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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만나는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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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만나는 서울대

개교 직후의 서울대 입시

2019.12.06

해방 이후 2019년도 현재까지 대학 입시제도는 자율적 입시제도, 대학 입시에 대한 국가 통제의 강화, 국가 통제하의 입시제도 자율화라는 큰 틀로 변화해왔다. 해방 이후 입시관리 운영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은 대학의 자율에 맡겨졌다. 서울대학교는 1946년 개교와 함께 단과대학별로 신입생을 모집하고, 전문부와 예과로도 신입생을 모집하였다. 대학별 고사는 필답고사, 신체검사, 면접을 병행하였다. 서울대학교는 1947년 8월 ‘국립서울대학교임시규정’을 마련하여 입학 자격에 관한 기준을 정했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1948학년도 신입생 모집요강은 추후 이사회 의결을 거쳐 학칙으로 명문화되었다.

국립서울대학교 치과대학 학생모집 평화일보, 1948.8.3.

국립서울대학교 치과대학 학생모집
평화일보, 1948.8.3.
치과대학 학생모집 광고이다. 1948학년도 신입생 모집요강은 1947년 ‘국립서울대학교 임시규정’을 바탕으로 정해졌다.

1.모집인원: 제1학년 약간 명, 2.응모자격: ①6년제 각종 중학교 졸업자, ②구제(舊制)대학 예과 및 전문부 2년 수료자, ③대학입학자격검정시험합격자, ④중학4년 수료 및 졸업자로서 문교부장이 인정한 각 대학 전문부 2년 수료자, 3.원서접수기일: 8월 5일~8월 25일, 4.시험기일: 9월 1일~9월 4일, 5.시험과목: 국어, 수학, 영어, 사회생활, 화학, 구술시험 및 신체검사

1950년대 서울대학교 입시는 대체로 대학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자율적으로 이루어졌다. 서울대학교는 한국 전쟁 당시에도 피난지 부산에서 가교사를 짓고 학교를 계속 운영하였고 이에 따라 입학 전형도 시행했다. 전쟁 기간 동안 서울대학교 입학과 관련하여 여러 특례 조치가 취해졌다. 상이군인과 제대 군인들에게 서울대학교 입학에 있어서 특전이 부여되었고, 북한에서 월남한 학생들의 경우 우선 청강생으로 받아들였다가 일정 기간이 경과한 뒤 정규학생으로 편입시켰다.

4종합대학의 입시개막 - 과학계통에 쇄도 대학신문, 1952.4.14.

4종합대학의 입시개막 - 과학계통에 쇄도
대학신문, 1952.4.14.
1952년도 입시 관련 기사이다.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연희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의 1952년도 입학시험이 4월 8~9일 전국 일제히 실시되었으며 특기할 점은 전시 하에 과학열이 고조되어 과학 계통으로 많은 학생들이 몰렸다는 점이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은 375명 모집에 1,350명이 지원하여 3.5대 1의 경쟁률을 보였고, 의과대학은 120명 모집에 900명이 지원하여 7.4대 1의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인문계통보다도 과학계통에 수험생이 단연 뛰어나게 많은 인원을 점령한 것은 전시하 고조되는 과학열과 인문계통은 모집인원을 줄인 데서 오는 필연적 귀결이라 하겠다.”

1952학년도 입시는 아직 환도 전이었기 때문에 부산, 대구, 전주, 광주, 수원 등 전국 5곳에서 같은 날 같은 시에 치러졌다. 수험생들은 국어, 영어, 수학, 사회생활 등 공통과목과 한두 과목의 선택과목의 필기시험을 치러야 하였으며 구술시험과 신체검사가 별도로 치러졌다. 당락에 압도적 영향을 미친 것은 필기시험이었다. 이후 기본적으로 서울대학교가 자체적으로 출제하는 대학별 고사 중심으로 입학시험이 치러졌다.

학생선발시험 요항  권준현 동문 기증, 1955

학생선발시험 요항
권준현 동문 기증, 1955
1955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의 학생선발시험에 관한 안내사항을 공지한 것이다. 시험 감독에 대한 주의사항, 학생선발고사 시간표, 수험생에 대한 주의사항, 필답시험 감독위원 명단, 문리대 지원자의 필답시험장배치도(문리과 대학 강의실), 의예과 지원자의 필답시험장배치도(성균관대학)가 기재되어 있다. 3월 2일(국어 10:00~11:30, 수학 12:00~1:30, 영어 2:30~4:00), 3월 3일(사회생활 또는 과학 10:00~11:30, 선택과목 12:00~1:30), 3월 4~5일(구술고사 및 신체검사)로 나흘간 시행된다고 공지하고 있다. 고사실 입실과 고사 개시 타종(打鐘) 시간도 기재되어 있다.

입시출제와 모범답안(91년도 서울대) 대학신문, 1958.3.17.

입시출제와 모범답안(91년도 서울대)
대학신문, 1958.3.17.
1958년도 서울대학교 수학1 입시문제이다. 서울대학교 자체 입학고사를 실시한 시기에는 대학신문에 입시문제와 모범답안, 채점을 담당한 교수들의 채점소감, 출제평, 단과대학별 합격자 명단을 실었다. 1958년도 당시 입시과목 중 수학은 수학1 7문제, 수학2 7문제로 출제되었다.

당시 입학절차는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학에서 입시요강을 확정하면, 지원자는 모집요강을 필독하고 원서 접수 기간 내에 지원서와 소정의 고사료를 첨부하여 제출하여야 했다. 지원자들은 과목별 필답고사, 신체검사, 면접을 거쳤다. 합격자 발표 이후 졸업증명서, 호적사본 등 서류 일체를 서울대학교 본부(동숭동)에 제출하고 등록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서울대학교 학생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수험표, 1959, 이종국 동문 기증
수험표
1959
이종국 동문 기증
치과대학 합격증명서, 1954, 김정수 동문 기증
치과대학 합격증명서
1954
김정수 동문 기증
등록금 영수증, 1953, 윤여창 동문 기증
등록금 영수증
1953
윤여창 동문 기증
1953년 당시 1학기 등록금은
8,120원, 수업료는 600원,
입학금은 60원이었다.


신입생 합격자 발표 1957
신입생 합격자 발표 1957

개교 이래 1950년대까지 서울대학교는 정부의 자유방임적 대학 정책에 따라 자체 입학고사만으로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61년 군사 정권 등장 이후 정부가 대학 입시에 적극 개입함에 따라 1962학년도부터 대학별 선발고사를 폐지하고 ‘대학입학자격국가고시’(국가고시)를 실시하게 된다. 국가고시는 정원 미달 대학 발생, 과도한 체능검사 점수 체계 등의 문제점과 함께 반대여론이 거세지자 시행 2년 만에 폐지되었다.

1963학년도 서울대학교 입학자전형 필답고사 영어문제
1963학년도 서울대학교 입학자전형 필답고사 영어문제

1963학년도 서울대학교 입학자전형 필답고사 영어문제
김영성 동문 기증, 1963
문교부가 국가고시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 1963학년도 대학입시부터 자체 필답고사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서울대학교는 1963학년도 입시에서 필수 과목 4과목과 선택 과목 1과목의 필답고사를 실시했다.

1960년대 후반에 들어 대학 입시에 대한 국가 통제가 강화되고 대학입학예비고사, 학력고사를 실시하게 되면서 대학 입시의 주도권이 정부로 넘어가게 되었다.

출처
서울대학교 60년사 편찬위원회, 『서울대학교 60년사』, 2006.
서울대학교 70년사 편찬위원회, 『서울대학교 70년사』, 2016.
서울대학교 기록관, 『고등교육의 새요람 1945-1953 서울대학교』, 2015.
서울대학교 기록관, 『지성과 역동의 시대를 열다 1953-1975』, 2016.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대학신문 디지털 컬렉션, http://lib.snu.ac.kr/find/collections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http://nl.go.kr/newspaper

수집대상년도: 1946 ~ 현재, 기증 기록물 활용: 개교기념 역사 전시, 웹서비스 등 / 기록물유형: 사진, 영상, 문서, 기념물 등 / 기증 문의: 기록관 전문요원실(02-880-8819) 수집대상년도: 1946 ~ 현재, 기증 기록물 활용: 개교기념 역사 전시, 웹서비스 등 / 기록물유형: 사진, 영상, 문서, 기념물 등 / 기증 문의: 기록관 전문요원실(02-880-8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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