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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칼럼

아름다운 자연-여정성 교수

2008.04.03.

아름다운 자연

차가운 겨울을 버틴 소나무의 푸른빛이 묘하게 달라질 때면 어느 틈에 다가 온 봄기운을 느끼게 됩니다. 막 움이 틀려고 애를 쓰는 나뭇가지들은 바라만 보아도 보는 이의 마음을 들뜨게 만듭니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에 뒤이어 벚꽃의 하얀 잎이 관악을 덮고, 그 하얀 잎이 다 떨어지고 난 아래를 붉은 빛의 철쭉이 채워줍니다.

지는 봄꽃을 안타까워할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가 다르게 푸르름이 더해가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초록의 행렬이 시작됩니다. 곧이어 몇 안 되는 여름 꽃인 목백일홍과 무궁화가 등장하고, 짙푸르다 못해 숨이 막힐 정도인 녹음도 어느 날 갑자기 날씨가 서늘해지면서 그 빛을 달리하기 시작합니다.

마음을 아주 묘하게 만들어주는 잔잔하게 떨어지는 가을비가 몇 차례 지나가고 나면, 걸음을 매우 아끼는 저조차도 돌아다니고 싶게 만드는 전혀 다른 색깔의 관악산이 펼쳐집니다. 사라져가는 단풍의 모습이 눈에 밟혀 한참을 서성이다 보면 어느새 그 중 가장 썰렁한 겨울로 들어섭니다. 하지만 을씨년스럽기도 한 한겨울 풍경을 가끔은 하얀 눈이 포근하게 감싸줍니다. 아름다움보다는 불편함에 목소리가 올라가지만, 하얗게 둘러싸인 캠퍼스는 또 다른 흥분을 가져옵니다.

이런 사계절의 즐거움은 캠퍼스 이전 후에 옮겨 심은 비리비리한 나무들이 아름드리가 되어 관악산과 어우러지면서 점점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예전 정말 삭막하기 이를 데 없던 낡은 건물들도 이제는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과 함께 엮여 고풍스럽게까지 보입니다. 한 때는 콘크리트 한 복판에 난데없이 큰 구멍을 하나 뚫어놓은 것 같던 자하연도 이제는 그 주위의 나무들과 어우러져 아주 깊은 못처럼 보입니다. 버려진 들판처럼 보이던 버들골도 몇 가지 공사 후에 어느덧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들쑥날쑥 앞뒤를 다투어가며 솟아난 새로운 식구들도 관악의 푸르름에 힘입어 각각이 작품들처럼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무계획의 전형이라며 캠퍼스를 비판하는 분들께는 조금 미안하지만, 어쩌면 숨막히는 일사천리의 계획도시가 되지 못한 것은 오히려 행운이라는 생각까지도 듭니다. 회색의 콘크리트 길을 대신하여 색다르게 단장한 벽돌 길들도 아직은 엉성하지만 곧 자연 속에 어우러질 겁니다.

그런데 한참을 쓰다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 학생들도 곁에 펼쳐진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을까? 십여 년 전 봄 날, 생활대에서 공대까지 이어지는 뒷길을 걸으며, 학교 안의 벚꽃이 이렇게나 아름다운지 미처 몰랐다는 저의 말에 선배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여선생도 나이가 들었나보다! 주위의 경치가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 ’아마도 아직은 우리 학생들에게는 실감나지 않는 풍광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 하긴 어느 자연이 그들의 아름다운 젊음을 능가하겠습니까?

<서울대사람들> 6호 게재 (2006. 7. 15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