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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패러다임 바꿀 발견으로 ‘훔볼트상’ 수상, 물리천문학부 차국린 교수

2023.05.15.

물리천문학부 차국린 교수가 훔볼트 연구상(이하 ’훔볼트상‘) 물리학 분야 수상자로 선정됐다. 훔볼트상은 독일 알렉산더 본 훔볼트 재단이 매년 인문사회, 자연과학, 공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업적을 남긴 연구자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이 상을 받은 후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 59명에 이른다. 차국린 교수는 산화물 전자소재소자 분야의 세계적인 선구자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연구한 산화물 ’BaSnO3(바륨주석산화물)‘를 이용해 2차원 전자가스와 고이동도의 전기장효과 트랜지스터를 발견했고, 이 성과를 바탕으로 2021년 10월 훔볼트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올해 3월, 코로나19로 연기되었던 훔볼트상 시상식과 수상자 심포지엄이 독일 밤베르크에서 열렸다. 독일에 다녀온 차국린 교수를 만나 훔볼트상 수상 소감과 연구 인생을 들어봤다.

올 3월 독일 밤베르크에서 열린 훔볼트상 시상식에 참여한 차국린 교수
올 3월 독일 밤베르크에서 열린 훔볼트상 시상식에 참여한 차국린 교수

교수님, 훔볼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 당시 소감은 어떠셨나요?

2021년 10월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는 상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불모지처럼 여겨지던 이 분야를 이제 누군가 알아주는구나‘ 하는 생각에 매우 기뻤습니다. 이 분야가 연구할 가치가 있고, 앞으로 더 중요해질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니까요. 페롭스카이트 산화물인 BaSnO3(바륨주석산화물)의 고이동도를 발견한 이후 10여 년 동안 이 새로운 반도체 물질을 연구하고 있는데, 저는 시간이 필요하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함께하는 학생들이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학생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어 특히 좋았습니다.

’반도체 물리학‘은 어떤 학문이고,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시는지 간단히 소개해주신다면요.

반도체 물리학은 반도체가 가진 물리적 특성을 연구하고, 새로운 응용 방안을 찾는 분야입니다. 20세기 초반에 양자역학이 발전하면서 나온 가시적인 성과가 반도체인데요. 1940년대에 양자역학을 통해 반도체를 이해할 수 있게 됐고, 1950년대에 실리콘을 기반으로 한 반도체가 개발됐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실리콘 반도체가 지난 50년간 세상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는 잘 아실테고요. 이 실리콘 반도체는 이제 기초과학적으로 거의 이해됐고, 얼마나 작고 좋게 만드느냐 하는 공학의 단계로 넘어왔습니다. 이와 동시에 이제 반도체 물리학은 실리콘 기반에서 다른 소재로 옮겨가고 있고요. 그 새로운 소재를 찾고 응용하는 것이 제가 하는 연구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오랜 시간 한 물질을 연구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사실 저는 원래 반도체를 했던 사람은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산화물을 연구했어요. 그런데 산화물은 표면의 산소가 불안정하다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습니다. 20년 정도 산화물을 연구하면서 그 문제점 때문에 한계를 느끼고 다른 분야를 고민하던 때, BaSnO3를 발견했습니다. 이 물질을 살펴보니 산소의 불안정성이 없는 것 같아 보였어요. 기존에도 그러한 물질은 있었지만 그런 물질은 특성을 변조시킬 수가 없었는데, 이 물질은 특성도 변조되고 산소의 불안정성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새로운 반도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가 2011년이었는데, 그 두 가지 가능성을 보고 당시 학생들에게 전체 메일을 보냈습니다. ’우리 앞으로 이 연구에 ‘올인’하자. 시간이 걸리더라도 분명히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라고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 훔볼트상을 수상하신 건데요. 주목받지 못한 시간이 길었음에도 연구를 지속하셨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이 물질이라면 결국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던 그 찰나의 순간이 긴 시간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깜깜하던 터널 끝에 반짝이는 빛을 발견한 순간이죠. 처음 BaSnO3의 특성을 발견하고 발표했을 때는 새로운 물질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관심이 있었어요. 그리고 3~4년이 지난 후부터 일종의 암흑기가 찾아왔죠. 그동안 학생들이 힘들었을 겁니다. 관심도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은데, 교수는 계속해야 한다고 하고, 가시적인 성과는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그때 함께 터널을 걸어가 준 학생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커요. 최근에 외국에서 어떤 교수를 만났는데, 그 당시 함께한 한 학생의 박사 논문이 뛰어나서 지금도 찾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저희 연구가 주목받으면서 당시 연구한 학생의 논문을 찾는 거죠. 학생들의 논문에는 저널에 발표된 논문과 달리 시행착오의 기록, 숨은 이야기가 있거든요. 그 이야기를 듣고 긴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반도체 물리학 분야 훔볼트 연구상을 수상한 물리천문학부 차국린 교수
반도체 물리학 분야 훔볼트 연구상을 수상한 물리천문학부 차국린 교수

BaSnO3은 유리처럼 투명하면서도 금속처럼 상온에서 높은 전기 전도도와 전자 이동도를 가지고 있어 주목받는 신소재라고 들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셨을 때 이 분야의 미래는 어떨 것이라고 보시나요?

두 가지 측면에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기초과학적인 측면이 있는데요. BaSnO3이 가진 특성을 저온에서 잘 측정하면 기존에 반도체가 가진 양자 상태가 아닌 다른 상태가 나올 수 있어요. 즉, 새로운 양자 상태를 구현할 수 있다는 거죠. 이를 위해서는 소재의 결함을 줄이는 노력이 더 필요해서 조금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공학적 측면에서는, 상온에서 기존의 반도체 소자와 차별화되는 소자를 만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발견한 이 물질의 구조는 지구 내부에서 가장 많은 물질의 구조와 같습니다. 이런 구조들은 굉장히 다양한 특성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들과 결합하면 새로운 개념의 소자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존의 실리콘과는 결합이 안 되어도, BaSnO3과 결합해 실리콘에서는 할 수 없는 반도체 소자를 만드는 방법이 있는 것이죠. 예를 들면, 이 물질을 층층이 쌓으면 투명한데, 반도체보다 더 많은 전력량을 다룰 수 있는 소자가 만들어져요. 또한 헤드업 디스플레이에 이 물질을 이용하면, 훨씬 에너지 갭이 크므로 투명한 대역이 넓습니다. 이를 활용하면 미래에 우주, 군사 쪽으로도 잠재력이 많을 것이라고 봅니다.

앞으로의 연구 계획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방향성을 가지고 연구를 지속할 계획입니다. 다만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는 소재의결함을 줄일 필요가 있고, 원자들이 일렬로 결함 없이 붙어있는 ’산화물 단결정‘이라는 형태의 소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단결정을 만드는 인력도, 기술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반도체 단결정 제조 기술력을 보유한 독일의 IKZ 연구소와 협업해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IKZ에서 만든 단결정을 이용해서 우리가 그 위에 복잡한 구조를 만드는 거죠. 독일 한국 공동연구 관련 펀딩도 받아서 우리 학생들을 독일로 보내고, 독일의 연구원도 학교에 와서 함께 연구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인적 교류를 지속하면서 연구를 이어나가고자 합니다.

“멀리 보고 꾸준히 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멀리 보고 꾸준히 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선배이자 스승으로서,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각자 자신의 분야를 정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멀리 보고 꾸준히 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마라톤 하듯 멀리 보고 천천히 속도를 올리면서 가야 하는데, 100m 달리기처럼 앞만 보고 달리다가 번아웃이 오는 안타까운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그렇게 되면 기존의 방법에 안주하게 될 확률이 높아요. 물론,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학생들에게 당장 30년 앞을 보고 달리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단기적으로는 자기의 위치를 찾아가는 것이 먼저일 것이고, 자기 자리를 찾았을 때는 승부를 걸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업적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나만이,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차국린 교수는 1998년부터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초전도, 자기, 유전체 및 반도체 재료 및 장치 분야에서 180편 이상의 논문을 저술 및 공동 집필했다. Google Scholar에 따르면 그의 논문은 총 12,450회 이상 인용되었으며, 2021년 반도체 물리학 분야 훔볼트 연구상을 수상했다.

학력
- 서울대학교 물리학 학사 (82)
-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UCLA) 물리학 석사 (84)
- 스탠퍼드대학교 응용물리학 박사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