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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의 '개교 원년' 찾기-조국 교수

2008.09.16.

서울대의 '개교 원년' 찾기
글 : 조 국 (법과대학 교수)

'대한민국의 뿌리를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찾듯이 서울대의 기원은 최초로 개교한 단과대학에서 찾아야

서울대 ‘대외협력본부 부본부장’이라는 보직을 맡고 있다 보니 외국 대학의 총장 등 관계자를 만나고 서울대를 소개할 일이 매우 많다. 그런데 이 때 필자는 서울대가 ‘꿀린다’는 느낌을 왕왕 갖게 된다. 물론 교수나 학생의 능력 때문은 아니다. 서양의 저명대학은 자신의 역사가 수백 년에 이른다고 뽐내고 동양의 저명대학도 백 년을 가볍게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데, 서울대는 학교가 1946년에 만들어져 그 역사가 60년을 약간 넘었다는 공식 안내자료를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외국 대학의 역사를 들어보면, 그 시발점은 자그만 교육기관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개교시 현재의 이름을 쓰지 않았던 경우도 흔했고 여러 개의 작은 교육기관이 현재의 대학으로 합쳐진 경우도 많았다. 이와 다른 차원이지만 1946년 설립된 국내 사립대학인 성균관대는 자신이 1398년 설립된 조선왕조의 국립교육기관인 성균관의 계승자라고 자임하며 수년 전 개교 6백 년 기념행사를 한 바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역사전공자가 아니지만 서울대의 역사를 반추해 보게 됐다.

다 알다시피 ‘국립서울대학교’라는 이름의 기관이 만들어진 것은 일제 강점에서 해방된 후인 1946년이다. 그런데 그 이전에도 서울대의 구성기관이 된 여러 개별 학교가 존재하고 있었다. 법과대학의 예를 들면 구한말 1895년 최초의 근대적 국립법학교육기관이자 법관 연수원으로 만들어진 ‘법관양성소’가 있다. 서울대 법대동창회는 이 기관을 서울대 법대의 시원으로 보고 있고, 이 기관의 졸업생을 동창회원으로 등록하고 있다. ‘법관양성소’는 한일강제합방 이후 ‘경성전수학교’, ‘경성법학전문학교’ 등으로 개편되었고, 이는 해방 후 서울대로 흡수된다. 그리고 농과대학의 전신은 1904년 세워진 ‘농상공학교’이니 농과대학교 1백 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 준 열사를 1회 졸업생으로 배출한 '법관양성소'가 설립된 1895년을 서울대 '개교 원년'으로 삼아야

그런데 이러한 계산법이 채택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 1924년 설립된 ‘경성제국대학’ 때문일 것이다. 일제시대에 존재했던 개별 단과대학의 일부는 이후 경성제대로 흡수되는데, 서울대의 시원을 단과대학의 시원으로 올리게 되면 그 단과대학을 흡수한 경성제대도 서울대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는 개별 단과대학 중 최초의 개교일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선언한다고 해서 서울대가 경성제대의 후예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는 일제 강점기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의 뿌리는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있다고 말할 수 있고, 또 말해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법관양성소’, ‘경성법학전문학교’는 경성제대로 흡수되지도 않았고, ‘법관양성소’의 제1회 졸업생은 이준 열사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남은 문제는 서울대의 단과대학 중 어느 단과대학의 시발점을 서울대 전체의 시발점으로 삼을 것인가이다. 의과대학은 1885년 설립된 국립의료원인 ‘광혜원’, 1897년 개설된 ‘종두의양성소’ 및 1899년 설립된 최초의 본격적 근대의학교육기관인 ‘의학교’ 등을 자신의 뿌리로 설정한 바 있다. 그렇지만 광혜원의 경우 미국 선교사 알렌이 설립했고, 1903년 광혜원의 의료진과 시설은 세브란스로 이전됐기에, 연세대 의과대학은 오래 전부터 자신이 광혜원의 적통이라고 자부해왔다. 이 점에서 1885년을 서울대의 개교 원년이라고 말하는 것은 연세대에 대해 ‘역사전쟁’을 선포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서울대가 굳이 연세대와 이렇나 다툼을 벌일 이유가 없지 않을까 한다.

이상의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필자는 ‘법관양성소’가 설립된 때인 1895년을 서울대의 시발점으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 때 서울대의 역사에서 개별 단과대학이 경성제대에 흡수되게 된 배경을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서술해야 하는 동시에, 개별 단과대학 개교에서 국립서울대학교로 이르기까지 여러 난관, 굴욕, 단절 등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현재의 서울대가 있음을 밝히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필자는 1895년을 서울대의 ‘개교 원년’으로 재설정하고 2015년에는 서울대 1백20주년, 즉 두 번째의 환력(還曆)을 기념하는 행사를 하자고 공식 제안하며, 서울대와 동창회 차원에서 이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와 논의가 일어날 것을 기대한다.

2008. 9. 15
서울대동창회보 366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