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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챙이가 되고 싶은 아이-하지수 교수

2008.04.04.

올챙이가 되고 싶은 아이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너희들은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 하고 물으니, 초등학교 1학년 조카아이가 대뜸 “의사요” 한다. 이어 여기저기서 “나는 경찰이요”, “나는 법관이요” 한마디씩 서슴없다. 다양하다면 다양하고 판에 박혔다면 박힌 대답들이다. 유독 나의 아이만 얼굴을 숙이고 말이 없다. 재차 물어도 얼굴만 빨개질 뿐이다. 둘이 되었을 때 조심스레 다시 물었더니 그 대답에 말문이 막힌다. “엄마, 저는 올챙이가 되고 싶어요” 한다. “뭐? 그럼 엄마, 아빠는 어떻게 하라고?” 했더니 엄마랑 아빠랑 성주랑 모두 세 마리의 올챙이가 되어 맑은 시냇물에서 헤엄치면서 영원히 살고 싶단다.

그게 벌써 3년 전이다. 우리 아이는 아직도 어른들이 장래 희망을 물으면 얼굴만 붉힐 뿐 대답이 없다. 당시엔 우리아이가 바보인가 하고 걱정도 되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야무진 생각인가 싶다.
시시각각 복잡하고 다양하게 변화하는 기술과 환경으로 인해 개인이 요구받는 업무량은 늘어나고 능력의 종류도 다양해졌으며, 단시간 장거리 이동과 즉각적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짐에 따라 대인관계의 수와 종류도 상당히 늘어났다. 뛰어난 능력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지녀야 함은 물론 지속적인 자기개발과 시대의 요구에 맞는 개성 있는 외모 가꾸기를 게을리 한다면 현대 사회에서 성공은 꿈꿀 수 없다. 현명한 우리 서울대인들은 변화하는 사회의 요구에 잘 적응하며 부지런히 앞서서 열심히 뛰어가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려서 계획한 본인의 목표인 그 ‘무엇’이 되기 위해 열심히들 분주하게 인생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할 일은 넘쳐나고 시간은 부족하다. 멈춰서 생각할 시간은 없고 그 자리에서 판단하고 당장에 해치워야 하는 일들의 연속이다. 분주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면 아주 가끔씩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모두 함께 뛰어가고 있기 때문에 나만 멈출 수가 없다. 철저하게 개인의 페이스를 잃고 있는 것이다.

열심히 뛰다 보면 대부분의 서울대인은 목표한 바를 이루고 그 ‘무엇’이 된다. 하지만 뛰는 동안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 목표를 향해 너무 열심히 뛰다보니 주변을 느끼고 음미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소중한 가족의 따뜻함을 주고받을 시간도 없고, 주변에 마음이나 몸이 아픈 이들을 위로할 시간도 없으며, 조용한 곳에서 머릿속을 맑게 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도 없다. 남을 생각할 시간도 없고 나를 생각할 시간도 없다.

우리는 ‘무엇’이 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무엇’이 될 것인지를 알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멈추지 못하는 달리기를 하다가 조만간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 것이다. 가끔 멈추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맑은 물에서 사이좋게 헤엄치듯이 그렇게 나의 시간과 인생을 만들어 가고 싶다.

<서울대사람들> 12호 게재 (2007. 12. 1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