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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치의 종교 - 전영애 교수

2010.11.25.

천치의 종교
"형편의 여의치 못했고, 지금도 세상사에 서툴다.. 그러나, 학문, 이 천치의 종교"

글: 전영애 교수 (독어독문학과)

“히 -히-공부해야지….”

그런 일도 있었다. 작은방 한 칸의 뮌헨 숙소, 욕실로부터 책상까지의 서너 걸음을 딛는 동안 저도 모르게 입에서 그런 어처구니없는 혼잣말이 흘러 나왔다. 얼마나 한심하던지. 손에 든 책을 놓지 못해서 화장실을 못 가고 있다 가 읽을 책장이 몇 장 안 남자 문득, 다 읽어버리는 것이 아까운 생각이 들었고, 그제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잽싸게 화장실을 다녀오던 참이었다. 도대체 내 나이가 몇이던가.

그런 천치 같은, 쉰여덟 아낙의 손에서 아주 잠깐 놓여났던 작은 책은 이제야 손에 잡힌 푸코의 「담론의 질서」였다. 그의 전형적인 지식론, 담론론이 무르익은 데다 어눌을 가장한듯한 재치와 인간적 매력까지 더해진 강연문인 터라 매료되었던 것 같다. l'ordre가 보다 '질서'이겠는가, 보다 '명령'이겠는가를 저울질해 가는 재미도 만만치 않았었다.

글의 힘 - 아직도 때로는 세상을 움직이기도 하는 글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 는가는 지난 몇 년간 골똘히 생각해 온 주제이기도 하다. 어떻게 그런 글들은 씌어지는 걸까. 제대로 공부를 했더라면 이제쯤은 가끔은 어쩌면 그런 글을 스스로 쓸 수도 있어야 할 때이건만, 이제야 가까스로 그런 글들을 찾아 읽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형편 여의치 못해서, 거의 혼자 쭈그리고 앉아 책을 읽으며 살아오다 보니 늘 배움에 목말랐다. 목이 말랐을 뿐, 때맞추어 수련을 받은 학자의 틀을 결코 갖추지 못했다. 읽을 수 있는 책조차 변변히 없었던 시절에는 읽는 책이 귀해서 일일이 우리말로 옮겨가며 읽었다. 컴퓨터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는, 번역문을 글 되게 만드느라 타자기로 책 전체를 너댓 번 씩 친 다음 서랍에 넣었었다. 그런 원고들이 아주 나중에 가끔씩 번역서가 되어 나오기도 했다. 나의 번역은 대부분 그런 막막한 읽기의 부산물이고, 근년에야 처음으로 두 세 권 “부탁을 받아서”, 그러니까 책이 된다는 전제하에서 이루어졌다.

읽기는 쓰기와 맞닿아 있는 것이어서, 편중된 읽기는 수상쩍다. 억제된 쓰기의 이면일 수 있다. 그 수상쩍음의 접점에서 장구한 세월 곡예를 해 온 것 같다. 천성이 수줍어 글쓰기라는 “표현” 예술에 매진할 용기가 없었다. 어리 석게도, 스무 살부터 서른아홉 살까지 글을 쓰지 않았다. 공부를 안전지대로 삼지 않았나 하는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서른아홉부터는 더 이상 글을 안 쓸 수는 없어 글을 쓰지만, 그 역시 굴곡이 많다. 그침 없이 쓰지만,장터에 낼 글을 쓸 힘은 아직도 없다. 읽어야 할 책, 공들여 가르쳐야 할 보석 같은 제 학생들 제쳐두고 남의 가게 기웃거리며 나다닐 염치도 없었다. 근년에는 글이 나의 의도와 무관하게 온통 남의 나라 말로 쓰이는 것은 남의 나라 에서 “문명을 떨친다”는 건 어차피 있을 수 없는 일인지라, 장터 생각 안하며 쓸 글을 쓸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이루어진 선택일 것이다. 무엇을 “얻을” 생각 이 무의식에조차 없는 채로, 써야 할 글을 쓰기까지는 참 오랜 세월이 걸렸 다. 허영심 없는 예술은, 적어도 나의 예에서는, 거의 불가능할 만큼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삶과의 괴리만 적나라하다.

예컨대 경제관념이 없다. 또한 돈을 쓸 기회도, 가끔 학생들 밥을 사 주는 것 외에는 별로 없다. 더 벌어들일 시간이야 더더욱 없다. 그럼에도 살아졌다. 그것도 남 보기에 썩 잘 살아졌다. 내 아이들은 저렇게 계산이 안 되는 사 람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하는데도 말이다. 계발하지 않는 능력은 위축되게 마련이라, 웃지못할 이야기가 한 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살아지는 것은 하늘의 덕이고, 내가 아직은 조금 쓸모가 있다는 하늘의 판단 일 터이니, 그 너그러운 하늘 편의 옳음을 살아있는 한 조금은 증명해야 한 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사에 서툴다. 많은 사람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세계가 넓혀지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다른 사람들과 보조도 점점 어긋났다. 학생들이야 스펀지 같아서 나의 별스러움도 부족함도 다 받아들이고 소화한다. 무엇보다 적절히 아 낄 줄을 몰라서 쏟아 붓는 사랑도 왜곡 없이 다 받아들인다. 그러나 굳어진 세상 사람들은 좀 다른 것 같았다. 특히 무엇을 얼마만큼 “얻기” 위하여 무엇 인가를 얼마만큼 “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그 비례로 세상을 재는 터라, 계산 없이 쏟아 넣는 일에는 이해가 없다. 저만큼 일을 하는 데는 무슨 무서운 속셈이 숨어 있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유추의 자를 들이대기도 했다. 그때마다 궁극적으로 부족한 나를 돌아보고, 경계를 제대로 긋고, 내 일에 전념하는 기회가 되어 오히려 감사했다.

간혹 그런 일이 있다 해도, 돌아보면 글을 배워 좋은 글들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인 것 같다. 글을 만나고, 글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또 같은 글을 읽은 사람들을 직접 만나게도 되고……. 얼마나 많은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는지, 그 사람들의 마음속이야말로 내 삶의 천상적 지분인 것 같다.

돌아보니 천치가, 세상에서 한 가지는 야무지게 해낸 일이 있다. 좋은 도서관들에 제자리를 만든 일이다. 뮌헨에도, 베를린에도, 바이마르에도, 케임 브리지에도, 잠시 들른 더블린에도 G자 어름쯤의 서가 - 근년에 Goethe에 몰두한 탓이다 - 가까운 창가, 한 그루쯤 나무가 가지를 드리운 곳에 내 자리가 있다. 아니, 세계는 내게 도서관 내 자리의 망(網)이다. 세상 어딘가에, 곳곳에, 나를 아끼는 사람들은 그리로 나를 찾아 올 만큼의 내 자리가 있다 는 건 얼마나 큰 부유함인지. 그런데 도서관에서야 어딜 가든지 그냥 앉아만 있으면 내 자리가 되니 쉬웠다. 달리 지상 어디에 그리 쉽게 한 자리가 생 기겠는가.

여러 해 전 언젠가 인문대학 내의 한 소식지에서 한편의 시를 소개해 달라 는 주문에 괴테의 노년의 시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제목도 없는 참 짧은 시 였다. “예술과 학문을 지닌 자/ 종교도 가진 것이다.// 그 둘을 소유하지 못 한 자/ 종교를 가져라.” 전문이다. 노년의 지혜가 배인 대시인의 과감한 단언을 내가 흉내 낼 수야 없지만, 그래도 그 틀에 따라, 예술 혹은 학문이 내게 무엇이겠는가를 이제 생각해 보면, 그리 높이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 만, 이렇게 정리될 것 같다.

학문 -이 천치의 종교. 이제, 그 밖의 모든 것을 거의 다 버린 이제야, 읽기와 쓰기가 내게서 시작되려는 것 같다.

<인문대 소식> 12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