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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까지 끌어안는 사회가 꿈

2008.08.28.

소수자까지 끌어안는 법이 통용되는 사회가 꿈 여성 최초 대법관 김영란

2004년 여름 여성 최초로 대법관이 되었던, 그리고 당시 48세라는 파격적인 젊은 나이로도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김영란 동문(법대 1979년 졸업). 김영란 대법관은 수수하면서도 환한 웃음을 지닌 쾌활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웃는 얼굴 뒤로 엄청난 높이를 자랑하며 책상 위에 쌓아올려진 판결기록문을 보니 그녀가 일에 얼마나 많은 집중력과 노력을 쏟아내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보시다시피 매일 판결기록문을 읽느라 재판이 있을 때를 제외하곤 사무실 벗어나기도 힘들어요(웃음). 가족들의 희생이 있었다고 봐야죠.” 가족에게 성공의 영광을 돌리는 김영란 대법관은 매우 미안한 표정이었다. 특히 아이들에게 많이 마음을 못 써준 것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김 대법관은 자식 사랑을 남다른 교육관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남편 강지원 변호사와 함께 두 아이들 모두 인성교육 위주의 대안학교에 보낸 것이다.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좀 더디고 힘들지라도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독자적인 고민을 하도록 도와주고 싶었어요.”

김 대법관이 본 오늘날 서울대생들은 어떨까?

“대한민국에서 제일 우수한 학생들이 다니는 만큼 사회적 기대가 크잖아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시킬 필요가 있어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용기를 발휘해 보라고 하고 싶어요. 잘 닦여진 신작로가 아니라 길 없는 길을 개척해 나가라는 겁니다.” 그러고 보면 김영란 대법관은 여성으로서 판사라는 직업에 도전하고, 대법관이라는 직책에 도달한 ‘개척자’이다. 그녀는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직업 종류가 몇 배나 적다면서 현재 서울대생들이 진출할 곳이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법관으로서 현재 김영란 동문의 가장 큰 고민은 우리 사회의 정의로운 분배문제이다. 그녀는 민주주의가 자칫 다수의 사회만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역할을 법이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수자들 역시 다수자의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상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 계속될 그녀의 큰 꿈인 셈이다. 한 가지 논리로만 보지 않고 다양한 문제점을 직시하고자 한다는 김 대법관은 지난 2006년 새만금간척사업 문제의 대법원 판결 때 소수 의견으로서 환경을 우선하는 소신을 보이기도 했다.

김영란 동문은 딱딱한 판결문에 머리가 아플 때면 문학 작품을 읽는다. 서울대 재학 시절 교지에 직접 쓴 소설이 실리기도 했다는데, 학창시절 쌓았던 인문학적 소양이 그녀의 인간적인 판결의 원동력이 되었다. 남편이 진정으로 독서가 취미인 사람은 처음 본다 할 정도로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그녀에게 소설을 한 번 더 써볼 생각은 없느냐 물었더니 이제는 판결문 쓰기에 길들여져 문장이 너무 딱딱해졌단다. 그 어느 소설보다 감동을 주는 것은 소신과 정의를 실현하는 김영란 대법관의 판결문이 아닐까.

2008. 8. 28
서울대학교 홍보부
학생기자 송첫눈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