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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 공개! 서울대의 보물 창고[제1편]

2008.07.28.

전격 공개! 서울대의 보물 창고

제1편: 인류 기록 문화의 산실,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서울대가 보유ㆍ관리하고 있는 문화재는 교육ㆍ양성하고 있는 인재들만큼 다양하고 소중하다.
우리의 과거를 전해주는 통로인 동시에 인류의 미래와 연결되는 거멀못이기 때문이다.
소프트파워의 원천인 문화 컨텐츠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오늘날, 서울대학교 곳곳에서 한국 문화의 실체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들을 연속 기획으로 소개한다.

최근 끝난 인기 사극 『이산』에서 정조는 완공된 규장각을 바라보면서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장용영과 함께 정조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규장각은 조선 후기 르네상스의 핵심이자 상징이었다. 원래 규장각은 역대 군주의 친필ㆍ저술ㆍ인장ㆍ초상화 및 왕실 족보 등을 관리하는 왕실 부서였으나, 정조가 1776년 즉위하면서 이외에 전임(專任) 문신들이 학문을 연구하고 왕의 자문에 응하며 국정의 참고 자료를 수집ㆍ보관하는 동시에 출판하는 일까지 맡게 되었다.

19세기 후반 국운이 쇠하면서 규장각의 역할이 축소되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되었다가 광복 이후 서울대학교 도서관이 승계ㆍ관리해 왔다. 1990년 독립된 규장각 건물이 완성되어 소장 도서를 이관하였고, 92년에는 규장각이 서울대학교 부속기관으로 중앙도서관에서 독립하였으며, 2006년 한국문화연구소와 통합,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으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현재 규장각에는 2만8천여종, 26만여건의 전적ㆍ고지도ㆍ서화ㆍ책판 등이 소장되어 있고, 그 중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등 7종 7,078책은 국보로, 『목우자수심결』ㆍ『벽온신방』 등 7종 29책과 『곤여만국전도』 목판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조선왕조실록』과 『의궤』는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해서 우리만이 아닌 전 인류의 문화재로 자리매김했다.

규장각의 권기석 학예연구사는 “가치 있는 문화유산이 질적, 양적으로 집중되어 상대적으로 빛을 못 보는 문화재들도 없지 않다”는 안타까움을 표했다.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슈퍼스타’에게 세인의 이목이 집중되다가 보니까 그에 버금가는 학문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대체 어떤 보물이 얼마나 있기에 그런 것일까? 대중적 인지도를 기준으로 규장각에 가면 꼭 보아야 할 유물 일곱 가지를 골랐다.

조선왕조실록1. 조선왕조실록 (1,229책)
1973년 12월 31일 국보 151-1호, 151-3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 10월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행적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의 역사를 정리했는데, 1대 태조부터 25대 철종에 이르는 472년(1392-1863)의 기록을 편년체로 서술하였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일부 소실되기도 하였으나 유일한 완질인 정족산본이 바로 규장각에 보관되어 조선 전기 연구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2. 십칠사찬고금통요(十七史纂古今通要, 1책)
조선 초기에 원나라 학자 호정방(胡庭芳)이 엮은 중국 역대의 사서(史書)에서 중요한 부분을 뽑아 엮은 것을 계미자(癸未子)로 뽑아서 간행한 책이다. 이는 1403년(태종 3)에 주조한 조선 최초의 동활자(銅活字)인 계미자로 인쇄, 독일 쿠덴베르크가 활자를 사용한 1453년보다 반세기 가까이 앞선다는데 의미가 있다. 1973년 7월 10일에 국보 148호로 지정되었다.

3. 승정원일기(3,243책)
조선후기사 연구의 1차 자료이다. 조선시대 왕의 비서 기관인 승정원에서 왕명 출납, 행정 사무, 각종 의례 등에 대해 기록한 일기로서 조선 건국 초부터 정리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 현재는 인조 원년(1623년)부터 고종 31년(1894년) 6월까지 272년간의 기록이 남아있다. 기록방식은 한 달 기준으로 책머리에 월간 경연 상황, 내전(內殿)의 동향을 기록하고 다음에 승정원 관리 및 당직자의 표시와 출근 실태를 표시한 후 마지막에 구체적인 내용을 기재했다.

4. 의궤(儀軌, 600여종, 3000여책)
프랑스와의 외교 문제로 비화되었던 외규장각 도서의 핵심으로, 또 유네스코의 세계기록문화유산 지정으로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의궤는 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에서 거행한 주요 행사를 기로고가 그림으로 남긴 보고서 형식의 책을 일컫는다. 국왕의 혼인, 세자의 책봉, 왕실의 장례, 궁궐의 건축, 친농(親農)ㆍ친잠(친잠) 행사, 중국 사신의 영접 등을 그리고, 기록했다가 후대인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편찬했던 것이다. 서양은 물론 중국과 일본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이러한 기록 문화는 우리 전통의 생생한 모습과 용어를 이해하고 재현하는 밑바탕으로 활용되고 있다.

5. 곤여전도목판(3점)
남회인(南懷人, 원명 Ferdinand Verviest)이 1674년 중국 북경에서 제작한 세계지도인 『곤여전도』를 증간(增刊)하기 위해 1860년(철종 11)에 만든 목판이다. 벨기에 태생의 남회인은 예수회 선교사로서 중국에 와서 서양의 천문과 과학을 소개, 청과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세계지도의 보급을 위해 목판을 제작한 조선 정부의 서양 세계에 대한 관심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전체 목판 4매 가운데 3매만이 전하고, 1986년 11월 29일에 보물 제882호로 지정되었다.

대동여지도6. 대동여지도(22첩)
규장각 전시실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660*410cm의 거대한 대동여지도는 22개의 첩을 모두 연결한 것이다. 조선시대 지도학의 모든 성과들을 기초로 만들었는데 대략적인 축척은 1:16만 정도이다. 전통적인 산수분합의 원리를 반영하는 한편 각종 범례의 사용과 더불어 도로에 10리마다 표시를 하여 거리를 가늠하게 하는 동시에 예술적 아름다움까지 갖추어 조선시대 지도의 최고 걸작이라 할 수 있다.

7. 석봉서법(石峰書法)
조 중기의 명필 한호가 중국의 시문을 해서(楷書)로 쓴 필첩이다. 서법의 일가를 이루었던 만큼 많은 서체가 남아있는데 본 첩은 음각으로 판각했다. 이백과 왕희지에 관련된 글 10편과 이백의 시 2편이 실려 있다.

대중과의 역사 여행을 준비하는 규장각

국내 한국학 연구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규장각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역사의 중요성과 전통을 알리기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상설 전시실의 문화재들을 6개월마다 교체하고, 연1회 특별 전시회를 통해 교내외 관심의 고취를 꾀하고 있다. 또 2008년 봄부터는 자원봉사를 중심으로 영어 설명이 가능한 학생들을 가이드로 배치, 외국인 관람객들의 호응을 받았다. 아울러 2학기부터는 기록 문화유산의 의미와 연구 방법을 전하는 강좌를 개설, 보다 많은 학생들에게 규장각의 가치를 전할 예정이다. 서울대의 첫 번째 보물 창고 규장각, 열려 가는 문틈으로 찬란하게 빛날 우리의, 그리고 인류의 유물들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2008. 7. 28
서울대학교 홍보부
에디터 김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