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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은 시작됩니다

우리의 여정은 끝나지 않는 길과 같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한대도, 그곳은 종착지가 아닌 또 다른 시작점이니까요. 나라가 위기를 맞이했을 때도, 시대의 아픔을 마주했을 때도, 우리는 참된 지성으로 인류를 위한 탐구와 배움을 지속합니다. 전공의 벽과 보이지 않는 경계를 허물고 모든 학문을 자유롭게 탐구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세상을 연결하여 무한한 상상을 펼치고, 다양한 생각을 나누며 내일의 변화를 이끌어갑니다. 유수의 단과대학이 모인 종합대학의 토양 위에서 건강과 생명을 탐구하고, 환경과 인류의 조화를 연구하여, 내일의 세대가 살아갈 희망을 키우고, 오늘의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합니다. 발상의 전환으로부터 자유로운 융합의 가치를 만들고, 유연한 사고로부터 새로운 영감과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누구도 풀지 못했던 난제를 해결하고, 그 성과를 다시 사회와 일상에 유용한 가치로 만들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이끌고, 인류의 삶을 더욱 다채롭게 확장합니다. 우리의 배움을 세상과 나눔으로써 인재가 인재를 키우는 선순환을 실천하고, 나아가 국가와 세계, 다음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일상을 만들어갑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일에 앞장서고 오늘의 기준을 세워온 사람들로부터, 모두의 내일을 위한 새로움은 시작됩니다.

인터뷰영상

산업을 세우다 Advancing Industry

(영상 시작) 세계사적 소명을 실천하는 창의적 지식 공동체 소명#1 산업을 세우다 이현순(전 현대자동차 부회장(기계공학과 69학번),최초의 국산 자동차엔진 ‘알파’ 개발) 60년대, 70년대에 서울대생들은 과학 기술을 발전시켜서 우리나라를 빨리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야 되겠다는 그런 사명감이 굉장히 많았어요. 김호동(서울대학교 석좌교수(인문대학 동양사학과), 중앙유라시아 역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서울대학교 학생들과 교수들 모두 그 당시에는 자기들이 젊은이들 중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지성이라는 자부심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서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되지 않느냐?’ 그것이 결국은 서울대학교를 밀고 나간 힘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자부심도 있었지만 책임감, 사명감 같은 것이 굉장히 많았던 시기라고 생각을 합니다. 윤종용(전 삼성전자 부회장(전자공학과 62학번), 한국 반도체산업 발전의 주역) 내가 서울대학교에 다닐 때 지옥, 생지옥.. 그것 따라가려고 밤잠 못 자고.. 자동차 산업과 전자산업하고 그 다음에 조선, 철강, 화학.. 그때 우리나라 80년대, 90년대, 지금까지 산업발전은 서울공대 나온 사람들이 주축이에요. 서울대학교는 각 분야의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여 대한민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을 선두에서 이끌어 왔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화려한 성공 뒤에는 항상 서울대학교가 있었습니다. (영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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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을 세우다

Advancing Industry (영상 시작) 세계사적 소명을 실천하는 창의적 지식 공동체 소명#1 산업을 세우다 이현순(전 현대자동차 부회장(기계공학과 69학번),최초의 국산 자동차엔진 ‘알파’ 개발) 60년대, 70년대에 서울대생들은 과학 기술을 발전시켜서 우리나라를 빨리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야 되겠다는 그런 사명감이 굉장히 많았어요. 김호동(서울대학교 석좌교수(인문대학 동양사학과), 중앙유라시아 역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서울대학교 학생들과 교수들 모두 그 당시에는 자기들이 젊은이들 중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지성이라는 자부심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서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되지 않느냐?’ 그것이 결국은 서울대학교를 밀고 나간 힘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자부심도 있었지만 책임감, 사명감 같은 것이 굉장히 많았던 시기라고 생각을 합니다. 윤종용(전 삼성전자 부회장(전자공학과 62학번), 한국 반도체산업 발전의 주역) 내가 서울대학교에 다닐 때 지옥, 생지옥.. 그것 따라가려고 밤잠 못 자고.. 자동차 산업과 전자산업하고 그 다음에 조선, 철강, 화학.. 그때 우리나라 80년대, 90년대, 지금까지 산업발전은 서울공대 나온 사람들이 주축이에요. 서울대학교는 각 분야의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여 대한민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을 선두에서 이끌어 왔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화려한 성공 뒤에는 항상 서울대학교가 있었습니다. (영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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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이루다

Leading the Way for Democracy (영상 시작) (서울대학교 정문) 세계사적 소명을 실천하는 창의적 지식 공동체 소명 #2 민주사회를 이루다 민주사회를 이루다 Leading the way for Democracy Milan Hejtmanek (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석사 84학번), 전 하버드 대학교 한국연구소 연구원) 1980년대 외국인 학생으로 이 곳에서 공부하던 시절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 시절 한국의 학생들은, 특히 서울대 학생들은 민주화를 위해 싸웠습니다. 김호동 (서울대학교 석좌교수(인문대학 동양사학과), 중앙 유라시아 역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나라가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겠느냐?’ 그래서 그런 방법들이 어떤 학생들은 정치적인 표현의 형태로 나오고 다양한 형태로 발휘되었던 것 같아요. 이현주 (언어학과 85학번, 故 박종철(언어학과 84학번)과 함께 민주화 운동 ‘박종철 선배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구나’, 느꼈던 기억이 나요.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회장이던 박종철은 공안당국에 붙잡혀 고문을 받다가 숨졌다) 학생들이 집회를 하면 87년에는 거의 2만명 가까운 학생들이 모였어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져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신명자 (故 제정구 의원 부인, 사회복지법인 복음자리 이사장) 제정구 선생님이 청계천 판자촌에 들어가 빈민운동을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故 제정구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1972년부터 서울 청계천 판자촌에서 도시빈민운동을 시작해 일생을 도시빈민의 생존권 보호와 자생적 성장을 위해 헌신하여 ‘빈민의 벗’, ‘빈민운동의 아버지’로 불렸다. 운동하던 학생들이 판자촌에 와서 야학교사를 하기 시작하고 그 야학운동이 다른 빈민지역으로 확대 됐고, (건축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군청에서도 몰라 사실 법이 없는 것을 바꾼거에요. 그렇게 함께 한 거죠. 판자촌 주민들이 자기 스스로 삶의 힘을 얻어내고 깨쳐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런 역할을 한거죠. 김호동 (서울대학교 석좌교수(인문대학 동양사학과), 중앙 유라시아 역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내가 무엇인가를 이 시대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인식이 오늘 이 사회가 그래도 이렇게 까지 발전되는 데, 동력과 자산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서울대학교 구성원들은 정의로운 사회 구현과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행동해 왔습니다. (영상 끝)
나의 길을 찾다 동영상 썸네일

나의 길을 찾다

Forging New Paths (영상 시작) (서울대학교 정문) 세계사적 소명을 실천하는 창의적 지식 공동체 소명 #3 나의 길을 찾다 나의 길을 찾다 Forging New Paths 김필립(하버드대학교 정교수(물리학과 86학번, 석사 90학번), 신소재 ‘그래핀’ 연구의 선구자) 사실은 저는 특별히 우수한 학생은 아니었고,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들도 많고, 또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하시는 분들도 있고 그 속에서 자기가 생각했던 길들을 계속 가기 위해서는 ‘내적인 자신감, 자존감’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을 자기가 스스로 쌓아나가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과 토의도 하고, 때로는 경쟁도 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자존감을 가져가는 것이 학문의 오랜 길을 가는데 결정적인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빛내리(서울대학교 석좌교수(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마이크로 RNA 생성 원리 세계 최초 규명) 제가 지금까지 학업과 연구를 하면서 그때 그때 저를 계속 끌고 올 수 있었던 힘은 제가 배우는 것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도서관에 갔을 때 서가와 책에 풍겨있는 곰팡이 냄새를 맡으면서 가슴이 두근두근했던 그 많은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그런 마음들, 그런 것들이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김인권(여수 애양병원 명예원장(의학과 69학번), 한센병, 소아마비, 장애환자들에게 평생 헌신) 내가 여태까지 살아온 길이 의사로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 아니에요. 내가 선택해서 이 길까지 온 것이고, 내가 이 병원에 와서 이 병원이 너무 좋고, 이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이 내 마음에 들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선택해서 가면은 좋지 않을 수도 있지만 좋지 않은 경우가 있더라도 좌절하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뒤쳐져도 자생력은 더 있어서 성공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근데 한 가지는 자기를 믿고 자기가 원하는 바를 한 번 해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인권 동문 얼굴) (김필립 동문교수 얼굴) (김빛내리 석좌교수 얼굴) 김인권(여수 애양병원 명예원장(의학과 69학번), 한센병, 소아마비, 장애환자들에게 평생 헌신) 제가 서울대 나와서 어느 사회에 가던지 항상 생각한 것은 김빛내리(서울대학교 석좌교수(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마이크로 RNA 생성 원리 세계 최초 규명) 사회로부터 혜택을 굉장히 많이 받잖아요. 김인권(여수 애양병원 명예원장(의학과 69학번), 한센병, 소아마비, 장애환자들에게 평생 헌신) 그니까 국민들 세금으로 혜택을 받고 다닌 거거든요. 경제적인 사회적인 빚을 가지고 서울대 졸업생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겁니다. 김빛내리(서울대학교 석좌교수(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마이크로 RNA 생성 원리 세계 최초 규명) 그 혜택을 받은 만큼은 적어도 김인권(여수 애양병원 명예원장(의학과 69학번), 한센병, 소아마비, 장애환자들에게 평생 헌신) 이익을 돌려줘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야 돼요. 그러면 훨씬 더 사회가 밝아질 것 같습니다. 김필립(하버드대학교 정교수(물리학과 86학번, 석사 90학번), 신소재 ‘그래핀’ 연구의 선구자) 이제는 서울대에서 받는 교육이, 서울대에서 하는 연구가 세상의 변방에서 하는 것들이 아니라, 새로운 것들을 추동해나가고 한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거에 대한 자부심을 갖자는 얘기고요. 다양한 생각, 다양한 학문들이 존재하고, 잘하고 그런 것들이 같이 어울려져서 더 크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들이 많다는 것이 제 생각에는 굉장히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버들골 풍산마당) (법과대학 정의의 종) (4.19 기념탑) (시간의 계단) (서울대학교 미술관) (서울대학교 평창캠퍼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서울대학교 문화관) (서울대학교 예술복합연구동)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12동) (서울대학교 법학도서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관정관) (서울대학교 쌍학)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전경) 창의적인 역량과 굳건한 의지로 무장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사적 소명을 실천하겠습니다. (영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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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만들어 가다

A Community of Creativity (영상 시작) (서울대학교 정문) 세계사적 소명을 실천하는 창의적 지식 공동체 소명 #4 함께 만들어 가다 A Community of Creativity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결과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니까 고유의 방법론만으로는 부족하고, 비 공학자들과의 어떠한 커뮤니케이션, 다른 지식 간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가 있고요. 주거니 받거니 하는 연구가 훨씬 더 재미있고 배울 것이 많은 것 같아요. 지금까지 만들어놓은 게 100이라면 제가 혼자 공부했었으면 아마 한 10, 15밖에 못 만들었을 거예요. 서울대학교가 종합대학으로서 여러 가지 분야가 같이 모여있는 창의적인 지식 공동체입니다. 함께 만들어 가다 A Community of Creativity 이지홍(사회과학대학 경제학부 교수, 게임이론 연구) 연구라는 것은 어떠한 커넥션이 있어요. 그런 과정들을 하나하나 밟아 나가다 보면, ‘아, 이 학문이 참 재미 있구나!’ 조영태(보건대학원 보건학과 교수, 인구학 연구) 인접 학문과 계속 접점이 생겨요. 학문의 폭과 깊이는 더 깊어지고 더 넓어져야 되거든요. 그러면 많은 다양한 연구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이우인(약학대학 제약학과 교수, 신약 개발 연구) 좀 더 창의적인 연구를 하려고 하면 다른 분야에서 다른 식의 접근 방법을 가졌던 사람들끼리 모여서 어려운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보자. 윤성로(공과대학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인공지능 연구) 빅데이터 분야는 태생적으로 융합적일 수 밖에 없어요. 예술 분야에서도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이용해서 기존에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하거든요. 박종화(음악대학 기악과 교수) 다른 지식 분야에서 하고 있는 연구들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주셔 가지고 같이 접목을 시키면 세계적으로 유니크한 무언가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허성욱(법학전문대학원 법학과 교수, 공법 연구) 다양한 학문 분야들이 서로 연계되어서 학제간의 접근과 고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진형(스탠포드대학교 공과대학,의과대학 교수(전기공학부 95학번), 뇌과학 연구) 기업에서 할 수 없는 먼 미래를 내다보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대학의 역할인데요.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김호영(공과대학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경계를 벗어난 사고방식, 경계를 벗어난 문제의식, 서울대학교가 새로운 학문이 어떤 식으로 나아가야 되는지에 대한 선도자의 역할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대학교는 미래를 선도하는 학문적 가치를 창출하고, 지식의 경계를 뛰어넘는 융복합 인재를 양성하는 창의적 지식 공동체입니다. (영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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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다, 성장하다, 나누다

Learning, Growing, Sharing (영상 시작) (서울대학교 정문) 세계사적 소명을 실천하는 창의적 지식 공동체 소명 #5 배우다 성장하다 나누다 배우다 성장하다 나누다 Learning Growing Sharing 학생들이나 교수님들이 서울대학교를 진짜 서울대학교답게 만드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나중에 서울대학교에 놀러오시게 된다면 시설들을 보는 것도 정말 재미있겠지만 다른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이나 교수님들이 연구하시는 모습, 그런 것들을 보고 조금 더 자극을 받고, 서울대학교의 기운을 느껴가셨으면 좋겠어요. 종합대학이고 여러 가지 공부를 경험해볼 수 있는 가장 최적인 환경이잖아요. 제가 여기 와서 수많은 국제 유학생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사람마다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다릅니다. 서울대학교 안에서 국내외 많은 프로그램들이 연결되어 있고 학술적인 교류 공간들이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공부하는 학생들이 교환 프로젝트를 통해 다른 나라로 가서 시야를 넓힐 수 있고 능력을 쌓을 수 있습니다. 저희가 SNU IN WORLD라고 해서 스페인에 가는 경우도 잇고 독일 베를린에 가는 경우도 있고 굉장히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요. 공부에만 멈췄을 수 있는 내용들을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그런 것들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줬던 것 같아서 너무 뜻깊었어요. 저희가 방학 때 참여할 수 있는 자원봉사프로그램들이 엄청 많은 것 같아요. 사람들을 돕는 쪽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도 SNU봉사단이라는 프로그램 때문에 저랑 잘 맞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됐거든요. 서울대에 갔기 때문에 제가 프로선수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무엇을 하든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운동이나 공부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여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곳이 서울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꼭 서울대학교에 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저 자신을 포함해서 신체적 또는 환경적 어려움으로 인해서, 말없이 좌절 당해야만했던 사람들이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변호사로 활동하고 싶습니다. 프로페셔널한 로봇 연구자, 다른 연구들도 다 해보고 싶어요. 또 다른 로봇 분야도 많으니까, 하는 분야마다 다 정점을 찍어보고 싶어요. 서울대학교는 지성이 꽃을 피우고 밖으로 지성의 힘이 뻗어나가 주변을 이롭게 하는 터전이자 공동체, ‘지성의 전당’입니다. (영상 끝)

스토리영상

공공리더십

(편지 화면) 존경하는 함마르 샐드 UN 사무총장님 헝가리 사람들이 자유를 위해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세계평화를 위해 일하는 유엔에서 그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 반기문이 UN에 보낸 탄원서 (반기문 사무총장 스피치) 여러분들은 국제사회의 공동 목표 실현을 위한 비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UN의 기본 이념을 실현하는데 있어 UN을 돕고, 또 함께 일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연방이나 미국 등 핵무기 보유국의 지도자들에게 모든 핵무기를 포기할 것을 촉구합니다. 스레브레니차에서 우리가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전 세계는 반드시 힘을 합쳐 다시는 유혈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자막) 소년은 유엔 사무총장이 되었습니다. UN 사무총장 반기문 자막: 스레브레니차 대학살 희생자 묘역 (반기문 사무총장 스피치) UN 국제공동체는 대학살을 막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슬픔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희생자들과 그 가족 여러분들께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카자흐스탄 세미팔라틴스크 방문 (2010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방문 (2012년 2월) 이라크 방문 (2007년 3월) 이스라엘의 이번 공격은 충격적인 만행입니다. 겨우 열두 살 소년이었던 저는 초등학교를 대표해 공적인 글을 낭독하도록 뽑혔습니다. 그 글은 다그 함마르셀드 당시 유엔사무총장께 드리는 글이었습니다. 그 글에서 저는 사무총장께 자유와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역만리 유럽의 어떤 나라 국민들을 도와주도록 요청했습니다. 이역만리 유럽의 어떤 나라 국민들을 도와주도록 요청했습니다. 저는 그 글의 심오한 의미를 거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필요할 때 유엔이 와서 도와준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진정으로 오늘날 청소년들이 유엔이 자신들의 보다 나은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자라기를 바랍니다. 저는 제 충심과 재능을 다 바쳐 여러분께 성실히 봉사할 것을 다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반기문 총장을 세계의 대통령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를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반기문 1970년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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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리더십

(편지 화면) 존경하는 함마르 샐드 UN 사무총장님 헝가리 사람들이 자유를 위해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세계평화를 위해 일하는 유엔에서 그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 반기문이 UN에 보낸 탄원서 (반기문 사무총장 스피치) 여러분들은 국제사회의 공동 목표 실현을 위한 비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UN의 기본 이념을 실현하는데 있어 UN을 돕고, 또 함께 일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연방이나 미국 등 핵무기 보유국의 지도자들에게 모든 핵무기를 포기할 것을 촉구합니다. 스레브레니차에서 우리가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전 세계는 반드시 힘을 합쳐 다시는 유혈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자막) 소년은 유엔 사무총장이 되었습니다. UN 사무총장 반기문 자막: 스레브레니차 대학살 희생자 묘역 (반기문 사무총장 스피치) UN 국제공동체는 대학살을 막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슬픔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희생자들과 그 가족 여러분들께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카자흐스탄 세미팔라틴스크 방문 (2010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방문 (2012년 2월) 이라크 방문 (2007년 3월) 이스라엘의 이번 공격은 충격적인 만행입니다. 겨우 열두 살 소년이었던 저는 초등학교를 대표해 공적인 글을 낭독하도록 뽑혔습니다. 그 글은 다그 함마르셀드 당시 유엔사무총장께 드리는 글이었습니다. 그 글에서 저는 사무총장께 자유와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역만리 유럽의 어떤 나라 국민들을 도와주도록 요청했습니다. 이역만리 유럽의 어떤 나라 국민들을 도와주도록 요청했습니다. 저는 그 글의 심오한 의미를 거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필요할 때 유엔이 와서 도와준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진정으로 오늘날 청소년들이 유엔이 자신들의 보다 나은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자라기를 바랍니다. 저는 제 충심과 재능을 다 바쳐 여러분께 성실히 봉사할 것을 다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반기문 총장을 세계의 대통령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를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반기문 1970년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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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열정

“야구는 혼자 되는 게 아니야. 같이 잘해 줘야 돼. 항상 ‘공을 내가 잘 던져야 되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상대편한테 대한 배려야. 그리고 남들 나오기 전에 일찍 나와서, 내가 외야수지만 내야 땅 갈아주는 거. 그런 플레이가 굉장히 많아. 투포수 간에도 있고. 외야가 내야한테 공 줄 때도 있고, 희생 번트도 있고... 도루할 수 있는 사람한테 초구 땅 때리며 안 되지. 그러니까 1, 2구는 참아주는 거. 우리 서울대 학생들이 공부는 다 잘하지만 내가 볼 때 그런 게 부족하다고 생각해. 아껴 쓰고 절약하면서도 공용 물건을 내 물건처럼 생각해 줘야 돼. 이런 게 하나하나가 모여서 그 전체가 야구지. 그냥 공만 던지는 게 야구가 아니야. 여러분들이 스스로 그런 전통을 만들어 줘야 돼. 알겠지? 그래, 오늘 수고 했다.” (자막:1승 1무 265패) 창단 36년, 서울대 야구부의 성적표입니다. 물론 자랑스러운 결과는 아니지만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승리를 목표로 최선을 다하지만 오직 승리를 위해서만 야구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다음 1승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우리의 대답은 “잘 모르겠습니다.”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1승이 아니니까요. 대학생인 우리에게 최우선 순위는 당연히 공부, 다음은 일상의 생활, 그리고 세 번째가 야구입니다. 서울대 야구부의 유니폼에는 번호만 있고 이름이 없습니다. 졸업한 선배가 물려준 유니폼을 고쳐 입기 때문입니다. 오래되고 낡아서 고쳐 써야 하는 장비들도 많습니다. (자막: 서울대 야구부 이광환 감독, 서울대학교 산하 베이스볼 아카데미 원장, 전 LG트윈스, 한화이글스, 우리히어로즈 감독) 누구보다 먼저 운동장에 나와 물을 뿌리고 돌을 고르시는 우리 감독님, 열악한 운동장에서 열심히 뛰는 아이들이 부상당하는 것이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하십니다. (자막: 2012년 충주성심학교와의 정기전: 청각장애학생들로 구성된 충주성심학교 야구부와 서울대학교 야구부의 친선경기) 이른 새벽 두 시간을 넘게 달려가 충주성심학교의 어린 동생들과의 시합을 하면서 그 무엇보다 가슴 벅찬 큰 가르침을 얻고 갑니다. 야구를 하기에는 조금은 불편할 수 밖에 없는 동생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은 우리 스스로 고개를 숙이게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막: 2012 추계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 1차전, vs 제주관광대학교) 우리가 야구를 하면서 배워나가는 것은 어떤 책에서도 본 적이 없는 살아 있는 경험입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라도 절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맞섭니다. (자막: 서울대학교 야구부는 3회까지 1대0으로 앞서가며 선전하였으나 7회 1대 11 콜드게임으로 완패하였다. 이번 경기를 마지막으로 졸업하는 선배를 위하여 야구부 전원은 마운드에 모여 서로를 격려하며 박수를 쳐 주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동료들이 마음으로 응원하기에 외롭거나 두렵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를 우습게 보는 상대에게 화가 나기도 하지만 결과가 어떻든 목표에 도전하기 위하여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도 참아냅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이기지도 못하면서 그 힘든 야구를 왜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학생으로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실패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의미를 배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모든 것이 반드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멈추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서울대학교 야구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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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헌신

아주 특별한 선택 사회복지법인 여수애양병원 여수 시내에서 차로 30분을 더 가야 하는 시골병원 하지만 전국 각지에서 모여드는 외래환자가 하루 200여명 병원장 김인권 “저는 평범한 시골 의사입니다.” 하지만 이 시골의사는 한 해 3,500여 건, 하루 20여 건의 인공관절 수술을 집도한다 종합원 외과의사의 10배가 넘는 수술 수. 왜 이 작은 병원으로 그렇게나 많은 환자들이 모여드는 걸까 이유는 명의의 수술을 반값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 돈이 없거나, 다른 곳에서 치료를 받다가 더는 갈 곳이 없는 이들이 전국에서 찾아온다. 멀리서 온 이들을 다음에 오라고 할 수 없어 그 날 온 환자는 모두 그날 진료하고 수술도 환자가 원하는 날짜에 맞춘다. 불필요한 검사를 줄이고 하루 20여 건의 수술을 통해 실현한 반값 수술 의사의 헌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 “환자들에게 좀 저렴하고 좋은 치료를 하는 병원이다. 거기서 일하는 의사로 남는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1977년 6개월의 무의촌 파견의사로 소록도에 갔던 레지던트 청년 김인권 그 곳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만났다 박용택 소록도 주민 /63세 (김인권 원장의 첫 수술 환자) “삼십한 4년 전쯤 되겠네요. 굉장히 열성적으로 치료를 해 주는데, 맨손으로 코로 상처 냄새를 맡아 가지고 진찰을 하시더라고” 2년 후 공중보건의로 자진해서 다시 찾아간 소록도 복무가 끝나고 모교 의사로 오라는 제안을 뿌리치고 그가 향한 곳은 한센인들의 공동체 여수애양병원 한센병 환자가 줄어들자 그의 헌신은 소아마비 환자로 향했다. 소아마비 환자도 거의 사라진 지금, 퇴행성관절염을 앓는 나이 드신 분들을 위해 하루 20여 건의 인공관절수술을 한다 하루 24시간이 한참 모자라는 가혹한 일정. 하지만, 그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행복이란 나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곳에서 얻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금껏 살아왔습니다.” 김인권 서울대 문리과대학 의예과 69학번 그가 선택한 삶은 행복한 헌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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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 없이 주는 나무

개척(開拓) – 새로운 분야를 열고 넓힘 1929년 일제강점기 경남 마산에서 5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사진: 의신유치원 제12회 졸업식 (1936년) 1936년, 부산 부민공립소학교에 입학하였고 사진: 부산공업학교 교사 (1942)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1942년 부산공업학교 응용화학과에 진학하였습니다. 사진: 부산공업학교 재학시 친구들 1954년 조선고무벨트회사의 군수공장에 동원되어 고무와 첫 인연을 맺었습니다. 사진: 공과대학 제6회 동창생 졸업기념 (부산 전시연합대학교사, 1952) 아버지는 의사가 되길 바라셨지만....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고 싶었던 청년은 1946년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진학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엔 고무를 전공한 교수도 교과서도 없었습니다. 사진=보생고무산업주식회사 1951년 고무공장에 취직하였지만, 당시 한국의 고무기술은 부끄러운 수준이었습니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열렸습니다. 1956년 미국 국무성 초청 기술훈련에 참가해 새로운 기술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부산역에 전송 나온 양가 부모님 사진: 미국 재생고무 회사 사장과 함께 사진: 와싱톤 한국대사관 이후락 무관과 함께 11년 동안 기술사원으로 근무하며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산업용 고무를 국내 최초로 자체 생산하는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사진: 보생고무산업㈜ 품질향상표창 (1964) 사진: 진해전자㈜ 근무 시 신문기사 (1965) 사진: 태성고무화학 창립 당시 영등포 공장 (1967) 1967년 본격적으로 특수고무를 개발하기 위해 태성고무화학을 창립하였습니다. 사진: 태성고무화학 구미공장 사진: 태성폴리머 오산공장 사진: 태성폴리머 필리핀 공장 사진: 태성폴리머 익산공장 사진: 고무기술 강좌 (1968) 늘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했다는 아쉬움으로 한국고무학회 창립을 주도하였으며, 사진: 일본고무학회 회장과 함께 (동경, 1975) 한국고무학회 회장직 (1974-1978)을 맡아 고무산업 발전을 위해 힘썼습니다. 사진: 증소기업의 날 대통령 표창 (1972) 사진: 과학의 날 훈장 (1981) 오랜 기간 산업용 고무 개발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 했습니다. 1998년.. 쉼 없이 달려온 그에게 뜻하지 않은 시련이 다가왔습니다. 후두암 4기.. 성대를 제거하고 인공성대를 달아야 했고 위암수술로 위도 제거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오직 일에만 전념했던 자신을 되돌아보았습니다. 기부(寄附) - 대가 없이 내놓음 당신은 회장님이시지만 세상 어느 옷보다 20년된 양복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당신은 회장님이시지만 고급 레스토랑보다 학교 식당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당신은 회장님이시지만 호텔 커피숍보다 자판기 커피가 더 맛있다고 하셨습니다. 사진: 경동고아원 후원금 전달 (2002) 사진: 독거노인 생계비 전달 (2005) 사진: 영등포노인종합복지회관 차량기증 (2007) 검소하게 사셨지만 나누는 것을 그 무엇보다 좋아하셨습니다. 44,020,431,200… 지금까지 당신이 나눈 기부액입니다. 사진: 신양문화재단 장학금수여식 (2011) 당신은 수많은 학생들에게 따뜻함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사진: 신양학술정보관 1호관 사진: 신양학술정보관 2호관 사진: 신양학술정보관 3호관 사진: 공대 엔지니어하우스 지금까지 당신이 서울대에 기부하시고 지원한 건물입니다. 대한민국의 기초과학 발전을 위해서도 아낌없이 기부하셨습니다. 정석규 이사장: “노벨 수상자가 (국내에) 없잖아요. 노벨상 수상자가 한 사람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늘 힘주어 말합니다. “돈이란 건 인분과 같아요. 한 곳에 모아두면 악취가 납니다. 하지만 밭에다 고루고루 뿌려주면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지요.” 평생 학문에 정진하고 나눔을 실천하신 공로로 여러 분야에서 존경의 마음을 표하였습니다. 사진: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선정 (2005) 사진: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 선정 (2006) 사진: 한국공학한림원 대상 (2008) 사진: 서울대학교 명예공학박사학위 (2010) 2004년 한국인 최초로 ‘초아의 봉사인’이라는 칭호를 받으셨습니다. 초아(超我) – 자기 자신을 뛰어 넘음. 당신은 자기 자신을 뛰어 넘으셨습니다. 이제 당신은 평생 동안 일구신 재단까지 내어 놓으셨습니다. 당신의 아름다운 마음은 서울대학교 발전에 위대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사랑하는 수천, 수만의 대한민국 인재들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당신은 진정한 부자입니다.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을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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