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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칼럼

관성의 법칙-이경우 교수

2008.04.03.

관성의 법칙

아래 빈 칸에 들어갈 적절할 말을 생각해 보겠습니까?
눈이 녹으면 (             ).

물리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어떤 물체의 운동 속도나 방향은 바뀌지 않는다는 관성의 법칙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대학과 연구소에서 연구를 계속하면서, 그리고 대학에 와서 학생들과 접하면서 ‘관성의 법칙’은 운동하는 물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생각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물체의 운동보다도 더 관성이 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를 좋아하면 웬만한 나쁜 점들이 있어도 계속 좋아하며, 싫어하면 몇 개의 장점이 있다고 갑자기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사실이다. 생각하는 방식도 한번 만들어지면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반복된다.

이 글의 시작에 던진 질문에 대해 어떤 답을 생각했습니까? 정답이 없는 문제로 다양한 답이 가능하지만,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이과 계열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지체 없이 ‘물이 된다’는 답을 떠올리며, 문과 계열 학생들은 보통 시간이 걸리며 ‘봄이 온다’거나 ‘사랑이 온다’와 같은 대답을 많이 했습니다.
이러한 대답의 차이는 전공에 따라서 생각하는 양식이 다른 것을 보여준다. 학생들만 그런 차이를 보이는 것이 아니고 사회 경험이 축적된 분들의 대답도 각자의 전공 배경에 따라서 거의 유사한 응답을 하였다.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생각 뿐 아니라 행동에도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 같다. 한번 잘못 만들어진 공부에 대한 습관이나 운동 자세를 고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게임이나 오락에 재미를 붙이면 다른 일을 하는 중에도 계속 머릿속에는 게임이나 오락에 관련된 내용이 떠다닌다. 물론 관성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한번 바람직한 행동이 습관으로 익숙해지면 어지간한 유혹은 쉽게 뿌리치면서 계속 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자주 자신의 사고 양식이나 습관, 행동을 바꾸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매년 1월이면 줄어들었다가 곧 다시 늘어나는 담배 판매량이 보여 주듯이, 그 노력의 대부분은 실패로 끝난다. 그 이유는 새로운 변화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믿어서, 변화를 가져올 만큼 즉, 관성을 이길 만큼 큰 노력을 들이지 않기 때문이지 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니다.

성적이 낮거나 학습 의욕이 없어서 또는 다른 이유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고 싶어 하는 학생들과 면담할 때, 우리 몸과 정신도 관성의 법칙에 지배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먼저 한다. 물론 학생을 기죽여서 변화의 의지를 꺽기 위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관성을 이길 수 있는 힘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따라서 변화를 위해서는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강력한 의지와 어려움 속에서 의지를 실천할 수 있는 계획을 같이 세워야 하며, 변화 과정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다.

관성의 법칙은 항상 물체가 운동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힘의 작용에 의해서 운동이 변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충분한 노력과 시간을 들인다면 우리의 생각이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은 언제가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한다.

<서울대사람들> 3호 게재 (2006. 1. 15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