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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칼럼

1%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강명구 교수

2008.04.04.

1%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서울대에 입학하면 선택된 사람이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실 그렇고,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사람들이고 또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이니까요. 그런데 대다수 서울대생들이 왠지 불안해 합니다. 친구를 만나도 불안하고, 데이트를 해도 불안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지만 해야 할 게 더 많으니 그렇기도 하고요.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는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더 많습니다. 이렇게 되면 불안뿐만 아니라 불만족, 짜증, 실망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마음의 이면에는 더 큰 불안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졸업 후에도 나는 1% 안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1%는 안돼도 5% 안에 들어가 그 지위가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까. 보장이 없지요. 상위 20%가 모두 1%, 5%를 목표로 달려들고 있는 걸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무엇보다 장래에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아갈 것인가 하는 질문을 자주 할 것입니다.대부분 세 가지 선택을 놓고 고민하고 있겠지요. 취직, 대학원, 자격고시 (사시, 행시, 회계사, 변리사 등등). 최근 한 가지가 더 늘었습니다. 의학전문대학원. 이것도 크게는 자격고시에 가까운 거겠지요. 1,2 학년 때는 이렇게 큰 틀에서 고민하다가, 3학년이 되면 어느 것이든 선택을 해야겠지요.

1학년에 입학하자마자 고시로 달려드는 학생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건 정말 불행한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금 악담 같습니다만 그런 인생은 겉만 1%이고, 실질에 있어서는 하류인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렇게 시키는 공부만 열심히 하다가 자유롭게 세상을 바라볼 시간과 친구와 지식의 보고가 있는데 바로 고시라니. 심지어 그렇게 해서 졸업 전 고시합격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불행하기 이를 데 없는 경우입니다. 다시 장래 선택 문제로 돌아와서 보면, 참 어렵습니다. 내 적성이 뭔지도 잘 모르겠고,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외환위기 이후 직업안정성이 사라져서 40세만 되면 퇴직을 걱정해야 하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어떤 사람으로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가. 아이쿠, 이건 더 어렵지요. 마음이 넓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리더십이 있는 사람,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 거기에 최근에는 몸짱까지. 공부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인간성과 몸짱까지 요구하니 더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 여러분이 참 힘들겠구나 싶어, 연민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고민이 많아 사는 게 괴로운데, 남들은 모두 부러워합니다. 부모님들 기대도 크고요. 혹시 “제 서울대 나온 애 맞어”라는 소리 들을까봐 겁도 나지요.

이런 고민 해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 나대로 생각한 몇 가지 방안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선 가장 손쉬운 방법 하나. 만일 지금이라도 여러분들이 20% 정도에 만족하겠다, 경쟁의 사닥다리에서 내려와서 좀 뒤쳐져 있는 듯하지만 여유 있게, 사람답게 살아보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마 지금의 고민 중 대부분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아마 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슬로우 라이프란 경쟁의 사닥다리를 내려오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잘 아시듯이 그 다음 편한 선택은 자격시험 공부지요. 시험 쳐서 어느 정도 확실한 자리가 보장된다면 그게 제일 편한 선택이지요. 의대로 몰리는 현상이나 고시로 몰리는 현상 모두 마찬가지지요. 정확한 자료가 없어서 좀 그렇기는 하지만 사회대 학생들의 반 정도가 고시준비를 하지 않을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물어봤는데, 그 정도는 될 것 같다고 동의하더군요. 의학전문대학원이 시작됐으니 의대 열풍이 또 부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그다음 취직준비를 많이 할 겁니다. 우선 영어시험, 그리고 요즘은 제2 외국어를 하나 더 해야 한다고 하지요. 텝스에 토익에 제2 외국어까지 해야 하니. 거기에 학점관리까지. 죽을 지경입니다. 교수님들에게서 서울대생의 학력 저하를 걱정하는 소리도 가끔씩 듣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생각합니다. ‘Seven Eleven 族’이란 말을 아시지요. 7시에 도서관에 등교해서 11시에 하교하는 학생들을 Seven Eleven族이라고 한답니다. 이런 학생들 많습니다. 여러분들 상당수도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위 1%의 수월성을 가진 학생들이 고시와 의대로 (몇 년 전부터는 교대와 사범대까지) 몰리는 나라는 한국뿐일 겁니다. 우수한 학생들이 취직공부에 몰두하는 나라 역시 한국뿐일 겁니다. 창피한 일이기도 하고, 나라의 장래가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이공계 기피현상, 고시와 의대 열풍, 세븐일레븐족, 이건 학생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직업안정성을 없애고 모든 직업을 불안정하게 만든 사회 탓입니다.

IMF 경제 위기 이후 이런 직업 안정성이 더욱 약화됐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평생직장은 없다, 내 살길 내가 찾아야 한다, 세상에 믿을 놈 없다, 뭐 이렇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여러분들 역시 1%가 안되면 5% 정도의 안정이라도 보장받으려고 고시공부, 취직공부에 열심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게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적 탐구심과 자유와 낭만, 사랑도 해보고 절망도 해볼 20대 청춘들이 장래를 걱정해서 영어공부, 취직공부에 매달리고 있으니. 나라 전체의 입장에서도 이건 참으로 위험한 상황입니다. 창조적 능력을 갖춘 인력들이 안정된 직업을 찾아서 의대로 가고 고시로 몰리고, 어학공부에 몰두하는 상황은 사회의 지적 생산력에 치명적 타격을 줄 것입니다.

그동안에는 서구 선진국이 만든 지식과 정보를 수입해서 써왔지만, 이제 더 이상 남의 지식을 빌려다 응용하고 적용하는 방식으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치권은 창조적 인력 양성을 걱정하기는커녕, 입학시험제도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

나라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여러분들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해주자면 이렇습니다.
첫째, 기능적 1%가 아니라 창조적 1%를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자유롭게 사고하고, 지적탐구심에 불타는 시기가 1년 2년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취직걱정은 잠시 잊고, 좋은 교수님이 하는 강의에 몰두하고, 방학에는 몇 십 권의 책도 읽어보는 식으로 몰두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겁니다.

한국영화가 잘 나가지 않습니까. 한국 영화판에서 감독들의 평균 수명이 10년이라고 합니다.
3년에 한 편씩 3편 정도 만들고 은퇴한답니다. 퇴출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자신이 가진 재주를 몽땅 쏟아 부어서 3편정도 만들고 나면 아이디어가 고갈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소수의 잘 나가는 감독들은 다르답니다. 그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책도 많이 읽고 생각의 깊이도 있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소설과 역사, 과학과 테크놀로지에 대한 독서량이 대단하고, 기초가 잘 돼 있는 것이지요.
단단한 독서력 위에서 상상력이 나오는 것이지, 재주만으로는 오래 못 버틴다는 좋은 사례입니다.
창조적 1%는 많이 읽고 많이 쓰고 생각하는데서 나오는 것이라 믿습니다.

둘째, 길게 보고 선택하라는 것. 뭐를 길게 보라는 건가요?
졸업 후 취직을 하든, 대학원에 가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10년 정도의 시간지속에서 견주어보면서 생각하라는 겁니다. 눈앞에 보이는 떡을 탐하지 말고, 길게 보면서 판단하고 행동하면 사람의 크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최근 언론계에서 회자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S재벌 계열사가 얼마 전 유력 일간지 D일보에서 스카웃한 법조 전문기자 이야기입니다. 5년간 억 단위로 두 자리의 연봉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이 분은 졸업 후 법률관련 전문지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열심히 한 것은 물론 연수기회가 있을 때를 이용해서 미국 변호사 자격증도 땄다고 합니다. 중앙일간지로 옮기고 다시 유력 신문으로 스카웃 됐고. 이 사람은 전문지식만 잘 갖춘 게 아니고 한국 법조계의 네트워크와 인맥에 대해서도 가장 잘 알고 있는 기자였다고 합니다. 그걸 S기업이 산 거겠지요.

15년간 한 우물을 파서 가장 잘 나가는 법조 전문기자가 된 것이지요. 더구나 최근 대기업은 신입사원을 별로 채용하지 않고, 중견사원을 주로 뽑습니다. 제가 잘 아는 신문사 방송국의 채용방식이 모두 바뀌었습니다. 일하는 능력과 사람됨이 검증된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지요. 가장 타격을 많이 입을 사람들이 서울대 졸업생입니다. 시험 치는데 자신 있는 사람은 많은데, 조그만 회사에서 시작해서 길게 보고 자신의 능력을 쌓아가는 인내력과 장기적 안목을 갖춘 사람은 적기 때문입니다.

셋째,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인력관리를 책임진 임원들이 서울대생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입직원으로 입사하면, 발로 뛰고 잡일도 마다하지 않고 나서서 해야 하는데, 많은 서울대 졸업생들은 마치 자신이 최고경영자처럼 경영방침이 어떻고, 시장동향이 어떻고, 하면서 중역처럼 회사 걱정을 많이 한다는 겁니다. 그래도 능력이 있어서 과장을 거쳐서 부장이 되면, 또 문제가 생긴답니다. 부장은 주어진 일을 잘하기보다, 부서의 직원들을 독려해서 부서 전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어야 하는데, 조직을 이끌어가는 능력, 리더십, 인간관계 조정력 등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개인적 능력이 있어서 이사로 승진하면, 문제가 여전히 있다고 합니다.
많은 대기업의 경우 중역이 되면, 회사조직을 넘어서 글로벌하게 사고할 수 있어야 하는데, 회사의 틀을 못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국제적 감각, 세계적 수준에서 사고하는 훈련이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개인의 능력뿐만 아니라, 조직을 장악하고 끌어가는 능력, 국제적 감각과 시야를 키워야 하는 것이겠지요. 불안 해소를 위한 조언이 아니라 어려운 주문을 한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에 대한 기대가 커서 그런 것이라 생각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이 글은 언론정보학과 강명구 교수가 서울대 학생들을 위해 쓴 칼럼으로, 기초교육원에서 발간하는 계간지 '열린지성' 2호에 게재한 글을 요약한 것입니다.
전문을 보시려면 첨부된 pdf 파일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1%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