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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칼럼

늘 그렇듯-장승일 교수

2008.04.03.

늘 그렇듯

이윽고 무대 한 쪽이 열리면서 한 노신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들어온다. 이어서 장엄하면서 감미로운 오케스트라의 반주. <이제 종착역은 다가오고 / 나 이제 마지막 커튼을 맞이하네 / ...> 미국의 목소리 프랑크 시나트라의 이 유명한 노래 My way를 모르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인생의 역정을 내 소신대로 살아왔고 그래서 후회도 없노라고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노래하는 시나트라에게 수많은 청중은 아낌없는 박수로 화답하곤 했다. 삶의 가을로 접어들기 시작한 나도 가끔은 이 노래를 들으며 지나온 시간을 되새기기도 한다. 시나트라의 노랫말처럼 당당하고 자신 있게 내 삶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사실 이 My way는 원래 Comme d'habitude라는 프랑스의 가요이었다. 시나트라의 노랫말 제목이 환기하는 영웅적 자신감과 비교해볼 때 이 원곡의 제목은 지극히 냉소적인 태도를 암시하고 있는데, 우리말로 옮기자면 “늘 그렇듯”, “건성으로”, “습관적으로”에 해당하는 뜻을 지니고 있다. <재빨리 옷을 주어 입고 / 늘 그렇듯 방을 빠져나오지 / 혼자서 커피를 마시고 / 늘 그렇듯 지각이지 / 소리 없이 집을 나오고 / 늘 그렇듯 바깥은 온통 잿빛 / 추워서, 깃을 세우지 / 늘 그렇듯> 이어지는 후렴. <늘 그렇듯, 하루 종일 / 뭐 하는 척 할 거고 / 늘 그렇듯 미소 짓고 / 늘 그렇듯 크게 웃기도 하겠지 / 늘 그렇듯, 결국은 살아갈 거고 / 늘 그렇듯>

아마도 이렇게 냉소적인 가사를 그대로 시나트라가 불렀다면 적어도 미국에서는 결코 성공을 거두지 못 했을 것이다. 할리우드의 영웅담이 그러하듯 시나트라의 My way는 우리 범부의 인생을 그리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Comme d'habitude가 우리 삶의 진실을 거짓 없이 보여주는 것 같다. 진실은 쓰디쓰지만, 환상은 달콤한 법이다. 우리 인생에 환상이 없으면 환멸만 남아서일까? 언젠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어떤 깡패 영화에서 젊은 주인공이 이 My way를 부르는 장면을 보는 순간 무척 희극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영웅이었고 영웅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멋있게 되새길 시간이 많은가 보다.

늘 그렇듯 관악 교정에는 여름이 찾아왔다. 늘 그렇듯 시험 치르고 학점을 주고받고. 그러고 나면 늘 그렇듯 방학으로 들어간다. 늘 그렇듯 방학 동안에 무언가를 해보려 하지만 그냥 공수표로 끝난다. 늘 그렇듯. 여름이 끝자락을 비치려고 할 즈음이면 늘 그렇듯 조금씩 조금씩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늘 그렇다 보니 새학기가 시작할 무렵 친구의 전화를 받는다. 늘 그렇듯 안부를 묻는다. “어떻게 지내니?” 들려오는 대답. “늘 그렇지 뭐.”

<서울대사람들> 6호 게재 (2006. 7. 15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