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안내

서울대 소식

뉴스

뉴스

교수칼럼

선생 X은 개도 안 먹는다

2010.11.25.

선생 X은 개도 안 먹는다
"선생들 속은 지금도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는 항변을 하려고 하는 거다"
 
글: 윤원철 교수 (종교학과)

이제는 이 속담 이 우리 일상생활의 감각에 별로 확 와 닿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우선은, 요즘 우리가 주위 에서 보는 개들은 워낙 X을 안 먹기 때문이다. 요즘도 시골 마을에는 여전히 그 물건에 입맛을 다시며 돌아 다니는 견공들이 있다지만, 이들은 특정 부류의 애견가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탓에 수명이 짧아 개체수 가 많지 않다, 거 뭐 직접 조사해보고 하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값이 비등하는 걸 보면 그들이 얼마나 희소한지 간접적으로나마 절실하게 느낄 수 있지 않느냐 말이다.

아무튼, 당장에 우리 집 강아지, 주먹만 해서 먹을 것도 없는 덕분에 장수를 누리고 있는 이놈만 해도 그렇다. “엄마”가 대형마트 선반에 현란한 포장으로 쭉 늘어선 온갖 “밥” 중에서 신중하게 골라온 것만 먹인다. 우선 브랜드를 고려하고, 노안이 와서 가물가물한 시력으로 재료와 영양 구성표를 찬찬히 읽어보고, 역시 노화 때문에 활동세포가 급격히 줄어들어버린 그 머리를 억지로 굴려서 용량 대비 가격을 계산해서 비교하고, 그렇게 힘들여 정성껏 골라 오는 것이다. 그리고는 입가심으로 과일도 조금 먹인다.

어쨌든 간에 이 글 제목의 속담이 말하는 그 뜻만은 지금도 오롯이 진실이라는 얘기를 하려는 참이었는데 우리 집에서 나보다 서열이 높다는 그 녀석에 대한 억하심정 때문인지 긴요치 않은 이야기가 좀 길어지고 말았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그 속담이 요즘엔 사람들 가슴에 별로 와 닿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선생”들이 그다지 속 태우며 사는 모습이 아니고 그저 안정된 직장을 확보하고 영예와 기득권을 즐기는 모습으로 인상이 변했기 때문인데, 하지만 선생들 속은 지금도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는 항변을 하려고 하는 거다. 정색을 하고 항변하면 분위기가 썰렁할 테니 간접 적인 증거를 가지고 얘기해보겠다.

학생담당부학장으로 일할 때에 <난타> 기획으로 유명한 탤런트 송 아무개를 초청해서 강연회를 가졌다. 공연기획이라든가 그 비슷한 쪽에 뜻이 있는 학생들에게 그 동네에서 활약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지 좋은 말씀을 해달라고 청하였다.

그는 주름살 하나 없이 해사한 얼굴 에 노랗게 염색한 머리를 하고, 왼 쪽 반은 빨간색, 오른쪽 반은 파란 색인 오리털 파카를 입고, 셔츠는 바지 밖으로 내놓은 활달한 차림으로 나타났다.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강사 소개 순서가 있었다. 그날따라 감색 싱글 정장에 조끼까지 받쳐입어 선생 티 팍팍 나는 허연 머리의 내가 나섰다. 이러쿵저러쿵 그의 이력을 대충 소개를 한 다음에, 그와 나의 사적인 관계를 덤으로 소개하 였다 -"여러분이 믿거나 말거나, 얘랑 나랑 고등학교 동기동창입니다.” 시각적으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그 고백에 청중은 충격과 웃음으로 뒤집어지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재작년인가, 관악초청강좌에는 토론방송 사회자로 유명한 손 아무개 아나운서가 초빙되어 강연을 했다. 강연이 끝나고 청중으로부터 나온 첫 질문이, “미모를 유지하시는 비결이 뭡니까?”였다. 그는 “비결”에 대해서는 얼버무린 채, 토론방송을 제작 진행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언급하고 그 때문에 자기도 머리에 흰색이 많이 비치게 되었다면서 겸손하게 답변을 하였다. 그러자 강좌 운영위원장께서 나를 지목하면서 뭔가 할 말이 있을 거라고 일으켜 세우셨다. 손 아나운서와 나와의 개인적인 관계를 알고 계셨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일어나 그가 고등학교 때는 더욱 수려한 미모를 갖추고 있었음을 증언하고, 그 점을 내가 알고 있는 이유인 동기동창 관계를 밝혀야 했다. 그곳의 청중도 충격과 웃음으로 뒤집어지는 바람에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못하고 말았는데, 이 지면을 빌어서 털어놓으련다. - “손아무개야, 방송 제작·진행 힘들어서 머리에 새치가 나기 시작 했다고? 그런데 이제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지 몇 달 되었다면서? 겪어 봐라. 몇 년 안 지나서 나처럼 파삭 늙을 거다. 왜냐고? 방송은 그 시간 끝나면 죽이 되었건 밥이 되었건 아무튼 그걸로 끝이라며? 하지만 선생 노릇하는 거, 그건 수 십 년 동안 끝없이, 아니, 내가 가르친 애들이 살며 활동하는 내내니까 죽을 때까지, 마음 조리는 거야. 혹시라도 내가 가르친 애가 남에게, 나라에, 세상에 나쁜 짓거리 저지르는 일이 벌어지면 그거 내 탓이기도 하잖아. 파삭 안 늙을 수 있겠어?” 연예계에 남아있는 송아무개는 그렇다 치고, 손아무개 교수 요즘 한참 못 봤는데, 그새 얼마나 늙었는지 궁금하다.

<인문대 소식> 8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