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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아름이’들의 희로애락

2008.08.21.

마이너리티 리포트,‘공대여자, 간호대 남자’

‘아름이’를 기억하는가? TV 광고에서 한 명뿐인 여학생에게 엠티 가자고 조르던 공대 남학생들이 외치던 이름이다. 서울대의 ‘아름이’들은 누구일까? 90%의 이성에게 둘러싸여 공부하고 생활하는 10%의 서울대인 4명을 어렵사리 모아 학교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희로애락을 들어보았다.

홍일점 vs 청일점

한진화 : 물리학과는 한 기수가 40~45명 정도이고, 그중에 여자가 3명 정도예요. 학번마다 편차가 있지만, 보통 성비가 13:1~20:1 정도로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서종갑 : 불어교육과는 한 학번이 8~9명 정도인데, 그중 남자는 한두 명이거나 아예 없어요. 과 전체 종강파티에 가도 남자는 한두 명에 불과해요. 교수님은 모두 남자분이신데 반해, 학생은 압도적으로 여자가 많습니다.
고종진
: 간호대 학부 전체 260명 중 12명만이 남자입니다. 연건캠퍼스에 간호대 전용의 주택형 기숙사가 있는데, 남자들은 모두 한방에 모여 살아요. 교수님도 대부분 여자분이시라 남자는 간호대 안에서 정말 드뭅니다.
이소원: 기계항공공학부 07학번 전체 160여 명 중 여자는 단 12명이예요. 한 학번을 3개로 분반하는데, 05학번의 경우 50명이 넘는 남자와 여자 한명이 한 반인 경우도 봤어요. 게다가 교수님도 한분 빼고는 다 남자분이다 보니 여자공대생들은 어쩔 수 없이 남자들 사이에서 적응해야 해요.

성적 소수자, 학교생활은?

이소원 : 일단 여자가 별로 없다보니, 교수님들께서 한명한명 다 기억하세요. 조금만 지각해도 금방 티가 나고, 수업시간에 질문도 많이 하세요.(다들 측은한 표정) 엉뚱한 일들도 많아요. 한번은 3일 밤을 새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조원이 거의 다 남자다 보니 남자 기숙사에서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곳에 여자화장실이 없어서, 아침까지 견뎌야만 했던 적도 있어요.(이구동성으로 ‘맙소사!!!’) 하지만 새터나 술자리에서 여자라서 소외되지 않도록 선배들이 많이 배려해줘요. 술을 강권하지도 않구요. 그래도 술 잘 마시는 여자는 인기 최고예요.
고종진: 130명의 여자들이 살고 있는 기숙사에서 남자 6명과 모여 살고 있어요. 방 창문만 열면 복도에 여자들이 걸어다녀요. 한번은 옷 갈아입는데 창밖으로 여자들이 지나가서 기겁한 적도 있어요. 수업시간에도 간호대 남자는 교수님들께 주목 받기 때문에 여자 동기들이 많이 부러워해요. 병원실습 때도 환자들에게 인기 최고예요. 하지만 새터 갔을 때 남자 방이 따로 없어서 집행부 방에서 자기도 하고, 장기자랑 때 누나들 요구로 ‘누난 내 여자니까’ 노래만 20번 넘게 부르기도 했고, 다른 조 남자 신입생들과 여장을 했던 추억(?)도 있어요. (일동 경악!!!) 과티를 탑으로 만들자는 농담도 나오더라고요. (이제는 극악!!!). 절대다수 여자와 극소수의 남자라서 그런지 그 정도로 편한 것 같아요. (수습 국면…) 사실 남자들 속에 있는 여자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만, 여자들 속의 남자는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공동체에 스며들기 힘든 것 같아요.
한진화 : 홍일점이라 불편한건 없어요. 수업에는 타대 생들도 많이 들어와서 여자가 생각보다 적지 않거든요. 다만 과에 남학생들만 있다 보니 과방이나 전산실이 정리가 안 되고 어지럽고, 시험 때 과방에서 의자 붙여놓고 뒹굴며 자는 남자들도 있구요. 하지만 엠티 갈 때 무거운 짐도 들어주고, 설거지나 청소도 남자들이 나서서 해요. 여자가 적다 보니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마초이즘에 대해 많이 우려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아직 경험한 적은 없어요.
서종갑 : 불어교육과 회화수업은 조를 짜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들 남자하고는 같은 조를 안 하려고 해서 수업에 의욕을 잃은 적이 있어요. (정말 풀이 죽은 얼굴) 다만 과에 몇 안 되는 남자라 교수님들께서 챙겨주시는 덕분에 여자 동기들의 부러움을 많이 받아요. 그런데 엠티 가면 남자들이 짐이나 일을 거의 다 떠맡게 되요. 어쩌다 청소나 설거지를 등한시 하면 여학생들에게 한소리 듣기 일쑤구요. (뭔가 맺힌 듯…) 그러다 보니 ‘홍일점은 살 수 있어도 청일점은 힘들다’라는 말을 체득하게 되네요.

다수의 문화에 녹아들기

서종갑 : 처음엔 여자들 대화에 끼지도 못해서, 그들의 관심사를 이해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어요. 심지어 장기자랑을 위해 여자들에게 인기 많은 아이돌 스타의 댄스까지 연습한 적도 있어요. (의아한 시선집중) 모임도 술보다 ‘대화’ 중심이고, 술을 마셔도 과일소주 피처 2병을 넘지 않고, 또 다들 12시 전에 귀가하는 분위기라서 대체로 분위기 좋은 찻집에서 밥을 먹죠. 그러면서 저도 변해가는 걸 느꼈어요. 어느 새 저도 남자들을 만날 때 분위기 좋은 곳을 찾거나, 2-3명의 소모임을 선호하게 되더라고요. 덩달아 말도 조신하게 하게 된 것 같아요. (좌중 포. 복. 절. 도)
한진화: 한번은 교수님들이 학생들한테 PC방에 게임하러 가자고 하셨는데. 그럴 때 살짝 소외감을 느껴요. 그런데 어느새 남자들이 주로 하는 비디오 게임들에 대해서 잘 알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굉장히 해 보고 싶어지더라고요. 특히 ‘위닝’이라는 축구게임은 정말 해 보고 싶어요.
이소원 : 남자가 많다보니, 일단 모이면 무조건 소주를 마셔요. 술모임도 많구요. 한번은 저희 과 사람들이 독문과 장터에 가서 막걸리를 동내고 온 적도 있어요.(공감하는 일동) 이러다 보니 고교 동창들한테 이제 남자 다되었다는 소리를 종종 들어요. 화장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데다가, 스파게티보다 삼겹살을 더 좋아하게 되었거든요. 여자들만의 문화에는 문외한이 되어가는 느낌도 들어요.
고종진 : 모임에서 술보다 안주가 더 중요해요. 안주가 적거나 없으면 모임이 안 되는데다 술보다 대화 위주의 분위기거든요. 또 여자들만의 노래방 문화도 있어요. 남자들은 앉아서 노래만 부르는데, 여자들은 정말 격하게 놀더라고요. 그렇게 놀다 지치면 앉아있던 저한테 ‘좀 쉴 테니 발라드 불러봐라’고 해요. (다시 숙연해지는 분위기) 이런 환경에 있다 보니 다들 저한테 예전보다 섬세해졌다고들 해요. 차와 디저트를 즐기는 여자들의 스타일에도 익숙해져 갑니다.

연애, 풍요속의 빈곤

한진화 : 남자밖에 없다 보니, 여자들 미팅은 잘 안 들어와요. 지금까지 한 번도 미팅 못 해봤어요. 연애 하려면 주로 동아리에 가입하거나, 알아서 소개팅 하는 분위기예요. 여자가 적어서 과내커플의 가능성도 적지만, 인식도 부정적이거든요. 대체로 남자 많은 과에 있는 여자라면, 남자 만나기도 쉽고 인기도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아요.
고종진 : 많은 남자들이 간호대 여자들과 함께 생활하는 저를 부러워해요. 고교담임선생님께서도 졸업 때 ‘넌 이제 인생 폈다’고 말씀하셨을 정도예요. (작렬하는 파안대소) 하지만 주변에 친한 여자가 너무 많아 보여서 소개팅 못 시켜주겠다는 경우도 있어요. 간호대 남자라면 연애하기 쉬울 거라는 인식이 있지만 그렇지도 않아요. 주변에 여자들 시선이 많으니 더 힘든 것 같아요.
이소원 : 어떤 선배가 기계과에 오면 어쩔 수 없이(?) 한번 이상은 남자에게 대시를 받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오히려 남자들이 과 밖에서 이성을 만나려고 애쓰는 것 같아요. 그런데 캠퍼스커플이 된 경우 굉장히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많아요.
서종갑 : 저희 과에는 캠퍼스 커플이 하나뿐일 정도로 서로에 대한 이성적인 관심을 의도적으로 자제하는 분위기예요. 과 규모가 작다 보니,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게 되어서 연인이 되기 전에 너무 친한 친구가 돼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제 개인적인 경우, 연애할 때 여자 친구를 안심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해요. 불어교육과 여자들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여성스럽고 매력적이다’거든요. 그래서 연애를 시작하면 의식적으로 동기들과 거리를 두게 되요.

주변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진화 : 사람들이 ‘여자가 적은 곳에 있으니까 학교에서 꽃처럼 지내겠네’ 라는 말을 쉽게 해요. 그런 말을 들으면, 저희가 꼭 상품화 된 것 같아서 서운합니다. 사실 다른 여자들과 별반 다름없는 대우를 받아요. 하지만 수많은 남자들과 생활하면서 성격도 둥글둥글해지고 남자들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니 이런 환경에서 얻는 것도 많기는 해요.
고종진 : 간호대 남자라고 해서 이상하거나 안쓰럽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누구나 공부하고 싶은 게 있고, 하고 싶은 게 있잖아요. 간호대에 왔다고 해서 그 환경이 득이나 실이 된다기보다는 본인이 어떻게 하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겠지요.
이소원: 일단 여자가 기계과에 간다는 것 자체에 어머니께서 많이 반대하셨었어요. 차라리 약대나 사범대를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적성이 성별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신 있게 자신의 적성을 찾아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원하는 과에서 원하는 공부를 하는 것에 만족해요. 여자라고 기계과에 오지 못할 이유는 없어요. 혹시 망설이는 분이 있다면 용기를 가지세요.
서종갑 : 남자선배들이 우리는 장미들과 함께 생활하는 가시와 같은 존재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환경을 통해 저는 여자에 대해 더 이해하게 됐어요. 세상의 반은 여자인데, 이 세상의 반을 너무나도 잘 알 수 있는 환경이거든요. 커다란 행운이지요.

2008. 8. 21
서울대학교 홍보부
학생기자 이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