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동남아시아센터 열린강연 ‘동남아의 전통 의료와 헬스케어’ 포스터
전통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시대에도 여전히 삶의 기틀로 작용한다.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동남아시아센터는 ‘의료’라는 키워드를 통해 전통과 현대의 접점을 모색하고자 2025년 상반기에 ‘동남아의 전통 의료와 헬스케어’ 강연을 개최했다. 강연은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전통 의료체계를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의 ‘몸’, ‘치유’, ‘돌봄’의 문화를 다룬다. 4월 30일(수)부터 5월 21일(수)까지 매주 수요일 총 4회에 걸쳐 온라인으로 진행됐으며 학내 구성원뿐 아니라 일반인도 자유롭게 참여했다.
강연은 건강과 치유를 바라보는 각국의 시선을 통해 사회문화적 돌봄을 수행하는 동남아 전통 의료 전반을 현대적으로 조망하였다. 강연을 기획한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동남아시아센터 윤대영 박사는 “전통 의료는 단순한 치료 기술이 아닌, 그 사회의 삶의 방식과 돌봄의 철학이 담긴 종합적인 지식·실천체계”라며 “이번 열린 강연이 의학적 접근을 넘어 총체적 사유의 장이 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몸과 건강, ‘돌봄의 철학’으로 바라보다
각 강연은 서로 다른 국가와 주제를 다루지만, 몸을 돌보는 일이 곧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인식을 공유한다. 공동체의 종교·사회적 의식이 녹아든 전통적인 의료는 ‘게으름’조차 치유의 시간으로 여겨왔다. 자기 돌봄이 주목받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 깊은 울림을 준다.
4/30일 개최된 첫 강연 ‘태국의 전통 의학(깐팻판타이)’ 현장
첫 강연에서는 김홍구 부산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가 태국 전통 의학 ‘깐팻판타이’의 역사와 현대적 의의를 설명했다. 김 명예교수는 인간의 건강을 흙, 물, 공기, 불의 균형으로 이해하는 태국 의학의 전통적 관점을 소개하며 “태국의 전통 의료는 신체와 건강의 균형을 통합적으로 돌보는 데 집중한다”라고 강조했다. “헬스케어는 전통 의료 속 ‘돌봄’을 현대화한 개념이며, 태국에서는 가족, 마을, 국가가 함께 책임지는 일”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강연 후 태국 전통 안마법을 질문한 청중에게 그는 “건강을 돌보는 ‘산후조리 안마’ 등이 국경을 넘어 현대에서도 전통의료로 계승되고 있다”라고 답했다.
두 번째 강연에서는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약 데이터 팀 이시우 책임연구원이 ‘한국과 베트남의 전통 의학 비교’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베트남이 한국과 유사한 서양의학과 전통 의학이 이원화된 의료체계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베트남의 의학이론과 세종(조선) 시기의 『향약집성방』 편찬 맥락을 비교하며 각 지역 환경과 사람들의 체질에 맞는 의료 지식으로 구성한 철학을 짚었다.
전통의 실천, 삶의 방식이 되다
이어진 강연들이 돌봄의 철학으로 대표되는 전통 의학이론에 집중되었다면 이후 강연은 의료가 문화, 젠더(gender) 등 다양한 담론과 맺는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세 번째 강연은 홍석준(국립목포대학교) 교수가 맡았다. 그는 ‘말레이사아의 전통 의료 관행과 건강 돌봄의 문화적 의미’를 주제로, 생애주기와 관련된 치유와 돌봄의 관계를 조명했다. 홍 교수는 대표적인 약재 ‘똥깟 알리’의 효능이 전통 의료 관행과 맺는 연관성에 주목하며 생애주기에 따른 건강 관리, 젠더와 돌봄 등이 현대적 담론과 맺는 관계를 다뤘다. “말레이시아 사회의 건강관은 신체적 상태 유지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 삶의 방식이 현대와 만나는 교차점에서 유지되는 계기를 마련한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 강연에서는 조윤미 인류학자가 ‘섹스는 돌봄이다 –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성 관념과 성적 향유, 그리고 이슬람의 온전한 건강’을 발표했다. 그는 “인도네시아에서는 성이 건강, 아름다움, 신앙과 연결되어 ‘총체적 웰니스’를 구성한다”라며 “사적인 차원을 넘어 공동체와 신앙, 질서를 위한 윤리적 실천으로서 몸을 돌보는 행위로 바라보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청중들이 강연으로 인도네시아 전통 의료 속에서 몸과 성, 삶의 조화가 구현되는 방식을 통찰할 기회를 가지길 바란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좌)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전경 / (우)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동남아센터 입구
강연은 전통 의료가 종교학, 사회학, 지역학 등과 긴밀하게 얽힌 하나의 ‘생활 문화’임을 제시했다. 동남아시아 각국의 전통 의료는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그들의 전통 의료에는 동남아인들의 삶의 태도와 돌봄의 방식이 녹아 있으며, 치료 방식은 현지인들이 가진 삶의 태도와 사회적 돌봄에 대해 통찰한다. 윤대영 박사는 “서구 중심 헬스케어 패러다임에 익숙한 우리에게 동남아 의료의 발전 양상은 전통과 현대가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라며 “한국 사회에서 점차 부상하는 웰빙(Well-being)과 피트니스(Fitness)의 합성어, 웰니스 개념 역시 전통에서 이어진 삶의 방식을 질문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동남아의 전통 의료는 사회적 연대와 돌봄을 바탕으로 한 집합체다. 강연으로 참석자들이 건강한 삶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통찰을 얻었기를 기대한다.
서울대학교 학생기자단
최윤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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