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안내

서울대 소식 / 뉴스

서울대뉴스

뉴스 /

서울대뉴스

서울대뉴스

일리야 벨랴코프 초청 강연, ‘지극히 사적인 한국’에서 찾는 다양성의 의미

2025. 6. 12.

문화다양성 주간 행사 포스터(좌) / 다양성 대화 시리즈 “한국은 다문화 사회?: 지극히 사적인 한국” 홍보 포스터(우)
문화다양성 주간 행사 포스터(좌) / 다양성 대화 시리즈 “한국은 다문화 사회?: 지극히 사적인 한국” 홍보 포스터(우)

5월 19일(월)부터 23일(금), 중앙도서관, 잔디광장 등 학내 곳곳에서 ‘2025 서울대학교 문화다양성 주간’ 행사가 열렸다. 서울대학교 다양성위원회가 주관하는 문화다양성 주간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문화다양성의 날(5월 21일)을 기념해 매년 5월 중순에 열리는 행사다. 배유경 책임전문위원(서울대학교 다양성위원회)은 “다양성 도서·영화전은 7회째 이어지고 있으며, 올해 2회째 열리는 ‘서울대학교 문화다양성 주간’에 영화 상영회, 대화 시리즈, 음악 프로그램 ‘DIVE IN’, 기업 탐방까지 연계해 다양성의 가치를 더욱 가시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다”라고 행사 기획 배경을 밝혔다.

5월 21일(수),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양두석 홀에서는 서울대학교 문화다양성 주간의 하이라이트 행사인 ‘다양성 대화 시리즈’가 열렸다. 다양한 문화 배경을 가진 연사와 대화를 통해 학내외 구성원들이 다양성을 이해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돕는 대화형 강연 프로그램이다. 초청된 연사는 일리야 벨랴코프(수원대학교 교수)로, 배유경 책임전문위원(서울대학교 다양성위원회)는 강연을 기획하며 “다문화 또는 다민족 사회를 주제로 연사를 생각했고, 일리야 교수는 러시아 문화를 알리는 동시에 한국에 귀화한 분이기도 하여 이중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라며 “그동안 다양한 방송 활동에서 경계를 넘는 사람의 관점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했다”라고 연사 초청 계기를 밝혔다.

민은기 다양성위원회 위원장은 강연 시작을 여는 인사말에서 “일리야 교수님은 러시아 문화를 알리는 동시에 한국 사회에 정착해 살아가며 경계를 넘는 시선을 공유해 온 분이다”라며 “오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감사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일리야 교수는 강연에서 ‘지극히 사적인 한국’이라는 주제로 다문화, 혹은 그 너머의 공존에 대해 깊이 있는 시각을 제시했다.

다양성 대화 시리즈 사회를 맡은 장은재(노어노문학과 박사과정)(좌) / 인사말을 하고 있는 민은기 다양성위원회 위원장(우)
다양성 대화 시리즈 사회를 맡은 장은재(노어노문학과 박사과정)(좌) / 인사말을 하고 있는 민은기 다양성위원회 위원장(우)

한국은 다문화 사회인가?

‘한국은 다문화 사회인가?’ 일리야 교수의 강연은 질문으로 시작됐다. 그는 “아직도 나는 이 물음에 물음표를 붙인다”라고 말하며 학문적으로는 다문화란 용어가 사회학에서 통용되지만, 일상에서 이 단어가 만들어내는 우리와 그들의 경계는 오히려 이질감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문화라는 말속에는 ‘우리는 여기서 살고 있는 사람이고, 너희는 밖에서 온 사람’이라는 구분이 들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단어를 되도록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일리야 교수가 강연에서 강조한 것은 다문화가 아닌 정체성의 공존이었다. 그의 강연은 귀화인이 이야기하는 한국의 경험담을 넘어 세계가, 한국 사회가 글로벌 이주 시대를 어떻게 맞이하고 있는가를 되짚는 시간이었다. 특히 그가 인용한 UN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은 세계에서 16번째로 이민자를 많이 받는 국가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리야 교수는 “한국은 아시아 최초의 다인종 국가로 공식 인정받았다. 또한 2050년이면 외국인 출신 인구가 10%를 넘어설 거라는 전망도 있다. 이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마주해야 할 과제이다”라고 말했다.

강연을 진행하고 있는 일리야 교수(좌) / 강연에 집중하고 있는 청중(우)
강연을 진행하고 있는 일리야 교수(좌) / 강연에 집중하고 있는 청중(우)

한국 사회에 착근되어 있는 한국인의 강한 정체성

한국 내 이민자의 현실도 언급되었다. 귀화인, 영주권자, 유학생, 노동자, 결혼이민자 등 다양한 이주자 유형에 따라 적용되는 정책이 상이하며, 특정 집단에만 정착의 길이 열려 있다는 점을 일리야 교수는 “동남아 출신 결혼이민 여성에게는 영주권과 귀화가 열려 있지만, 단기 노동자는 아무리 오래 머물러도 귀화가 불가능하다. 똑같은 외국인인데 대상화된 것이다”라고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그는 “‘이민자가 범죄율을 높인다, 치안을 위협한다’는 보도는 많지만, 이민자들이 사회에 기여한 사례는 잘 다뤄지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이주민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이 이질성에 기반하고 있고 언론 보도와 정치 담론이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일론 머스크, 아인슈타인,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등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큰 이민자들의 사례를 들어 이주가 곧 위험 요소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이러한 현상은 교육, 언론, 정치 담론에서 비롯된다고 그는 분석했다. “단일민족이라는 오래된 서사는 현실의 다문화적 사회 구조와 괴리를 일으킨다. 언론은 혐오 담론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라고 이야기한 일리야 교수는 “교육이야말로 문제의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장벽을 만들지 않는 것, 언어와 외모보다 가치와 관계를 중심에 두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질의응답을 진행하고 있는 연사자 일리야 교수와 사회자 장은재의 모습
질의응답을 진행하고 있는 연사자 일리야 교수와 사회자 장은재의 모습

질의응답에서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 가장 많았다. 그는 “나는 국적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민족과 언어로만 보면 한국인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러시아어에는 ‘러시아 민족’과 ‘러시아 연방 국민’을 구분하는 두 단어가 존재한다고 소개하면서 한국어에는 민족과 국민에 대한 구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기념사진 촬영을 하는 다양성 대화 시리즈에 참석한 청중들과 연사자
기념사진 촬영을 하는 다양성 대화 시리즈에 참석한 청중들과 연사자

일리야 교수의 강연은 한국 사회가 직면한 다문화 사회로 전환하는 시기에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일리야 교수는 ‘우리 안의 타자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법과 제도뿐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과 언어, 사회적 실천이 함께 변화해야 함을 강조했다.

서울대학교 다양성위원회가 진행하는 2025 서울대학교 문화다양성 주간의 의의는 함께 질문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실천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데 있다. 배유경 책임전문위원은 “다양성은 더 이상 외부의 가치가 아니라, 우리 내부의 풍경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양성 대화 시리즈를 비롯해 서울대학교 잔디광장에서 4일간 열린 퓨전국악, 집시음악, 시각장애인 공연, 라틴재즈 등 음악 축제 ‘DIVE IN’과 ㈜카카오의 다양성 기구 탐방 등 여러 행사를 열며 문화 다양성 주간은 ‘다양성’과 ‘공존’에 대한 구성원들의 관심을 환기하고 성찰을 끌어냈다. 앞으로 서울대학교 학내에서 다름을 말하는 언어를 새롭게 만들어가고, 다양성을 허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해하고 성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길 바라본다.

서울대학교 학생기자단
우현지 기자
miah01@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