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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기(外道記) - 김남두 교수

2010.11.25.

외도기(外道記)
"만대루에 오를 때면 가지는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탄성과 함께 주어지는 그 느낌을 가능케 하는 그 공간경험의 정체는 무엇일까?"

글: 김남두 교수 (철학과)

처음 병산서원에 다녀와서 몇 자 적어 두었던 파일을 다시 찾지 못했다. 약 15년 전, 90년대 중반 처음 그곳엘 갔다. 섣달 칼칼한 겨울바람을 맞으며 찾아갔던 날 나지막한 언덕에 단정하던 병산서원. 만대루 마루에 올라 굽이진 낙동강을 따라 낮게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산을 바라다 봤을 때 가졌던 느낌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 감흥을 서울로 돌아와 한 두 문단 적기 시작하다 덮어 두었던 기억이 있다. 만대루에 올라 나지막한 탄성을 토해낸 것은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 이다. 만대루에 오를 때면 가지는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탄성과 함께 주어지는 그 느낌을 가능케 하는 그 공간경험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런 물음을 가져온지 이제 그럭저럭 15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가끔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에 맴돌 뿐 일상의 일에 묻혀 생각에 큰 진전이 없었다.

지난 시대 선비였다면 아마도 몇 줄 시구 속에 그 감흥을 담아 자신의 느낌과 풍경을 후대에 남겼을지 모른다. 자신의 감흥을 글로 남겨두고자 하는 생각에는 좋은 연주를 듣고서 앙코르를 외치는 사람들처럼 그 감흥을 반복하고 함께 나 누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혹은 그 무상(無償)의 아름다움에 대해 느끼는 고마움을 어떤 방식으로 조금이나마 되돌려 줄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에 깔려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간결한 절구(絶句) 속에 자신의 감흥을 객관화하고 감흥의 대상을 영속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나 교육의 혜택은 오늘에도 소수에게나 주어지는 특전이다. 자료들을 찾아볼 기회가 없이 가끔 생각 날 때면 혼자 궁리해 왔던 것은 그 공간 경험의 구조를 어떤 방식으로 개념화 해 볼 수 없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어떤 공간이 그 같은 경험을 가능하 게 하고, 그 공간은 어떤 구조를 가지는 것이며, 이 구조는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만대루에서의 경험이 단지 밖으로 보이는 낙동강 굽이를 따라 펼쳐진 병산의 수려한 경관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은 실제 병산서원 밖 모래밭에서 병산 절벽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바로 수긍하게 된다. 낙동강이 휘감아 도는 바위 절벽의 경관은 절경이 틀림없으나 만대루에서 바라볼 때의 그 감흥을 자아내 지는 않는다. 만대루의 공간경험에는 만대루만이 가능하게 하는 어떤 것이 있으며, 그 감흥이 만대루에서 오는 것이라면 만대루 공간의 어떤 점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오래 묻어두었던 생각이 근래 조금씩 구체화 되어가기 시작한 것은 재작년 건 축학을 하는 서 박사를 인문학연구원의 연구팀에서 만나면서부터이다. 서 박사 와는 이즈음 가끔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또는 메일을 주고받기도 한다. 나는 주로 이것저것 물음을 던지는 편이고 서 박사가 해박한 지식으로 대 답과 함께 이런저런 참고자료들을 알려 준다. 그와 대화를 나누며 나의 외도(外道)가 짝사랑 속앓이를 넘어 조금씩 길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누정(樓亭) 공간의 기본구조를 분석하고, 조선 시대 서원건축의 역사에 관한 글들을 읽어 가며, 이즈음은 만대루와 같은 누정이 왜 서원 내부에 지어지게 되었을까 하는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 첫 서원인 소수서원(1543)에서는 서원 외부에 있던 경렴정(景濂亭)이 옥산서원(1573)의 무변루(無邊樓)에 와서는 서원의 내부로 들어가게 된다. 만대루도 이런 경우에 속하며, 서원 내에 혹은 문루(門樓)를 겸하며 누정 을 두는 방식이 영남지방 서원들의 전형적 구조가 된다. 이런 구조물 배치의 변 화에는 어떤 종류의 공간 구획 아이디어가 작용하며 그 아이디어는 어떤 점에서 유학적 성격을 가지는가?

이런저런 자료들을 읽으면서 만대루의 경이가 단지 물리적 공간의 구조와만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두께와 관련이 있다는 것, 만대루의 공간경험이 무색의 공간이 아닌 역사적 공간, 시간의 두께가 쌓인 공간이 주는 경험이라는 것 외도기(外道記)을 다시금 깊숙이 확인하게 된다. 돌아간 이를 기리고 제사지내며, 자라는 이들을 교육한다는 두 기능을 수행했던 서원공간은 4면이 담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에서 일단은 폐쇄적인 공간이다. 그리고 내부와 외부를 나누는 이 담은 물론 단순히 물리적인 경계만은 아니다. 담의 안과 밖을 나누고 밖을 안으로부터 차 단하는 이 공간에서 만대루와 같은 건축물은 바로 그 높이를 통해 외부를 차단 하는 담장을 넘어선다. 담장 안에서 담장을 넘어서며, 차단된 내부에 있으면서 외부와 교통하는 건축물. 지붕과 바닥을 제외하고는 사방으로 열려있음을 통해 외부를 내부로 끌어들이는 공간. 만대루의 경험은 이렇게 내부를 외부와 차단하 려는 경계를 경계 내에서 넘어서는 경험이요, 그런 뜻에서 특별한 안에 있음의 경험, 안에서 밖을 가지는 경험이라 부를 수 있으리라.

안에 있음을 인간 존재의 근원적 존재조건이라 말했던 어는 현대철학자의 통찰을 이끌어 들이지 않더라도, 인간이 나누는 공간 구획이란 대체로 안과 밖을 나누는 작업이며 이를 통해 안전하고 친밀한 내부를 확보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유학적 내부 만들기의 공간 구성을 생각하면서 순수하게 공간 구조의 측면에서 만대루의 경험에 접근하던 시기의 경이감에 조금은 거리를 두게 되었지만, 담장을 넘어서는 안과 밖의 교차공간을 일곱 칸 기름한 마루 구조로 만들고 난간에 기대 앉아 흐르는 강과 취병(翠屛)을 노래하는 공간을 만들어 냈던 선인들의 그 걸출한 공간디자인은 시대를 넘어 오늘에도 변함없이 경이의 마음 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조각시간을 내어 자료들을 찾아 읽어가면서 시작된 나의 외도는 15년 품어온 짝사랑에 아직 어눌한 사랑고백도 하지 못한 상태다. 외도의 은밀한 즐거움은 긴장과 달콤함을 주지만 조강지처의 닦달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그 외도가 내게 알려준 것은 바로 안과 밖을 절벽처럼 나눌 일은 아니며, 오직 사자(死者)만이 사방팔방이 막힌 공간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인 것을.

김남두 교수는 본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플라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모교 철학과에 재직하며 서 양고대철학 연구의 토대를 쌓는 데 매진해 왔다. 우리나라 인문학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확대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현재 본교의 인문학연구원 원장으로서 HK(인문학국)문명연구사업단을 이끌고 있다. 『현대의 학문 체계』(공저), 『서양 고대 철학의 세계』(공저),『대학 개혁의 과제와 방향』(공저) 등 저서와 많은 논문이 있다.

<인문대 소식> 14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