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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생각을 쌓다, 〈LAYERS: 허물고 다시 쌓기〉 전시

2023.01.11.

연말이면 서울대학교 관악 캠퍼스에서는 학생들이 그동안 갈고닦은 솜씨를 선보이는 문화 행사가 곳곳에서 펼쳐진다. 교내 동아리 연습실과 학생회관 라운지, 두레문예관, 관악사 가온홀 무대는 힙합, 춤, 밴드 공연으로 빌 틈이 없다. 지난 12월 13일(화)부터 16일(금)까지 73동 문화관 1층에서는 〈LAYERS: 허물고 다시 쌓기〉 전시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미술대학 미술경영 협동과정에 개설된 ‘작품발표’ 수업 수강생들이 결과물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교수, 학생 작가, 기획자가 의견을 나누고 생각을 더해 완성한 전시는 관람객이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했다.

서로 다른 생각들을 블록처럼 허물고 쌓아 올리다

〈LAYERS: 허물고 다시 쌓기〉라는 제목에는 감상자가 예술 작품을 접한 후 기존에 가졌던 인식의 틀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생각을 하길 바라는 의도가 담겨 있다. △김인영(미술학과 박사과정) △이은경(미술학과 박사과정) △김한울(서양화과 석사과정) △양교일(서양화과 석사과정) △권도연(디자인과 박사과정) △양여진(동양화과 석사과정) △김희원(서양화과 석사과정) △박수현(동양화과 석사과정) 등 8명 작가는 캔버스, 명주 천, 카펫과 같이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작품을 만들었다. 서로 다른 메시지들이 하나씩 쌓여 관객은 사고를 새롭게 전환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김인영 작가의 〈재귀-체(再歸-體)〉 작품(왼쪽)과 QR코드 스캔 화면
김인영 작가의 〈재귀-체(再歸-體)〉 작품(왼쪽)과 QR코드 스캔 화면

전시는 권도연 작가가 그린 〈초록 잎〉부터 시작한다. 작품 속 유리컵, 촛불, 이파리처럼 평범한 사물은 모두 늘어지거나 번진 모습이다. 이미지는 인쇄 후 아크릴 채색으로 표현됐다. 기계 가공과 수작업을 함께 사용하고 평범한 사물을 비현실적으로 표현해 디지털과 아날로그, 가상과 실제, 기술과 사람이라는 층위가 동시에 보인다. 디지털 세계에서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정보는 일상생활에서 예기치 못하게 떠올라 낯선 느낌을 일으킨다. 김인영 작가 역시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소재로 작업했다. 〈재귀-체(再歸-體)〉는 QR코드를 실로 엮은 카펫이다. 핸드폰 카메라로 코드를 스캔하면 다른 내용으로 연결되지 않고 해당 코드가 그대로 화면에 다시 나타난다. QR코드가 디지털 세상으로 이어지는 관문이라는 통념을 부수는 작품이다. 디지털 이미지가 현실 세계 속 원본과 무관할 수 있음을 일깨운다. 김한울 작가는 〈나\미술/언니〉 영상에서 과거와 현재라는 두 층위를 함께 보여준다. 작가와 언니가 ‘미술’에 대해 떠오르는 단어를 나열한 2014년 영상을 같은 주제와 방식으로 다시 제작한 작품이다. 8년 사이의 변화에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그동안의 삶이 전해진다. 전시장 출구에는 나무 블록에 감상 후기와 이름을 써 젠가처럼 쌓아 올리는 방명록 공간이 있었다. ‘허물고 다시 쌓기’라는 부제처럼 관객의 생각이 더해져 전시에 또 다른 의미가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기획팀 이은정(미술경영 석사과정) 씨는 “관객이 남긴 소감을 읽고 작품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됐다”고 전했다.

방명록 블록에 이름과 감상평을 써서 쌓으면 감상자, 작가, 기획자가 함께하는 탑이 완성된다.
방명록 블록에 이름과 감상평을 써서 쌓으면 감상자, 작가, 기획자가 함께하는 탑이 완성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열두 명 학생 손에서 탄생한 전시

23년간 전시 기획자로 활동 중인 김인선 교수(서양화과)가 맡고 있는 '작품발표’ 과목은 2021년 가을학기에 개설됐으며 석박사 과정인 협동과정 미술경영에서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 수업을 통해 미술 전시 현장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제도를 이해하고 직접 전시를 기획할 수 있다. 수강생들은 작품을 출전하는 작가 팀과 전시를 준비, 진행하는 기획팀으로 나뉜다. 이번 학기에는 미술학과, 서양화과, 디자인과, 동양화과 석박사 과정에 있는 학생 작가 8명과 미술경영 석박사 대학원에 재학 중인 기획자 4명이 수업에서 만났다. 작가들이 포트폴리오를 제출하면 기획자는 여러 작품을 아우르는 주제를 선정한다. 이후에는 전시관을 섭외하고 홍보, 공간 구성을 진행한다. 수강생들은 동료와 생각을 나누면서 전시를 완성해 나갔다. 전시 전날 하루 종일 작품을 나르고, 전등을 설치하고, 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교내에 포스터를 붙이는 일까지 학생들이 손수 해냈다. 큐레이터 경험이 있지만 전시 기획 전 과정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라는 이은정 씨는 “상업 전시에 비해 인력과 비용이 부족해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이 배웠다”고 했다. 기획팀 김예원(미술경영 석사과정) 씨는 전시 준비 자체가 레이어(층)를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보고,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를 떠올릴 때 김 교수가 건넨 조언에 많이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교수님과 수강생이 함께 있는 단체 채팅방에서 한 학기 내내 알림이 끊이지 않았다”며 “이때까지 들었던 수업 중 참여자 간 대화가 가장 활발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미술계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소통, 협동, 상호 존중하는 태도를 익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전시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이견을 조율해야 한다는 것, ‘작품발표’ 수업과 〈LAYERS〉 전시가 남긴 메시지다.

서울대 학생기자
이규림(언론정보학과)
gyu2129@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