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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지성-양호환 교수

2008.04.04.

빛나는 지성

유명한 학교를 다닌다거나 오래 공부한다고 해서 저절로 빛나는 지성을 갖추게 되는 것은 아니다. 주변에는 명예로운 학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명석함에도 불구하고 지적이라고 인정하기 힘든 사람도 적지 않다.지성은 전공이나 학위의 다른 이름도, 부산물도 아니다. 주변의 무엇인가에 대해 항상 새롭게 보려 하고, 들으려 하고, 깨달으려 하지 않는다면 그는 지성의 이웃과 잘 지내고 있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스스로도, 남도 비판하기를 두려워하고 편협함을 소신으로 혼동하면서 더 없이 소중한 기름진 감수성을 말려버리고 있는 것이다.

다른 견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알리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가까운 사람이라 여겨 사물과 세상사에 관해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함부로 예상하며 다른 의견을 드러낼 기회를 가로 막은 적은 없는가? 혹은 다수의 표정을 살피면서 불편함과 어색함을 팽개치기 위해 적당히 시선을 맞춘 적은 있지 않은가?

평행선은 만나지는 않지만 헤어지지도 않는다. 다른 이의 말을 듣는다고 곧 그대로 따르거나 서둘러 반박할 필요는 없다. 서로가 같은 이야기를 할 것이라면 왜 대화라고 하겠는가? 이해하였다고 짐짓 차이를 얼버무릴 것도, 쉽게 설득할 것도 없다. 조급해하지 말고 차이를 존중하라! 그늘의 억압에서 벗어나 적당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 씩씩하게 같이 자라는 나무처럼.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에 대한 회의는 지성의 특권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사는가?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지금의 모습으로 당연한 것인가? 현재는 이렇게 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가? 왜 우리는 주체로서 복종하고 억압을 욕망하는가? 우리를 그렇게 욕망하도록 만든 것은 무엇인가? 이런 물음 없이는 지성은 우리에겐 옷장에 걸어둔 외투일 뿐이다.

스스로 그러려고 하지 않는 한 생각을 가둘 수는 없는 일이다.

한 시인의 동화에서 슬픈 나라에 사는 ‘장화 신은 슬픔’은 기쁜 나라로 가서 ‘장화 벗은 기쁨’이 되는 대가로 두 나라의 경계에서 병을 전염시킬지 모를 장화를 벗은 후 맨발로 길을 걷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지만 이 치열한 현실 속에서, 그리고 이 영화로운 대학에서 우리는 무엇을 괴로워하는가? 우리가 치룰 것은 무엇인가? 아파서 텅 비워본 적이 없는 가슴에는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없다.

“정신에 신겨 둘 양말을 뜨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누군가가 학자가 하는 일을 냉소적으로 이렇게 평하였다지만 실은 빛나는 젊음이 머무는 이곳에서 그들을 가르치는 이로서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서울대사람들> 6호 게재 (2006. 7. 15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