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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인문지리학적 성찰로 이끈 윤홍기 명예학술연구자의 4부작 콜로퀴움

2025. 5. 16.

뉴질랜드 오클랜드대 윤홍기 명예학술연구자 초청 연속 콜로퀴움 공식 홍보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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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국토문제연구소, 중국연구소, 그리고 4-plus 미래국토공간 혁신 교육연구단이 공동 주최한 윤홍기 명예학술연구자의 연속 콜로퀴움이 4월 15일(화)부터 5월 6일(화)까지 열렸다. 서울대학교 중국연구소는 “2021년 윤홍기 명예학술연구자의 은퇴를 기념하여 모교인 서울대학교에서 연속 기념 강연을 기획하였으나, COVID-19로 인하여 성사되지 못했다. 연속 강연은 그의 학문 이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동양과 서양, 마오리 문화를 비교하며 한국문화를 새롭게 조망하는 통찰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며 기획하게 됐다”라며 행사 기획 취지를 밝혔다. 콜로퀴움 사회를 맡은 지리학과 이강원 교수는 윤 연구자를 뉴질랜드 오클랜드대 지리학과의 명예학술연구자(Honorary Academic: 영국식 칭호로서 한국의 ‘명예교수’에 상당)로 소개하며 그의 학문적 여정을 간단히 설명했다.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63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UC 버클리에서 풍수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오클랜드대학교에 임용되어 45년 넘게 재직했고 현재 활발히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차 강연은 지오멘탈리티 개념을 다뤘고 2차부터 4차까지 강연은 지도를 통해 살펴보는 지오멘탈리티, 지명의 이중성, 산성의 독특성으로 주제가 이어졌다. 기사는 세 차례의 강연을 중심으로 윤홍기 명예학술연구자가 던진 질문과 사유의 흐름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사회를 맡은 이강원 교수가 윤홍기 명예학술연구자를 소개하고 있다.좌), 윤홍기 명예학술연구자가 청중들과 활발한 토론을 하고 있다.우)
사회를 맡은 이강원 교수가 윤홍기 명예학술연구자를 소개하고 있다.좌), 윤홍기 명예학술연구자가 청중들과 활발한 토론을 하고 있다.우)

지오멘탈리티, 세계를 상상하는 방식 – 지도 너머의 권력과 문화

윤 연구자는 지도에 대한 인식이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문화적, 정치적 산물임을 강조했다. 지도가 공간을 시각화하는 장치일 뿐 아니라 특정한 세계관을 투영하는 도구이며 **지오멘탈리티(geomentaility)를 통해 우리가 지도를 어떻게 이해해왔는지, 세계를 어떻게 형성해왔는지를 성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연구자는 “지오멘탈리티는 보이는 세계의 지리적 구조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서열화된 세계 질서를 드러낸다”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널리 쓰이는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제작된 지도는 고안 당시에는 항해에 유리한 방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유럽의 북반구는 면적을 과장하고 남반부는 축소해서 보여준다. 그린란드와 아프리카는 지도에서 비슷한 크기로 보이지만 현실은 아프리카가 그린란드보다 14배가량 더 크다. 우리가 익숙한 세계 지도 이미지가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 시사한다.

윤홍기 명예학술연구자가 직접 고안한 권력구조가 반영되지 않은 새로운 지도를 제시하고 있다.(좌), 윤홍기 명예학술연구자가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우)
윤홍기 명예학술연구자가 직접 고안한 권력구조가 반영되지 않은 새로운 지도를 제시하고 있다.(좌), 윤홍기 명예학술연구자가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우)

그는 지오멘탈리티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최근 ‘대안 지도’ 운동과도 연결된다고 이야기했다. 남반구를 위쪽에 배치한 세계지도, 아프리카나 남미를 실제 비율대로 크게 그린 지도, 원주민의 시각에서 재구성된 지역지도 등은 기존의 세계관에 도전하는 시도들이다. 윤홍기 명예학술연구자는 “우리가 받아들여 온 세계는 실재가 아니라 특정한 권력과 문화가 선택하고 배치한 결과”라고 말했다. 따라서 지오멘탈리티를 성찰하는 일은 과거의 잘못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어떤 세계를 상상하고 구성할 것인가를 묻는 일로 이어진다.

지명의 이중성, 역사와 정체성을 말하다 - 토박이지명과 한자지명의 경계에서

지도와 세계 인식의 문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지명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지명은 오랜 시간 한 사회의 언어, 기억, 정체성이 응축된 문화적 기호다. 4월 29일(화) 진행된 강연에서 윤홍기 명예학술연구자는 지명이라는 일상적 언어가 어떻게 역사적 권력의 흔적을 품고 있는지 조명했다. 한반도에서 토박이지명(고유어 지명)과 한자지명이 함께 존재하는 이유는 한반도라는 공간을 복합적으로 기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토박이지명은 대체로 해당 지역의 원주민이 구어로 전해온 지명이다. 특정 자연환경, 지형 특성, 민속이 밀접하게 얽혀 있으며 글자보다 말소리로 전승되어 온 경우가 많다. 반면 한자지명은 제도와 행정체계 정비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자문화권의 영향으로 지역 지명이 한자로 표기되면서 기존의 토착 발음이나 의미가 무시되거나 왜곡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윤 연구자는 토박이지명이 한자로 변하는 과정이 단순한 표기 변경이 아닌 문화적 번역이자 일종의 탈맥락화라고 지적했다.

3번째 강연 ‘지명의 특징(토박이지명과 한자지명의 이중성)‘을 진행 중인 윤홍기 명예학술연구자(좌), 지명의 문화식민주의를 뉴질랜드 마오리 지명과 한국 토박이지명의 비교하며 설명하고 있는 윤홍기 명예학술연구자(우)
3번째 강연 ‘지명의 특징(토박이지명과 한자지명의 이중성)‘을 진행 중인 윤홍기 명예학술연구자(좌), 지명의 문화식민주의를 뉴질랜드 마오리 지명과 한국 토박이지명의 비교하며 설명하고 있는 윤홍기 명예학술연구자(우)

토박이지명과 한자지명의 병존은 일상 속에서 복합적인 인식 차이를 만들어낸다. 많은 지역의 행정 문서나 지도는 한자지명이 사용되지만, 지역민들은 여전히 토박이지명을 말하고 듣는다. 외지인은 공식지명만을 접하면서 원래 지명 체계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무시하게 되고 지역민은 토박이지명을 비공식적이거나 잘못된 것으로 여겨야 하는 이중 인식에 놓이게 된다. 윤 연구자는 이를 ‘지명 정체성의 분열’로 규정하며 언어 표준화가 지역의 언어 감각과 문화 자긍심을 위협할 수 있다고 봤다. 윤홍기 명예학술연구자의 문제의식을 뉴질랜드 마오리지명과 비교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마오리지명은 토박이지명임에도 불구하고 지명의 공식 표기법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의 토박이지명은 공식 문서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가 토박이지명을 어떻게 다뤄야할지 시사점을 제공했다.

산성, 자연을 품은 요새 – 한국 산성의 독창성과 세계적 맥락

윤홍기 명예학술연구자는 연속 콜로퀴움의 마지막 강연에서 한국 산성의 독자성과 세계사적 의미를 조명하였다. 산성은 흔히 산 위에 세운 성곽으로 이해하지만, 군사적 방어시설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자연관, 공간 인식, 방어 전략, 정치 체계 등을 복합적으로 담아낸 문화적 구조물이다. 윤 연구자는 한국의 산성을 중국식 도성, 유럽의 힐탑 포트리스, 마오리족의 파(pa) 등 세계 여러 지역의 방어체계와 비교하며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마지막 강연은 ‘산성은 무엇인가?’라는 주제였다.
마지막 강연은 ‘산성은 무엇인가?’라는 주제였다.

윤홍기 명예학술연구자는 “한국 산성의 성벽은 직선이나 사각형 구조가 아니라 산세를 따라 곡선과 굴곡을 그리며 자연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라고 설명했다. 산성의 구조를 감안하면 중국의 도성은 통치와 권위를 시각화한 공간이지만 한국의 산성은 전시를 상정한 군사적 공간으로 기능과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산성의 특징은 유럽의 고지대 성곽과도 연결될 수 있다. 스코틀랜드의 던베거 성, 스위스의 슈타인성, 이탈리아 북부의 수많은 언덕 요새들은 높은 지형을 활용해 방어력을 극대화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윤 연구자는 “산지에 위치한 유럽의 힐탑 포트리스는 적의 동태를 조기에 파악하고 접근을 어렵게 하는 입지를 갖췄다는 점이 한국의 산성과 유사한 전략을 보여준다”라고 밝혔다. 또한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파(pa)도 흥미로운 비교 대상으로 제시됐다. 윤 연구자는 파는 요새가 아니라 유사시 공동체 전체가 농성할 수 있는 자급적 생활 공간이었다는 점에서 한국 산성과 비슷한 생존 전략이자 공간의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강연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서 산성의 발전과 비교를 역사학적 시간의 축으로 강조, 지리·인류학적 공간의 축을 강조하는 방법론으로 활발한 논의가 이어졌다. 강연 마무리에서 윤홍기 명예학술연구자는 산성을 단순한 과거 유물로 보지 않도록 제안했다. 산성은 과거의 방어시설인 동시에 자연과 인간의 관계, 공간에 대한 사고방식, 위기에 대응하는 공동체의 기억이 담긴 장소다. 따라서 산성을 다시 바라보는 일은 역사 복원 차원을 넘어 현재와 미래의 문화 자산을 재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발표자와 청중이 모두 집중하는 질의응답 시간(좌), 학부생과 질의응답 중인 윤홍기 명예학술연구자(우)
발표자와 청중이 모두 집중하는 질의응답 시간(좌), 학부생과 질의응답 중인 윤홍기 명예학술연구자(우)

4부작으로 이어진 강연은 각기 다른 소재를 다뤘지만 기저에는 삶의 공간이 지리학적 사유라는 일관된 흐름으로 존재했다. 지명, 지도, 언어, 유적 등 각기 다른 공간 요소들을 통해 윤 연구자는 인간이 공간을 기억하고, 이름 붙이고, 사유하는 방식을 지리학적으로 풀어냈다. 콜로퀴움은 학문 강연을 넘어 우리 일상 속 공간과 장소에 질문을 던지고 성장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깊이 있는 사유가 또 다른 질문과 만남으로 이어지며 학술 담론과 일상적 사유 속에서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지오멘탈리티는 ‘지리(geo)’와 ‘정신성(mentality)’의 합성어로, 세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정신적 틀을 뜻한다. 이는 인간이 공간을 사고하는 방식은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는 점을 드러낸다.
**메르카토르 도법은 16세기에 고안된 지도 투영 방식으로, 방향 유지에 유리하여 항해에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고위도로 갈수록 유럽의 북반구가 실제 면적보다 크게 표현되는 왜곡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공간적 위계와 권력의 시각화를 반영한 도법으로도 해석된다.

서울대학교 학생기자단
우현지 기자
miah01@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