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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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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대학 최진남 교수, 국내 소비재기업의 94개 혁신시도 분석

2010.11.23.

경영대학 최진남 교수, 국내 소비재기업의 94개 혁신시도 분석

경영자 주도 혁신은 강압으로 비쳐…
직원들 순응하는 체하며 ‘데면데면’ 경영자 판단으로 혁신 도입했더라도 실행 단계에선 뒤로 물러나는 게 좋아

기업에 있어 혁신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성장과 번영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많은 경영자는 이를 알고 있다. 따라서 항상 혁신을 외치며 조직 구성원들을 독려한다. 하지만 혁신에 성공한 기업은 드물다. 국내 소비재기업 A사는 지난 30년간 끊임없이 혁신을 시도했다. 변화에 적응하고, 효율을 높이기 위해 JIT(Just In Time) 등 여러 혁신 기법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모든 혁신이 성공하지는 않았다. 일부 시도는 비용만 낭비하고 혼란만 초래했다.

최진남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A사가 30년간 시도한 총 94개의 혁신을 분석하고 성과를 평가했다. 그 결과 △경영자보다 조직 구성원이 혁신 도입에 적극적일 때 성과 향상 정도가 가장 크며 △외부 환경 변화 때문에 마지못해 혁신을 도입하면 실행 과정에서 경영자의 의지가 약해질 수 있다는 흥미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혁신 ‘도입’과 ‘실행’ 주체가 같아야

조직 혁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크게 4가지다. 이는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영진 △시장과 기술 환경 △혁신 그 자체의 특성 △혁신 기법의 활용 주체이자 사용자인 조직 구성원이다. 조직 혁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4가지 요인이 혁신 역량과 기업 성과에 각각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면밀하게 파악해야 한다.
연구 결과, 경영자가 주도한 혁신은 혁신 역량 강화에 약한 영향을 끼쳤을 뿐, 성과 향상에는 통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조직원이 주도한 혁신은 조직성과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나타냈다.
혁신 도입 단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요인들이 혁신 실행 단계에서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뜻이다. 도입 단계에서 경영자가 혁신을 주도했다면 실행 단계에서도 경영자의 역할이 두드러졌으며 조직원이 주도한 혁신은 조직원 주도의 실행으로 이어졌다. 이를 일관성 유지 경향이라 한다. 일관성 유지 경향이 나타나는 이유는 혁신 도입 결정을 주도했다는 책임감 때문에 실행 과정에서도 혁신에 대한 주인 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즉, 경영자가 혁신 도입을 주도했을 때, 해당 경영자는 자신의 결정이 옳았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혁신의 실행 및 정착 과정에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조직원 역시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하기 위해 해당 혁신의 성공을 위해 좀 더 열심히 노력한다. 

조직원이 혁신 주도해야 성과 향상
흥미로운 점은 경영자가 혁신 도입을 주도했을 때의 성과보다 조직원이 혁신 도입을 주도할 때의 성과가 훨씬 좋다는 사실이다. 이는 국내 기업들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많은 사람이 경영자의 적극적인 참여야말로 혁신의 성공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물론 혁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경영자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경영자가 주도하는 ‘톱다운(Top-down·하향)’ 방식의 혁신은 혁신 실행의 주체인 조직원들에게 강압적으로 비칠 여지가 많다.
이때 조직원들은 혁신에 진심으로 몰입하려 하지 않는다. 또 자신의 업무에 해당 혁신을 적극적으로 연계하려 하지도 않는다. 표면적으로만 혁신에 순응할 뿐이다. 이 때문에 경영자의 판단으로 혁신을 도입했더라도 이를 실행하는 단계에서는 경영자가 뒤로 물러나는 게 좋다. 특히 조직 내에서 영향력이 큰 관리자나 직원들을 중심으로 혁신 주도 세력을 조직해 톱다운 방식에 대한 직원들의 거부감을 최소화해야 한다. 혁신을 도입하기 전 해당 혁신에 대한 교육을 적극적으로 실시하는 등 조직원들이 경영자가 도입한 혁신을 조직원 스스로가 도입했다고 느끼도록 유도해야 한다. 혁신이나 신기술 도입 초기의 의사결정 과정에 직원들을 참여시키는 방법도 좋다. 혁신을 실행하고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조직원들은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창의적으로 풀어야 한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 되면 결국 조직 전체의 장기적 혁신 역량이 향상된다. 

외부 환경 변화로 인한 혁신은 한계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환경 변화 때문에 혁신을 도입하면 실행 과정에서 경영자의 역할이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경영자의 핵심 업무는 경영 환경 변화를 파악하고 이에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일이다. 환경에 떠밀려 비자발적으로 혁신을 도입하는 일은 경영자에게 큰 부담을 준다. 경영자가 환경 변화를 제때 포착하지 못하거나, 환경 변화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해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경영자가 해당 혁신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혁신 실행에도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다른 조직을 모방하거나 추세에 못 이겨 수동적으로 도입하는 혁신은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 A기업의 사례에서도 이런 점이 드러났다. 이 기업이 실행한 94개의 혁신 중에서 성과가 가장 저조했던 3개는 모두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로 도입됐다.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아 선진 기업들이 활용하는 다양한 생산관리 혁신 기법을 도입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경영자는 왜 이런 혁신이 필요한지,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어떤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지 깊이 있게 고민하지 못했다. 위기를 맞아 어떤 식으로든 대처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혁신 기법을 도입했던 셈이다. 경영자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는 혁신을 조직 구성원들이 잘 따라할 리 만무하다. 결국 혁신을 통해 진정한 성과 향상을 이뤄내려면 남들이 좋다는 혁신 기법을 무조건 도입할 게 아니라 그 혁신이 우리 회사에 정말 유용한지, 핵심 업무와 연관성이 있는지, 실제 업무에 적용하기 쉬운지 등 혁신 자체의 특성을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또 조직원 스스로 활용 가능한 혁신을 탐색하고 혁신을 도입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조직원들이 주인 의식을 가져야 혁신 활동에 강하게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