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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칼럼

너와 내가 우리가 되는 사회-김영정 교수

2008.04.04.

너와 내가 우리가 되는 사회

고등학교 시절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 서문 어디에선가 헤세가 고민한 중요한 3가지 인생 문제가 있는데 그것들은 ‘어떻게 사느냐’, ‘어떻게 사랑하느냐’, 그리고 ‘어떻게 죽느냐’의 문제였다는 글귀와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그 후 이 문제들은 저에게 화두로 다가왔고, 결국 저는 철학을 공부하는 철학도가 되었습니다. 대학 입학 이후 30여 년 동안 철학적 문제들과 씨름해왔지만 이 문제들은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으며 아마 앞으로도 결국 풀지 못할 숙제로 남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는 삶의 의미와 가치에 관한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가장 가치 있는 목적을 추구하며,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가장 가치 있는 성과물을 남길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좋은 삶일 것입니다.우리 서울대학교의 학생들은 훌륭한 고등교육을 거쳐 사회 각계를 이끌어갈 위치에 서게 될 것으로 저는 판단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에게 주어진 그러한 위치는 여러분들 개인에게 주어진 특권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짊어져야만 하는 의무의 확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그들과 더불어 상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을 희생해가면서까지 그들을 위해 헌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리적인 자아에 갇히지 말고, 심적 자아의 확대를 통해 너와 내가 우리가 되는 그리하여 모두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데 여러분들이 앞장서 주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사랑하느냐 하는 문제는 이성(logos)과 감성(pathos) 사이의 조화의 최적화(optimization) 문제인 것 같습니다. 사랑에 있어 나와 상대방의 최적화 상태를 맞춘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의 삶에서 사랑이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주에 만유인력이 없었다면 우주의 조화로운 운행이 불가능했듯이 인간들의 삶에 사랑이 없었다면 인간들 삶의 조화로운 진화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또한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 못지않게 그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을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나의 방식대로 사랑을 가꾸어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방식에 맞추어 사랑을 가꾸어가는 것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에로의 존재(Sein zum Tode)’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반성하게 하고 겸허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인간이 지닌 한계성에 대한 인식이며, 이 한계성을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죽음일 것입니다. 죽음의 문제는 학생 여러분들에게는 먼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죽느냐 하는 문제는 가치론의 중심적 문제로 우리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방향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추하지 않게, 고통스럽지 않게, 당당하게, 그리고 평화롭게 임종을 맞는 것이 좋은 죽음일 것입니다. 우리 인간 모두가 궁극적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는 죽음을 통한 인간의 한계성에 대한 명확한 인식은 우리 인간의 삶을 보다 폭넓고 깊이 있게, 그리고 욕심에 얽매이지 않고 진솔하게 영위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근원적 요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