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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은 자기방임이 아닌 자기통제

2008.03.14.

2008년, 서울대학교의 첫번째 현안은 '자율'의 드라이브로 요약된다. 서울대학교의 자율화에 관해 자율화 추진위원회장인 김신복 부총장과 추진위원들과의 대담이 열렸다. 서울대학교가 추진하는 자율이라는 개념 정립과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에 관해 살펴본다.

왼쪽부터 김신복 부총장, 김안중 교수협의회장, 조영달 사범대학장, 박찬욱 정치학과교수

자유방임(lasseiz-faire)이 아닌 자기 통제(self-control)

김신복: 분주하신 가운데 학교의 현안인 ‘자율화 추진’을 위한 좌담에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일단 우리 학교가 추구하는 ‘자율화’의 개념 정의로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합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자율이란 스스로 다스리면서(self-govern) 스스로 통제하는(self-control) 행위이며, 비단 대학 운영만이 아니라 모든 민주 시민에게 요구되는 기본 덕목입니다만…
김안중: 서울대가 자율의 경험을 가진 적이 얼마나 있는지부터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서울대는 관립대학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국내 1위로 만족하던 시대에는 이것으로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두뇌한국21’ 정책 이후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을 지향하면서부터는 자율이 절실한 화두가 되어 왔습니다. 이제 자율은 세계 유수의 대학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조영달: 사실 대학 자율의 개념은 대학의 예산, 목표, 구성이 과거와는 달라졌음으로 인하여 사회와 대학의 구성적 불일치 과정을 극복하려는 해결 개념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지금의 논의가 주로 정부와 학교의 관계에 대한 것이라면, 학교 안의 자율화 즉, 행정 본부와 개별 대학이나 단위와의 역할 조정 역시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박찬욱: 예전에는 헌법에 천명된 학문과 대학의 자유부터 떠올렸겠습니다만, 민주화 이후 대학 자율성 논의가 구체적 차원으로 발전했습니다. 서울대 자율화는 그 자체가 지상 목표라기보다는 서울대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도구적인 중간 목표입니다. 국립 서울대의 조직, 교수 충원 등 인사, 재정 확보와 운용 상 제약을 줄여나가는 것이겠지요.

자율화≠민영화≠법인화

김신복: 사실 자율화 추진의 배경은 한국 사회의 민주화 진전과 상관이 많지요. 새 정부는 교육 행정 전반의 자율화를 표방하고 있는데, 서울대의 선도적인 위치를 감안할 때 과연 어떤 식으로 대학 자율화를 추진하느냐에 따라 파급 효과가 클 것 같습니다.
박찬욱: 우선 국립대라는 틀 안에서 자율성 확대를 모색해 나가야 합니다. 법인화하게 되더라도 민영화와는 혼동되어서는 곤란하므로 이러한 논의를 공론화시켜야 합니다. 서울대가 공공성, 기초 학문을 포기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김안중: 법인화가 곧 민영화나 국가의 대학교육 방기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립대 법인화는 그동안 지원 없이 통제만 하려던 우리 대학정책이 국가발전기획 수준에서 재검토되는 계기가 되어야 하고, 그만큼 책임도 따라야 합니다. 개방과 자율이 숭례문 전소 같은 결과를 초래하는 일은 다시 없어야 하겠지요.
김신복: 이미 KAIST가 법인화 되어 있지만, 자타가 만족할 만한 자율화에는 이르지 못했다고들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전제 조건 중의 하나는 재원의 안정적인 확보입니다. 정부와 사회의 ‘간섭 없는 지원’이 대학의 자율성 확보를 뒷받침하는 최소한의 여건이라고 믿습니다.

자율화의 세 축: 입시 인사 재정

조영달: ‘목표실현불가능성의 정리’라고나 할까요? 학생․학부모, 대학, 고등학교, 정부 모두가 만족하는 입시정책은 정책수단의 부재나 주체간의 불신 때문에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차선의 방안”을 정립하고 이를 조금씩 개선하는 것이 정답일 수 있습니다. 더하여 대학 내에서도 단과대별로 차별화된 선발 기준을 설정하는 방안을 모색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전공에 따른 학생의 자질과 성취가 다를 수 있으니까요.
박찬욱: 학생 선발 방식의 밑그림은 잘 그려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 선발권을 갖겠다는 것이 본고사로 회귀하는 게 아니고, 소외 계층의 입학 기회 보장을 위한 입학 사정관 제도도 정착 중이니까요.
김신복: 학생 선발권은 당연히 대학에 돌려주어야 하는데, 우선 상당 부분을 교육부로부터 대학간 협의체로 이관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대학교육협의회에서 대학들의 우수학생 유치를 위한 지나친 경쟁을 어떻게 막느냐가 관건이겠지요.
김안중: 학교마다 입장과 처한 상황이 다르니까 조정이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 서울대 안에서도 16개 단과대학이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낼 때도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이제 서울대학교라도 세칭 커트라인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수능 점수 1, 2점이 그 학생의 잠재력을 모두 보여주는 것은 아니잖아요? 서울대만큼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학교가 두셋으로 늘어나면 국가적으로는 훨씬 이익이지 않겠습니까?
조영달: 인사 제도도 세계적인 연구 중심 대학과 직결된 사안입니다. 원칙적으로 대학의 인력은 교육과 연구를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만, 현재 서울대는 그러한 면에서 아쉬움이 없지 않습니다. 과거 해방과 근대화 과정의 관료적 조직과 기구의 형태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비판도 가능할 것입니다.
박찬욱: 설치령의 경직된 규정을 변경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부총장은 1인, 행정본부의 처실국이 6개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새 수요로 인하여 입학관리본부, 대외협력본부 등 사실상의 행정기구가 지원시설이란 이름으로 설치되었습니다. 총장이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이를 구현하려면 교수인력, 5급 이상 교직원의 임용 및 승진 등 인사에 관한 법령 상 제약과 정부 규제가 풀리고 총장에게 권한이 실질적으로 위임되어야 합니다.
김신복: 사실 인사권 확보는 어느 조직에서나 자율적 운영을 위한 요건입니다. 대학별로 어느 직급에 몇 명까지 임용할 수 있다고 명시된 현 인사규정은 직급에 관계없이 정원의 총수만을 제한하거나 급여의 총액만을 규제하는 등 보다 포괄적인 형태로 개선되었으면 합니다.

자율화에 따른 책임과 노력

김안중: 자율화 과정에서 서울대가 마치 민원 리스트를 내미는 모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자율성 확보에 따라 국가와 사회에 더욱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입시경쟁에서 서울대가 이기적인 모습만 보이는 것도 곤란합니다.
박찬욱: 자율성을 외치는 목소리가 대학 이기주의로 비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스스로 연구 업적과 성과가 향상되어야 하고, 승진과 정년 보장 등에서도 투명성을 확보해야 하겠지요. 부단한 제도개선을 포함한 우리 대학 내부의 개혁 의지와 그 실천이 절실합니다.
조영달: 자율화에는 대학의 책임 측면에서 교육 경쟁도 동시에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각 학문영역과 전공이 자기를 스스로 진단하고 공개적으로 검증받는 과정에서 자율화 조처의 정당성이 입증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울러 많은 시나리오를 만들고, 점검하여 우리 자신은 물론 다른 대학을 위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할 것입니다.
김신복: 자율성을 부여받을 만한 능력이 있는지도 검증할 필요가 있겠지요. 더불어 사후적인 평가와 감독도 회피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에 따라 지원이 축소되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자율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무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논의가 서울대의 자율화 추진을 위한 단초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랜 시간 고맙습니다.

2008. 3. 14
서울대학교 홍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