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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글로벌 브랜드 창출, 디자이너 심설화 동문(의류학 1981년 졸업)

2008.09.11.

시대의 흐름을 짚어야 영감이 생겨 패션 디자이너 심설화

‘나는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발견한다.’ 디자이너 폴스미스의 명언은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나의 양 어깨에 큰 짐을 지워주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 영감의 가능성에 대한 의문과 두려움은 배가 되었고, 점차 작아지는 내 모습에 우울해질 무렵, 우리나라 기성복 1세대 디자이너로서 열정이 넘치기로 유명한 심설화 선배(의류학 81년 졸업)와 하루를 함께 할 기회를 잡았다.

# 10:00 A.M. 심설화 베라카 사무실
깨끗하고 깔끔한 사무실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여러 가지 옷감을 비교하기 위해 커다란 보드에 정리해 놓은 패션 사진과 옷감이었다. 'Soft Drapery'라는 옷감을 주제로 만든 한 보드는 수업 시간에 만들어 본 것이었는데, 학교에서 고생스럽게 배운 것이 모두 필요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끔 힘든 과제에 투덜대던 내 자신을 반성했다. 세상에 있을 법한 모든 색을 모아 깔끔하게 정리한 샘플 원사 수집 보드도 마찬가지였다. “보다 정확하게 어울리는 색을 찾기 위해선 이 정도 수집 보드는 수 백 개라도 만들어야지”라는 심설화 선배의 따끔한 말에선 작은 차이라도 용납하지 않는 그녀의 꼼꼼함이 보였다.

# 1:30 P.M. 해외 시장조사 결과 보고
28년 동안 디자이너의 길을 걸으면서 최근 4~5년전까지 파리 컬렉션을 해왔던 그녀는 이제 GAP, ZARA, UNIQLO 등의 주도적인 글로벌 중저가 브랜드와 경쟁하기 위한 한국의 글로벌 브랜드를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해외 시장조사를 자주 하고 있는데, 이 날에는 일본을 방문해 시장조사를 했던 직원들의 결과 보고 미팅이 있었다.
“이제 패션은 디자이너의 영감만을 담는 것뿐만 아니라 객관성을 지녀야 하고,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야 해요. 트랜드라는 것은 정치, 경제, 문화 등의 현상에 의해 나오는 흐름이죠. 이 시대의 정보를 좀 더 빠르게, 좀 더 정확하게 짚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심설화 선배는 해외 시장조사 결과를 검토하며 직원들에게, 더욱 많은 사람들의 감성을 사로잡을 수 있는 미(美)를 보는 눈을 키우고 공부하라는 충고의 말을 덧붙였다. 이 말에 패션 공부에 자신이 없었던 내게 부족한 것이 과연 영감이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유행을 누구보다 먼저 잡아낼 수 있는, 최근의 경향에 대한 충분한 공부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지.

# 3:00 P.M. 매장 인테리어, 상품기획회의
상품기획회의자신의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믿는 심선배는 해외로 진출하는 브랜드에서 여타 중저가 브랜드에서는 표현해낼 수 없는 감성과 디자인을 선보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인다. 의류 디자인은 거의 다 되어 있는 지금, 상품 기획회의에서는 브랜드의 이미지와 감성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매장 인테리어와 상품 구성, 전략 코디네이션의 비중 조절 등의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의류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의류 상품기획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기에 매우 진귀한 경험이었다. 상품을 출고시키기까지 소재와 색상의 개발 및 선정, 옷의 디자인, 개별 상품들의 색상 및 디자인 조화, 코디네이션 등 매우 다양한 부분에 세세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보고, 보다 꼼꼼하고 총체적인 시각을 키워야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 5:00 P.M. 꿈의 재발견, 아쉬운 헤어짐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뽑아내 작업하고 있다고 생각해. 상상만 해도 흥분되는 일이지 않아? 글로벌 시대에 걸 맞는 꿈을 가졌다는 것, 내 디자인을 펼쳐 보일 수 있다는 것...” 심설화 선배는 결코 자신의 커다란 꿈에 움츠러드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그 상황을 흥미진진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더 열심히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디자이너 심설화가 있게 된 배경이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꿈이 나의 어깨를 누르는 짐이 아닌 내 발전을 위한 도약의 날개가 되어줄 수 있음을 깨달았기에 기분이 매우 홀가분했다. 내가 좋아하는 패션에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 펼쳐져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학교 수업이 더욱 기다려진다.

정규진 (의류 07)
<서울대사람들> 15호 게재 (2008. 9. 4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