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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 산책] ‘과학을 위한 과학’을 위하여 - 홍성욱

2008.04.03.

[과학사 산책] ‘과학을 위한 과학’을 위하여 - 홍성욱

“이공계 위기”가 터져나온 것은 지금부터 몇 년 전인 2002-2003년 이었다. 정부는 대통령 과학기술 보좌관을 만들고, 과학기술부에 R&D를 관장하는 혁신본부를 설치하고, 연구원의 정년을 보장하고, 공무원에 이공계출신을 뽑는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응했다. 그렇지만 지금 주변을 둘러보아도 이공계 위기가 해결된 것 같지 않다. 고등학교 학생들의 문과 선호는 갈수록 뚜렷해져서, 1996년에는 대략 절반의 학생이 이과를 선택했는데 지금은 38%의 학생만이 이과를 택한다. 우수한 학생들은 법대, 경영대를 선호하고, 이과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는 학생은 의대와 한의대처럼 안정적으로 높은 수입을 보장하는 대학에 간다.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학생 중에 상위권 학생들이 다시 의학전문대학원으로 빠져나간다. 고등학생 중에 과학자가 되겠다는 학생은 0.5%에 불과하며, 반면에 연예인이 되겠다는 학생은 25%에 달한다.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이공계를 택했던 60-80년대 상황을 얘기하면, 지금의 학생들은 이를 이해하지도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과학이 단지 어렵다는 이유에서 이를 기피한다.

우리 젊은이들 중에는 동남아에서 인기 있는 한국 드라마가 우리를 먹여 살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생산 현장에서는 우수한 기술개발 인력이 부족해서 공장이 문을 닫고 우리의 제품이 국제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는 실정인데도 말이다. 21세기가 지식, 문화, 디자인의 세상이 되어도, 경제의 기반은 결국 산업기술이다. 그리고 이 산업기술의 원동력은 과학과 공학에 있다. 한국의 자연과학은 조금씩 그 인프라가 부식되고 있는 건물과 같고, 이는 신명과 신념을 가지고 과학 연구에 자신의 젊음을 한번 바쳐 보겠다는 창의적인 인력이 부족하다는 데에 기인한다.

정부는 더 많은 연구비를 쏟아 부으면 이공계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수한 인력이 과학기술 분야로 들어오지 않고, 또 과학기술을 공부한 우수한 인력이 좋은 환경을 가진 직장에 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연구비의 양적 팽창만으로는 이공계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다. 정부의 정책은 지반이 약해서 균열이 생기는 건물에 색색으로 페인트 칠만 하는 행태이다.

젊은이들이 이공계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질타는 일제시대였던 1920년대와 1930년대에도 자주 등장했다. 당시에는 국내에서는 이공계를 전공할 고등교육 기관도 전무하던 시기였다. 일제 시기의 지식인들은 우리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젊은이들이 과학기술에 종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 한 예로, 노아(魯啞)라는 필명의 필자는 1921년 8월 <개벽> 14호에 발표된 “팔자설을 기초로 한 조선민족의 인생관”이라는 글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숙명론을 비판하면서, 우리 민족의 교육이 과학, 특히 “과학을 위한 과학”을 경시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런데 재래의 우리 신교육계에서는 과학, 특히 생물학같은 자연과학은 경(輕)히 여기는 폐가 있는 듯합니다. 이과교육은 이를 받는 학생은 물론이고 이를 주는 교사까지도 그 진의의(眞意義)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어학이나, 역사, 문학 같은 것은 상당히 주중(注重)하면서도 과학은 경히 여겼습니다. 해외의 유학생들을 보더라도 법, 정, 경제, 문학 같은 문과부류의 학과를 배우는 자만 많고 이과부류의 학과를 택하는 자는 적습니다. 의학, 공학 같은 응용이학을 배우는 자는 혹 있되 과학을 위해서 과학을 배우는 자는 거의 없다고 할만합니다.

지금의 상황과 1920년대 상황이 다른 것은 당시에는 문과를 전공한 지식인들이 이과, 특히 자연과학과 공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문인 최병화는 1928년 문예지 <별건곤> 제 14호에 실린 “동지로서 동지에게”라는 컬럼에서 다음과 같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M군! 즉 모든 것이 강보기(襁褓期)에 잇는 조선에 있어서 어느 과학 어느 학문이 필요치 않은 것이 어디 있으며, 어떠한 지식이 귀중 안 할 것이 있으랴마는 선배들은 다른 학과보다도 특히 자연과학 방면을 권하고 있네. 이제 인류 문명의 발달된 경로와 과학계의 대세를 살펴보면 진정한 의미의 진보와 발달은 자연과학이 융성하고 발달된 이후에요, 우리 조선에 있어서는 더욱이 과학 발전과 쇠퇴에 의하여 사회의 흥망성쇠가 좌우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네. ... 문학이나 미술이 전연(全然)히 필요치 않다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은 자연과학의 발달이 있은 후에야 필요할 것이요 그것을 연구할 재력과 여유가 있을 것일세. 왜 그러냐하면 물질문명이 어떤 정도까지 발달된 이후라야 정신문명이 건설될 수 있는 것으로 알 수 있으며 자연과학의 지시가 있은 후라야 정신과학이 완전한 논단(論斷)을 내릴 수 있는 까닭일세. 문학, 철학의 기원국(起源國)인 중국, 인도, 희랍, 서반아를 보게. 지금 그 나라들은 전체로 다른 국민에게 실패한 것과 동일한 결과를 맺지 아니하였는가. 그리고 독일과 불란서를 보게. 독일의 문학과 철학이 독일이 소유한 자연과학에 의하여 유지되며 광채가 나는 것이요 불란서의 미술과 문학이 또한 불란서의 자연과학을 기다려서 비로소 가치가 있고 성과가 있는 것일세. 그럼으로 나는 우리 조선의 신문화건설의 기조는 자연과학 연구에 있다고 믿네.

문학과 문예평론 분야를 국내에 소개한 본격적인 에세이에서도 과학에의 강조가 드러난다. 서경학인(西京學人)이란 필명을 쓴 문사는 1922년 3월 <개벽> 21호에 서양의 문학 사조를 소개하는 글에서, 오히려 조선의 문과 편향 현상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다.

청년남녀간에 문학이라든지 문사란 말이 많은 매력을 가진 듯 합니다. 이 현상은 우리 사회의 현상에 비추어보면 기뻐할 점도 있고 슬퍼할 점도 있습니다. 정신생활이란 것이 거의 없으나 다름없던 조선에 정신생활의 가장 중요한 식량이요 표현인 문학이 일어나려 하는 점으로 보아 기뻐할만 하고, 또 방금 신방식의 생활을 배워들이려하는 오늘의 조선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우선 부력획득의 원천이 되는 이과부류의 자연과학, 응용과학(의, 공, 농 등)의 지식인데 청년이 이런 방면으로 흥미를 가지는 것이 극히 박하고 문과부류로 들어가는 경향이 많은 점으로 슬퍼할만한 일이외다. 대저 문학이나 예술은 문명의 꽃인데 도덕과 지식과 부력의 기초가 없는 사회에 문학, 예술만 번창한다 하면 이는 소위 고양생화(枯楊生華 - 마른 버드나무 가지에 꽃이 핌)로 그 근간의 노쇠를 촉진하게 될 뿐일 것이외다. 그러므로 나는 현재 우리 조선에 문사가 많이 나기를 원치 아니하고 과학자, 그 중에도 자연과학자가 많이 나기를 원하는 바외다.

이들이 글을 쓰던 시점에서 8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태어난다면 무슨 말을 할까? 오래전부터 자연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아직도 과학을 위한 과학이 우리 사회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했음을 개탄하리라는 것은 틀림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