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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칼럼

과 사이에서-최종고 교수

2008.04.03.

<민족의 대학>과 <세계의 대학> 사이에서

<민족의 갈 길을 묻거든 눈을 들어 관악을 보라>는 시어(詩語)를 가슴 설레며 들으면서 1975년에 대학원생으로 관악캠퍼스로 이사 왔다. 모교의 교수가 된 행운으로 작년 개교 60주년 환갑을 넘기면서 관악시대가 동숭동시대보다 길어지는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다. 1960년대의 동숭동 시절은 말할 필요도 없고, 관악시대에도 70년대, 80년대가 달랐고, 90년대를 지나 21세기의 오늘 서울대인의 모습은 또 다르다. 대학은 변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시대의 과제 앞에 명민하게 대처하지 않을 수 없다. 해마다 관악의 캠퍼스는 더욱 무성하게 아름다워지는데, 민족사에서 서울대의 위상은 시간과 정비례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다.

요즘은 민족보다도 세계와 인류를 더 많이 얘기하고 있다. 서울대도 세계 대학 속의 몇 위를 랭킹한다는 뉴스가 싫든 좋든 우리의 지표같이 되어 버렸다. 이것은 서울대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겠지만, 이런 맥락에서 서울대의 위상을 더욱 심각히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우리는 민족의 대학과 세계의 대학의 양자 사이에서 어떤 조화를 이루느냐에 우리의 정신을 집중해야한다. 민족의 대학으로서 ‘한국학’을 포함하여 한국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여야한다는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 전국에 다른 국립대학들도 있지만 서울대에게 특히 지워진 사명이 있다. 민족의 유산인 규장각을 갖고 있고, 규장각한국연구원으로 이름을 바꾸어 더욱 ‘한국학’을 진흥해보자는 이유도 여기 있다.

이러한 민족적 수월성(秀越性)이 자만과 권위의식으로만 머물 수 없는 것이 바로 국제적으로 무한경쟁에 가까운 국제경쟁 속에서 평가되고 랭킹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학도 국내연구로만 머물 수 없고, 그것이 영어로 표현되어 세계학계에 참여하고 인정을 받아야하는 것이다. 솔직히 이 점에서 우리는 아직도 많이 뒤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교수들의 연구업적도 출판부를 통하여 영어로 출판되고, 매년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되는 국제도서전에도 서울대출판물이 전시되고 출판을 의뢰받아야한다. 이것이 바로 서울대의 국제적 평가에 직결되는 것이다.

‘세계 속의 서울대’ 라는 생각은 하나의 모토로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대학본부와 각 대학, 연구소는 머리를 짜내는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학생들은 세계인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하기 위하여 사고와 행동을 그렇게 하려고 열심히 노력해야한다. 어찌 보면, 여건이 열악했던 50년대, 60년대에 영어책, 독일어책 한권 사기가 힘들던 그 때가 더욱 외국어와 개방적 사고를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요즘처럼 온갖 직접적 기회와 도구들이 많은 때 왜 어학실력은 더 떨어지고, 이상한 국수주의적 생각이 팽배하고 있는지 납득하기 힘들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 하버드, 베를린, 동경대의 학생들이 무엇을 생각하며 공부하는지 스스로 생각하며 공부하는 서울대생이 되어야한다. 중국에 갈 때마다 학생들의 진지한 향학열에 놀란다.

사회대 건물 중앙계단에 ‘한국 최대의 사회과학자’로 다산(茶山) 정약용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18세기의 한국의 지성이 당시 서양의 지성 괴테와 견줄 수 있을 만큼 코스모폴리탄적이었다. 모름지기 괴테와 다산 같은 코스모폴리탄적, 파우스트적 인간상을 21세기에 다시 한번 설계하여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는 서울대인이 되어야할 것이다. 이것이 민족과 세계를 연결하여 자신을 최대한으로 발전시켜가는 길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