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인이라면 한번쯤은 가보았을 녹두거리. 1975년 서울대학교 종합화에 따라 관악산 일대에 서울대학교가 자리를 잡게 되면서 관악구는 인구 증가와 함께 교통 및 상업 시설이 크게 발달하게 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와 도림천 주변 신림 2동과 신림 9동 지역이 관악 캠퍼스의 대표적인 대학가로 성장하였고 이 지역에는 관악 캠퍼스 이전 초기부터 각종 하숙집, 고시원, 식당, 주점, 다방, 당구장 등이 들어섰다. 그 중 대표적인 주점이 구 289번 버스 종점 앞에 있었던 ‘녹두집’ 이었고 이 이름을 따서 학생들이 이 지역을 ‘녹두거리’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종합화 이후 1980년대 대학 문화의 가장 큰 변화는 학생 운동이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운동권 문화, 공동체 문화가 급격히 확산된 점이었다. 이러한 변화 가운데 1980년대 학생들에게 녹두거리는 일종의 정신적 ‘해방구’이자 강요된 질서에 대한 ‘저항의 공간’이었다. 학내 집회와 시위가 있던 날이면 녹두거리 주점들은 대만원을 이루었다. 특히 금요일에는 2시 아크로 집회, 4시 교문 투쟁, 8시 주점 뒤풀이, 11시 자취방 토론이 정해진 코스였다. 학생들은 사회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녹두에 모여 변화와 혁명을 노래했고 서점과 술집에서 학문과 사회에 대해 토론했다.
자주관악제 폐막제
대학신문, 1988. 10. 31.
1988년 처음으로 개최된 「자주관악제」는 ‘관악을 깨우는 북소리로’라는 주제구호를 걸고 파업노동자, 철거민, 농민 등 기층민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축제로 구성되었다. 사진은 녹두거리에서의 「자주관악제」 폐막제의 모습을 담았으며 당시 축제의 마무리는 으레 그렇듯 녹두거리에서 맺어졌다.
“쌀쌀했던 날씨 탓인지 성대했던 개막제와는 달리 소수정예인원으로 대운동장에서 벌어진 폐막제. 「민주쟁취 그날까지」라는 모조 글자를 불태우고 맘모스 모닥불을 피우며 나흘간의 숨 가쁜 일정을 마무리했는데 … 이어 신림사거리까지 횃불을 들고 평화적으로 행진하려 했지만 경찰에 막혀 녹두거리에서 즉석 집회를 가지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제창하며 축제로 하나된 마음을 더욱 다졌다. …”
1980년대 녹두거리의 인문사회과학 서점들은 서울대학교 학생운동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서가에는 각종 사회 과학 서적들이 가득 찼는데,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마르크스주의 관련 서적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서점은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고 연락처와 사연을 남겨 두는 메신저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가투를 끝낸 후 시위용품을 맡아주는 학생운동의 지지자이기도 했다. 지금도 장소를 옮겨 남아있는 ‘그날이 오면’은 6·10 항쟁의 분위기가 절정에 이른 1987년 하반기에 문을 열었다. 1998~99년 매달 학생·독자의 책읽기 활동 공간으로 서평지 『그날에서 책 읽기』를 펴냈으며, 서울대 총학생회와 서울대 자치도서관과 함께 신입생들에게 권하는 책을 골라 소개하는 『새내기를 위한 책읽기 길라잡이』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1992년 ‘열린 글방’, 1996년 ‘전야’가 문을 닫으면서 ‘그날이 오면’은 현재 녹두거리의 유일한 사회과학 서점으로 남게 되었다.
그날에서 책 읽기 10호
그날, 1999. 3.
『그날에서 책 읽기』는 매월 1일마다 발행되었으며 노동, 정치, 사회학 등의 분야의 신간 소개와 새내기에게 권하는 한 권의 책, 작가 인터뷰, 학생들의 서평 등을 실었다. 10호에서는 기획으로 양심수들이 쓴 책, 지난 10년간 ‘그날’의 베스트셀러, 리영희 선생 인터뷰, 그날이 작년 12월부터 공모한 서평의 당선작 등을 소개했다.
새내기를 위한 책읽기 길라잡이
41대 서울대 총학생회, 서울대 자치도서관, 그날이 오면, 2000
이 책은 한걸음 먼저 대학에 들어온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독서의 틀을 제공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발간되었다. 역사, 문화, 정치 등의 주제로 구성되었으며 다양한 필진이 참여하였다. 특히 2000년 호에서는 『그날에서 책 읽기』 편집위원 등 학내 단체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총학생회는 재정에 도움을 줬다.
1980년대까지 녹두거리를 비롯한 관악 캠퍼스 주변 대학가는 대학 문화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일반 소비문화를 함께 받아들였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1990년대 이후 학생운동 문화가 그 열기를 차차 잃어감과 동시에, 가속화된 소비문화로 인하여 녹두가 그 문화적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하였다. 1994년 개최된 녹두문화제는 과잉상업화에 의해 설 자리를 잃은 대학문화가 지역과의 연대를 통해 ‘결연의 정치’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행사였으며, 녹두라는 공간을 학생들이 문화공간으로 활성화하고자 한 첫 시도였다.
녹두문화제 기획 1 제1회 지역문화포럼, 1995
1995년 제38대 총학생회 녹두문화제 준비팀이 펴낸 이 자료집은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대학문화도 지역자치문화 속에서 상생하기 위해 서울대와 관악구의 녹두문화제를 기획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녹두문화제는 1995년 가을 축제의 일환으로 처음 개최되었다. 서울대생과 관악구민들이 소통하는 공간을 열고, 녹두거리에 상업적 소비문화 대신 올바른 문화를 정착시킨다는 취지였다.
제5회 녹두문화제 - 숨은그림찾기, 1998
1998년 10월 13일부터 15일까지 사흘간 진행됐던 제5회 녹두문화제에서는 환경 현장 활동 측면에서 도림천 살리기를 추진했다. 그 외에도 차 없는 녹두거리, 성폭력 해방공간 선언, 풍물패 길놀이, 농활제, 재즈와 댄스 동아리 및 마당극 공연, 단편영화 감상회 등을 기획했다.
“녹두는 학내와는 다른 긴장이 있다. 우리들-학생들과 더불어 녹두를 또한 자신들의 삶의 터전으로 하고 있는 관악구 신림동 사람들 또한 그 공간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대학은 지역사회로 열린 곳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에 동의한다면, 녹두는 그 발파공으로서의 충분한 가능성을 가진 곳은 아닐까”
- 「1999년 총학생회 새터 자료집」
중에서
2000년대 들어 주요 상권은 서울대입구역과 낙성대역 사이에 위치한 ‘샤로수길’로 옮겨간 지 오래지만 그 시절 대중문화, 소비문화와 구별되는 저항문화의 중심지였던 녹두 거리의 기억은 남겨진 기록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출처
그날이 오면
서울대학교 60년사 편찬위원회, 『서울대학교 60년사』, 2006.
서울대학교 기록관, 『도약의 나래를 펴라 1975-2017』, 2017.
서울대학교 대학신문사, 『대학신문 사진으로 본 서울대학교 50년』, 2002.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대학사료 디지털 컬렉션, http://lib.snu.ac.kr/find/coll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