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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하는 인간·순환하는 기술, 〈순환성circularity〉 심포지엄 개최

2023.03.07.

바이러스로 인간이 죽고 홍수로 거주지가 파괴되는 기후 위기의 시대에 플라스틱 재활용, 재생에너지, 그린 리모델링 등 ‘순환성’이 떠오르고 있다. 2022년 7월 개원한 서울대학교 문화예술원이 지난 3월 3일 서울대 미술관 MoA 오디토리엄에서 '순환성'을 주제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예술이 순환성을 어떻게 사유할지를 고민하기 위해 열 명의 국내외의 연사가 모였다. 심포지엄은 한국어와 영어 두 개의 유튜브 영상으로 생중계됐다.

문화예술원 〈순환성〉 심포지엄에서 1부 연사들이 김은미 교수(언론정보학과)의 사회하에 발언하고 있다.
문화예술원 〈순환성〉 심포지엄에서 1부 연사들이 김은미 교수(언론정보학과)의 사회하에 발언하고 있다.

기관이 주도하는 기술, 예술, 사람의 순환

이번 심포지엄을 기획한 이지회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최근 지속 가능한 실천, 전 지구적 환경 문제의 해답으로 떠오르는 순환성이 예술의 새로운 가치로서 탐구되기를 바란다”며 취지를 밝혔다. 앞서 개회사에서 이중식 문화예술원 원장은 이 시대에 새롭게 출범하는 문화기관의 역할이 ‘순환성’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이번 행사가 그 탐색의 시간이 될 것임을 알렸다.

1부에서는 미래 기술과 예술을 연결하려는 개인 창작자들을 한데 모아 공동의 지식을 창출하고 있는 국내외의 다양한 사업 모델들이 소개됐다. 루마니아계 미국인 프로듀서 라울 즈벤게치는 자신이 부감독을 맡고 있는 뉴욕 뉴뮤지엄의 예술 프로그램인 ‘NEW INC’를 소개했다. 지난 2014년 설립된 NEW INC는 예술, 디자인, 기술 분야의 창작자들을 한데 모으고, 전시나 업무를 위한 공간을 제공하거나, 멘토링 등 창작을 지원하고 있다. 즈벤게치는 NEW INC가 예술‧문화를 통해 탐색하는 기술은 단순히 미래지향적이고 파괴적인 기술이 아니라 자유로운 상상에 토대를 두고 경제 구조를 탈 중앙화하는 ‘부드러운 기술(soft tech)’이라고 강조했다.

노규승 현대자동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미래 사업을 준비하는 기업들이 최근 기술 예술가들의 안목과 창의성에 주목하고 있는 흐름을 짚으며, 개별 제작자와 스타트업 등 다양한 분야의 창의인재를 모으는 현대자동차의 ‘제로원(ZERO1NE)’ 플랫폼과 그 작업들을 소개했다. 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 현대미술센터(CCA)의 우테 메타 바우어 원장은 CCA에서 기후, 생태계, 문화유산 보존 등을 둘러싸고 지난 7년간 진행되었던 프로젝트들을 소개했다. 1부 연사들은 기관이 인적 자원의 순환성을 염두에 두고 예술가들의 세대교체를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NEW INC의 경우 출신 예술가들이 다시 멘토로 영입돼 신진 예술가들을 양성하고 있으며, CCA는 대학 산하 기관으로서 학생들과의 교류도 활발하지만 백인 남성 중심인 학계 너머에서 더 다양한 인재를 찾으려고도 한다고 바우어 원장은 말했다.

인간과 기술은 어떻게 공존하는가

2부는 순환성을 구체적으로 탐구한 개인과 집단 예술가들의 작업이 소개됐다. 문화역사학자이자 작가인 L. 사샤 고라는 요리에 숨어 있는 순환적인 관계를 다뤘다. 그는 하나의 음식 속에는 사람과 동물의 이주, 제국이 식민지를 착취한 역사, 기후 위기, 유전공학 등 과학기술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음을 보여줬다.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 사회복지 분야에서 작업해온 정소익 도시매개프로젝트 대표는 2023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2086: 우리는 어떻게?〉를 통해 지구 환경에 영향을 끼친 인류의 ‘선택’을 돌아보고자 했다고 소개했다. 전시는 생활과 사고의 패턴을 바꾸는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관객들이 직접 참여하는 ‘게임’의 형태로 기획됐다. 신인아 작가는 페미니스트 디자이너가 된 개인적 경험과 활동 중에 들었던 고민을 공유했다. 그가 속한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FDSC)은 지난 2018년 발족돼 지속가능성을 실천하고, 페미니스트 디자이너들 간의 연합과 소통을 도모한다.

3부 연사인 대니얼 R. 스몰 작가가 발표하고 있다
3부 연사인 대니얼 R. 스몰 작가가 발표하고 있다

마지막 트랙인 3부에서는 기계와 인간의 관계를 돌아보고, 예술의 기술적 순환에 대한 철학적인 논의가 이어졌다. 이택광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디지털 기술의 지배 패러다임을 바꿀 ‘약한 기술’ 개념을 제시했다. 오늘날의 기술은 과학적 지식에 의존하지만, 고대의 ‘원시적인’ 기술들은 그저 존재가 살아가는 한 방식이었다. 이 교수는 “이러한 ‘약한 기술’ 모델을 오늘날 사회에 적용한다면 디지털 자동화가 낳는 인간 간의 혹은 인간과 기계 간의 위계 구조를 벗어나 동등한 기술적 관계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러스나 AI 앞에서 효력을 잃은 인간 중심성을 대체하는 사유들도 돋보였다. 최빛나 미디어 아티스트는 깨어진 돌들을 모은 〈시지프스 데이터셋〉(2020)을 소개하며 컴퓨터 기술이 가진 예측성과 기억을 저장하는 자연의 매개성을 연결했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오늘날 기술이 인간을 능가하거나 인간과 분리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가치’와 ‘윤리’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보았다. 인류학자이자 시각예술가인 대니얼 R. 스몰은 4~7만 년 전 엘 카스티오 동굴에 새겨진 ‘들소 인간’에 착안해, “더 이상 인간이 총체적으로 사고하기 어려워진 때에 독창적 사고를 키우기 위해선 동식물 혹은 아예 다른 외계종의 관점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했다.

3월 3일 서울대 미술관 MoA 오디토리엄에서 개최된 '순환성' 주제의 국제 심포지엄
3월 3일 서울대 미술관 MoA 오디토리엄에서 개최된 '순환성' 주제의 국제 심포지엄

행사는 파워플랜트에서 뮤지션 ‘비애클럽’의 디제잉이 어우러진 네트워킹 파티로 마무리됐다. 학생, 신진작가, 멘토 등 개인 창작자의 네트워킹과 창작 활동을 돕는 파이프라인으로서 출범한 문화예술원의 기획이었다. 이번 〈순환성〉 심포지엄에서 기술 발전과 환경 위기 사이에서 책임은 커지고 더 취약해진 인간이 기술을 순환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예술의 상상력에 기대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문화예술원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newhousesnu

국어국문학과 박사수료
강도희 시니어기자
nico7979@snu.ac.kr