀들보다 어렸던 시절, 그들이 만들어 가고 있는 사회가 좋았고 신정식 원장, 병원 사람들, 환자들이 좋아서 그들과 같이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1974년부터 12년간 국립소록도병원장을 맡으며 환자들에게 ‘소록도의 슈바이처’로 불린 신정식 박사(1994년 타계)는 김 원장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분이다. 신정식 박사는 돌아가신 지금까지도 김원장의 삶과 가치관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절대적인 분이다.

“신 원장님이 제일 기억에 남는 분이에요.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저의 평생멘토이지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신 원장님이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예전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고압적이고 뻣뻣한 태도로 대했어요. 하지만 신원장님은 그 예전 관료적이었던 시기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의 고충을 잘 들어주려고 노력하고 친절한 설명도 잊지 않았습니다.”

의사 8명에 98병상의 그리 크지 않은 규모로 여수 시내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애양병원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탄데는 김 원장의 의술 못지않게 환자와 동료 직원에 대한 넉넉한 웃음과 한없는 배려 덕분이다.

매달 250여건의 수술을 소화하고 있는 가운데에도 김 원장은 수시로 중국 연변과 베트남을 찾는다. 중국 연변에서는 8년 넘게 고관절환자들에게 무료 수술을 하고 있으며, 2003년부터는 베트남에서도 의료봉사를 베풀고 있다.

김 원장도 사람인지라 힘들 때는 지금 생활을 청산하고도 싶었을 터. “갈 수 없으니 못 갔어요. 물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요. 모든 환자들과 병원 사람들이 자기 얼굴만 보고 있는데 어떻게 가겠어요, 여길 떠나는 것은 집에서 아버지가 아버지이길 포기하는 것과 똑같아요.”

이런 그에게도 노력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말 못할 고민이 있다. 자신의 뒤를 이어 한센병 환자와 같이 살면서 가족처럼 대해 줄 수 있는 애양재활병원장을 아직 점찍어 놓지 못한 것이다.

“인공관절 수술법을 배우러 많은 젊은 의사들이 애양재활병원으로 내려와요. 괜찮은 재목감에게는 넌지시 제안도 해보지만 2년 정도 있다보면 주위의 만류로 도시로 돌아갑니다. 제가 할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고 뒷일은 마음을 비우고 기다려 볼 생각입니다. 어떻게 되겠지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고집을 부려서라도 하라”고 조언하면서도 그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당장 눈앞에 놓여 있는 이익보다, 보다 멀리 바라볼 수 있다면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耳順을 바라보는 김인권 원장, 그의 삶이 아름다운 이유다.

2010. 11. 23
서울대학교 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