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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지도교수님

2008.01.14.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찾아가는 사람들의 절반은 ‘선생님’이다. 허기진 배를 물로 채우고 있을 때 슬그머니 도시락을 건네시던, 등록금이 없어 진학을 포기하려 할 때 당신 자식의 월사금을 내미시던 은사의 사연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런데 그 자리에 대학 시절의 ‘교수님’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무엇이, 어떻게 다르기에 ‘교수님’은 ‘선생님’만큼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일까? 오늘 관악의 사제지간에 대해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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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 만나서 반갑습니다. 드디어 그 날이 왔네요. (웃음) 솔직히 저는 학생들과 연배 차이가 크지 않아서 친한 선후배처럼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막상 한 학기에 두 번씩 지도 학생들과 만나면 영 어색하더군요. 나름대로 메뉴도 피자로 골랐는데… 우리 공대 학생들만 그런지, 아니면 다른 단과대학도 비슷한지 궁금했어요.

안보미 : 큰 차이는 없는 듯합니다. 제가 속한 사회과학계열은 학부제라서 1학년 때는 지도교수님을 뵙지도 못했고, 어떤 분이셨는지 기억도 안나요. 외교학과에 전공진입을 한 후, 장학금 신청 때문에 지금의 지도교수님을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사실 행정적인 이유 외에, 지도교수님을 학부생 입장에서 찾아갈 일은 거의 없어요.

심현표 : 여자 동기들 가운데 적극적인 친구들은 교수님을 자주 찾아가고, 개인적인 고민도 많이 털어놓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교수님께 쉽게 다가가지 못해요. 많이 바쁘시기도 하고… 그런데 교수님들께서도 학생들이 찾아와주기를 바라신다는 느낌을 종종 받습니다. 지도교수님과 술자리를 한 적이 있는데, 학생들이 많이 찾아주지 않아서 서운하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 말씀을 듣고 교수와 학생 모두 서로의 마음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현진 : 사실 스승이 된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과 조언을 주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어요? 그런데 제가 만나본 학생들은 이야기를 잘 안 합니다. 면담 때마다 어려운 일, 도와줄 일은 없냐고 물어도 별 대답이 없고… 학기말에 갑자기 찾아와 휴학하겠다고 하면서도 속사정은 밝히지 않아요. 나중에 알고 보면 제가 도와줄 수 있었는데도 말이죠.


● 딜레마: 기대와 실망의 악순환

안보미 : 개인적인 문제나 학업과 관련된 문제를 상담하고 싶어도, 친분이 거의 없는 사이에 솔직한 대화를 하기는 어렵잖아요? 게다가 교수님 앞에서 학업에 힘겨워 하면서 고민에 가득 찬 제자의 모습을 보이기는 더욱… 그렇지 않아도 서울대 학생들은 상호 경쟁의식 속에서 우월감과 열등감에 동시에 시달리는데 말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교수님께 고단함을 토로하는 것은 ‘저는 당신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경쟁에서 낙오된 학생입니다’라는 인상을 줄까봐 겁이 나요.

심현표 : 제 친구들 중에는 교수님들께서 너무 현실 감각이 없어서 실망했다는 경우도 있어요. 대학원에 오라고만 하시고, 고시나 취업 준비한다고 하면 별로 관심을 안 보이신다는 거죠. 어떤 선배는 Goldman Sachs를 양말회사로 아는 교수님도 계시지 않을까 걱정하더군요. (웃음)

김 현진 : 교수들도 비슷한 고민을 해요. 저는 공대에 몇 안 되는 여교수이고 상대적으로 연배가 어리기 때문에, 과연 학생들에게 제가 롤 모델이 될 수 있을지 스스로 묻고는 합니다. 특히 공대 여학생들에게는 더욱 그렇지요. 학생들이 저에게 상담을 해 올 때, 제가 줄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 대안 중 하나에 불과하잖아요? 그런데 학생은 절대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서 조심스러워요. 물론 아주 공부를 잘 할 것 같은 학생에게는 대학원 진학을 권유하지만요. (웃음)


● 서로 다가가는 아주 작은 한걸음이 필요

안보미: 작은 관심과 애정이 학생들에게는 매우 크게 느껴집니다. 한 전공수업 교수님께서 시험 답안지를 직접 첨삭해서 돌려주시면서 ‘이런 점은 매우 훌륭하고, 저런 점은 조금 부족하니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더 노력하면 좋겠다’는 코멘트를 적어주신 일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저희는 많은 수강생들 가운데 과연 교수님께서 나를 인지하고는 있을지 회의적이거든요? 교수님의 관심 어린 한마디로 최소한 그 수업에서는 그런 의문이 깨끗이 사라졌어요.

김현진 : 오늘 훌륭한 교수법을 하나 배웠네요. 당장 다음 학기부터 적용해야겠어요. (웃음) 저도 학생들이 좀 더 편하고 소소한 일들로 찾아와주면 좋겠어요. 요즘 유행하는 유머도 좀 알려주고, 재미난 DVD도 구워다주고… 엄청난 진리나 가르침만 기대하면 너무 부담스럽잖아요.

심현표 : ‘교수님께 칭찬 받을 때’는 정말 기분이 좋아요. 성인이 될수록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잖아요? 교수님들께서 학생들의 학업능력에 조금 관대해지시고, 동기부여를 해 주시면, 학생들은 교수님을 보다 친근하게 느낄 것 같아요. 삼각함수 좀 못하고, GRE 1500점 한번에 못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웃음)


● 지식의 전달자에서 인생의 멘토로

김현진 : 교수라는 직업이 단순히 지식 전달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우리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가 무의미할 거예요. 하지만 교수가 학생에게 도덕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절대적인 롤 모델이 된다는 것 또한 인간적으로 한계가 있어요. 저는 멘토라는 단어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 해요. 멘토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하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훌륭한 멘토-멘티 관계가 가장 바람직한 사제지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심현표 : 제가 속한 동아리 담당교수님의 경우, 제자들과의 술자리에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시려 많이 애쓰세요. 그런 교수님을 보면서 친근감과 함께 존경심까지 갖게 됩니다. 저 역시 그러한 감정에서 교수님을 ‘멘토’로서 생각해서 다가가고, 또 교수님께서도 ‘멘티’의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맞아주셨으면 해요.

안보미 : 서로 기본적인 예의를 지킨다면, 수직적이고 격식에 묶여있는 듯한 사제지간보다는 좀 더 편안하고 애정어린 ‘멘토-멘티’가 21세기형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더 어울리는 듯합니다. ‘혼자서도 잘 하는’ 서울대 사람들이지만, 함께 하면 모두가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진=(왼쪽부터) 안보미 외교학과 03학번, 김현진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심현표 생물교육과 04학번

2008. 01. 14
서울대학교 홍보부
학생기자 이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